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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와와 Oct 09. 2024

천식할아버지 1

추운 겨울 새벽녘,

응급실 침상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쯤 저 멀리서 119 소리가 들렸다.

언뜻 시계를 보니 4시 30분이다.


정리하던 걸 멈추고 환자 받을 준비를 한다.

이미 10여분 전에 구급대원에게 연락을 받았던 터라 미리 산소를 준비해 두고

나는 당직실 문을 두드린다. 잠시 쉬러 들어간 인터샘을 깨우기 위해서다.

이미 깊게 잠들었는지 내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턴샘...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흔들어 깨웠다.


인턴샘과 함께 복도로 나오니 119 차량이 응급실 문 앞에 정차하는 게 보인다.

함께 문쪽으로 달려 나갔다.


빼꼼 환자 얼굴을 확인하다 나는 탄식을 했다.

너무 익숙한 얼굴이다.


" 할아버지,  그저께 입원 하셨던 거 아니에요?"

구급차에서 같이 내리던 구급대원이 내 말 뜻을 알아차리고

" 1시간 있다가 바로 집으로 가셨답니다." 한다.


최 할아버지는 환절기를 포함한 겨울만 되면 응급실을 자주 오시는 천식 환자분이다.

이틀 전 내가 오전 근무할 때 외래로 오셨다가 숨이 너무 차서 응급실에서  기관지 확장제 주사를 맞으시다가

호전이 없어 분명 입원 수속을 했었다.


원무과 접수 중인 할머니는 이미 지칠 때로 지치신 표정이다.

"영감탱이가 도통 내 말을 안 들어, 그렇게 입원 좀 하자는데 집에 가자고 날 달달 볶잖아. 이봐.. 하루도 못 넘 기고 또 이리 올 것을.. 내가 이러다 먼저 죽지. 아이고 힘들어." 라며 투덜투덜 되시며 간호사실 앞에 의자에털석 앉으셨다.


최 어르신은 특유의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연거푸 기침만 했다.

인턴샘이 환자를 보는 사이 나는 어르신에게 필요한 네블라이져를 챙겨 마스크를 입에다 대어 드렸다.

그리곤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함께 일하던 후배에게  "아미노필린 믹스해야 하니까 준비하고 있어." 하곤

어르신 입원기록을 확인했다.


네블라이저를 하고 있는데도 어르신의 쌕쌕거림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얼굴까지 빨갛게 변할 정도로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며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몸이 앞으로 숙인 상태로 어르신은 너무 힘들어하셨다.

인턴샘이 오더를 줘야 주사를 연결할 텐데 5분째 환자 증상만 물어보고 있었다. 답답한 맘에 나는 인턴샘 팔을 잡아당기며 간호사실 쪽으로 왔다. ( 참고로 그 당시 우리 병원은 인턴샘 턴이 한 달이었고, 지금 근무하는 샘은 오늘이 첫날이었다. )


" 저 할아버지 우리 병원 단골 환자분이세요. 차트 기록 다 있으니 이 거 보고  빨리 오더 주세요. 확인하니 아미노필린 500mg 믹스했던데 그렇게 드릴까요?" 했더니 일단 x-ray부터 찍어 보고 싶단다. 이틀 전에 입원까지 했다가 퇴원했으니 그거 확인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인턴샘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어르신 침상채로 사진 찍으러 가려고 침상을 움직이자 최 어르신이 손을 휘저으며 힘겹게 말씀하셨다.

" 안...켁...찍어.. 사...진 켁...안...찍....어....숨....이나...좀...쉬게.....해줘...." 하며 강력하게 거부하셨다.


그렇게 겨우 겨우 어르신에게 주사를 연결하고,  1시간쯤  지났을까 차차 어르신의 쌕쌕 거림이 조금 덜해지셨다. 여전히 기침을 한번 시작하면 발작적으로 하니 목에서도 쉰 소리가 나는 최 어르신...

" 할아버지 기침 많이 해서 목이 더 건조해졌을 거예요. 이거 따뜻한 물 좀 드세요." 하며 종이컵을 건네는 내 손을 꽉 잡는 최 어르신 그리곤 한참을 날 쳐다보시다 한마디 하신다.

" 왜 맨날 내가 올 때마다 아가씨가 있어? " "할아버지가 꼭 제가 근무할 때만 오시는 거죠." 란 내 말에 피식 웃으시며 "남자 친구는 있어?"라 물으신다. 이쯤 되면 어르신 상태가 이제 괜찮아지셨단 소리였다.


할머님 표현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바람둥이라고 했다. 나이도 안 가리고, 평생을 바람을 피우셨다고....

내 손을 계속 잡고 있는 걸 본 할머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침상 쪽으로 걸어오시더니 할아버지의 등을 세게

한 대 때리셨다. "영감탱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지? 응? 어째 이 아가씨만 보면 이 와중에도 이러고 수작을 걸고 싶어? 니 손녀 같은 아가씨한테? " 하며 폭포수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그러곤 내 쪽을 힐끔 보시더니 " 아가씨한테는 매번 미안하네. 이놈의 영감탱이가 이리 추태를 부려서.. 내가 너무 미안해. 그러니까 그렇게 너무 웃지 마요." 한다.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내 별명은 얼음마녀였다. 물론 신규 때는 모든 환자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고 친절했었지만 , 이곳에서 근무하다 보니 어느새

얼굴은 무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고 웬만해선 웃지 않았다. 응급실은 워낙 급하고 안 좋은 상태로 들어오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마음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아마도 어르신들을 대할 때면 나도 모르게 항상 웃고 있어나 보다.

이때부터 어르신 바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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