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과의원에 근무했던 적이 있다.
응급실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함께 일했던 내과 과장님의 꼬임에 넘어가 오픈하는 병원 세팅을 도맡았었다.
접수부터 수납, 주사, x-ray, 피검사, 내시경실 까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던 그때의 나는 참 열정적이었다.
어느 정도 세팅을 하고 외래 시스템이 자연스러워질 때쯤부터 환자가 많아졌다.
그때, 유독 생각나는 어르신이 한분 있다.
일명 오뚜기 스프 어르신.
어르신은 집이 병원 근처 시장 가까이 사셔서 진료 보는 날이 아닐 때도 가끔 들러 대기실에 앉아 쉬기도 하고, 주사실 침대가 비어 있을 땐 한 시간씩 낮잠을 자고 가기도 하셨다.
자그마한 체구에 염색을 하지 않은 백발의 뽀글이 파마머리를 하고 유난히 하얀 피부가 창백해 보이던 어르신은 빈혈환자였다.
입맛이 없다며 거의 365일 오뚜기 스프만 끓여 드신다고 했던 어르신, 빈혈에는 철분이 풍부한 음식을 잘 드셔야 하는데도 어르신은 고기는 쳐다도 보기 싫다고 하셨다. 먹는 것 대신 수시로 영양제를 맞으셨던 어르신.
어느 날, 일주일이 넘도록 어르신이 병원을 오지 않으셨다. 집으로 여러 차례 했지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셨다. 자제분은 멀리 살고 거의 왕래가 없다고 했었던 터러 덜컹 겁이 났다. 함께 오시던 어르신에게 여쭤봐도
최근엔 본 적이 없다는 말씀만 하셨다. 그렇게 10일 정도 지난 후 어르신은 얼굴이 반쪽이 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화장실 가다 넘어져 허리를 삐끗했는데 그 뒤로 걸을 수가 없어 꼼작 없이 집에만 누워 계셨다는 어르신...
"내가 다쳤다고 하니 그제야 아들놈이 왔다 가더라고, 먹지도 못하는 고기들만 냉장고에 잔뜩 넣어 놓고 갔어." 하며 투덜 대셨다. 허리 사진은 찍어 보셨냐는 말에 아들 왔을 때 정형외과 가서 주사도 맞고 약을 먹었다신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해진 나는 불쑥 메모지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 어르신 가방에다 넣으며 말했다. " 할머니, 다음에 또 이런 일 생기면 그땐 저한테 전화하세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렇게 어르신과 단짝이 되었다.
그날 이후 어르신은 출근하듯이 매일 병원을 오셨다. 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기도 하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 자랑도 하시곤 했다. 다들 손녀냐고 묻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시던 어르신. 심지어 그 말을 믿고
"어쩐지 닮았다 했어, 둘이 똑같이 마른 것도, 얼굴은 쪼맨하니 눈만 큰 것도..."라던 환자분도 있었다.
어르신은 오전 내내 병원 대기실에 있다가 점심때가 되면 식사한다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이 또 며칠 안보이셨다. 분명 전화번호까지 알려 들였는데도 어르신은 한 번도 전화를 하신 적이 없었다. 유난히 바빴던 어느 날 오후, 병원 전화를 습관처럼 받았다. " J& L 우리들 내과입..."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낮은 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여~." 어르신이었다. 무슨 일 있냐는 내 말에 어르신은
힘겹게 우시며 "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있어. 배가 너무 고픈데, 아들놈의 새끼는 바쁘다고 못 온다네."
그렇게 난 어르신 댁을 찾아갔다. 힘 없이 누워 있는 어르신 드리려고 전복죽을 사갔었는데, 어르신은 못 먹겠다며 오뚜기 스프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곤 서랍장을 열었더니, 장 가득 오뚜기 야채 스프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오뚜기 스프만 계속 드시면 영양실조 걸리고 빈혈이 더 심해진다는 내 잔소리에 어르신은 힘없이 웃으며 괜찮다고만 하셨다. 난 그 길로 시장에 가서 계란 한 판을 사 왔다. 그리고 스프를 끓이다가 마지막에 계란 2개를 풀어 넣었다. 옆에서 질색 팔색하며 계란 안 먹는다는 어르신께 "할머니, 이거 다 안 드시면 나 다시는 할머니 안 볼 거예요."란 내 말에 마지못해 그릇을 받아 드시던 어르신.... 그날 그 큰 그릇에 있던 스프를 다 드셨다.
그리곤 난 약속을 받았다. 무조건 스프 먹을 때 계란 하나씩 넣어서 같이 먹기... 그리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고 도장까지 찍었다.
내가 의원을 그만두던 날, 할머니는 펑펑 우셨다. 난 그런 할머니께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오뚜기 스프가 종류별로 들어 있는.... 이게 어르신과의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