천식 할아버지 2
죽음으로 선택한 죄책감 이었을까?
최 할아버지는 계속 입원을 거부하셨고, 당신이 조금 숨이 편하다 싶으면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 뒤로도 겨울 내내 어르신은 2~3일 간격으로 응급실을 찾으셨다.
따뜻한 봄이 오자 최 할아버지의 응급실 방문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바깥 활동을 전혀 하지 않으시니 봄의 꽃가루나 미세 먼지에 의한 영향은 받지 않으셨던 듯하다.
여름에는 최 어르신은 한 번도 응급실을 찾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9월, 추석연휴였다.
무슨 음식들을 그리 잘 못 먹은 건지 유독 장염 환자들이 응급실에 넘쳐 났다.
가벼운 환자들이야 주사 몇 대 주고 끝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탈수도 심하고 고열이 나는 환자들이 많아 수액 달고 누워 있으니 침상이 부족했다.
거기에 연휴라 교통사고 환자도 많다 보니, 응급실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여기 저기서 본인 부터 봐달라는 아우성과, 바닥엔 온통 피투성이고.. 우리모두 정신 없이 그 안을 뛰어 다녔다.
난 두개골 및 경추 골절환자를 수술실로 인계하고 막 응급실 안으로 들어오던 중이었다.
이제 더 이상 침상도 없는데 어디선가 119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더 소리가 가까워 지기 시작하자 함께 일하던 멤버들의 한숨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느덧 응급실 앞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119를 발견하고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갔다.
구급차 뒷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우리 지금 침상 없어요~" 하는데 이런...
구급대원이 CPR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최할아버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앉아 있는 게 눈에들어왔다.
그럼... 환자는?
하는 생각에 구급차에서 내리는 스트레쳐카를
쳐다 보다 나는 그자리에 그대로 멈춰섰다.
할머님이셨다. 어떻게 된 거냐 물을 새도 없이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구급침대 그대로
응급실 안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code blue요"하고 외쳤다.
내 외침에 일제히 흩어져 있던 근무자들이 다들 뛰어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CPR를 시행하고, 제세동기로 200줄, 300줄 올려 보지만.. 할머님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epineprine(심정지시 사용되는 주사) 주사를 6번째 사용했을 때, 더 이상 의미가 없단 판단에 우리 모두 CPR을 멈췄다.
그제서야 나는 함께 오셨던 최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급하게 눈으로 할아버지를 찾아보지만 응급실 어디에도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원무과 입구 쪽에서 쌕쌕하는 최할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한쪽 구석에 몸을 구부린 채 앉아 흐느끼며 울고 계셨다.
"내 잘못이야. 다 내 잘못이야~. "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셨어요. 아무리 약을 쓰고 해도 할머니는 이제 그만 쉬고 싶으신가 봐요.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하셔야죠."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일으키는데 응급실안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막 도착한, 딸로 보이는 여자분이 할머님 시신을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다.
그러다 내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 안을 들어서는
최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아버지 때문이에요. 엄마 이리 허무하게 죽은 거... 다 아버지 탓이에요. 책임져요. 평생을 아버지 바람으로 속썩어서 엄마 이렇게 된거라구요. 그 바람끼 때문에 엄마가 홧병으로 이렇게 된거라구요...."
40대로 보이는 여자분이 악다구니를 쓰듯 반복해서 소리 지르다가 이내 흰 천이 덮여 있는 할머님 위로 몸을 덮고 서럽게 울었다.
늘 두분만 오셨기에 우리도 따님은 처음이었다.
따님 뒤로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당황한 기색으로
멍하니 서 있는게 보였다. 누구지? 하며 궁금해 하던 찰나에..
갑자기 최할아버지의 호흡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울긴 했어도 이렇게 까지 거칠진 않았는데...
그러더니 내 잡은 팔 쪽 힘이 무너지며 최할아버지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셨다. 그러더니 호흡을 멈추셨다.
"code blue~" 내 비명소리에 인턴샘이 달려왔다.. 함께 어르신을 침상으로 올리고 CPR을 시행했다.
'할아버지 이렇게 가시는 건 아니죠. 제발... 제발...' 하는 내 간절함이 닿은 걸까 다행히 최할아버지의 심장은 돌아왔다.
하지만 의식은 그때 까지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최할아버지는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입원 수속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20대 남자가 최할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걸... 40대 따님과는 배다른 남매였던 것이다.
최할아버지는 결국 일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할머니 곁으로 떠나셨다.
그날, 너무 바쁘기도 했고 정신이 없어 그 따님이 왜 그리 할아버지한테 소리를 질렀는지 그 이유는 끝내 나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며 할머니를 고생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심하셨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할머님의 죽음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시고 자신을 놓아 버리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