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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Feb 10. 2024

[부정맥 일기] 내가 정신과에 갈 줄이야 (2)

 내 앞에 놓여진 각티슈를 보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곧 울게 될까? 아니 울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쯤 기나긴 메모를 끝낸 의사 선생님이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애매님"


 다소 냉소적인 표정에 그렇지 못한 멘트라니.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내심 큰 위로를 받았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병과 그간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위로의 한 마디를 들으니 기분이 요상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과하게 받아 들여서 힘들었던 건 아니구나. 전문의가 인정한 힘듬이라니, 나 같은 일반인이 견디기에 어려웠던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하기도 했다.


 오래 상담 끝에 진단 받은 내 병명은 공황장애였다. 방구석 돌팔이 의사의 예상이 부디 엇나가기를 바랐지만 그런 반전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꽤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순간 각티슈를 사용하게 되었을텐데 말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걸로도 공황장애라 볼 수 있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부정맥과 같은 심폐질환 환자들이 겪는 공황장애에 속하는데 한 번이라도 병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경험했던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단다. 아마 발리 호텔에 누워 발리 응급실, 우붓 응급실 한국의사 등을 검색하며 '제발 죽어도 한국에 가서 죽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던 경험이 이미 나의 머릿속에 두려움으로 남은 듯하다.


 상담을 마치며 약을 처방받았다. 매일 저녁에 먹으면 하루종일 효과가 있다는 약, 숨쉬기 어렵거나 갑자기 힘들어질 때 '필요 시'에 먹으면 되는 약까지 두 종류의 약을 처방받았다. 담당의는 이미 복용 중인 부정맥 약과 겹치지 않고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약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었고 2주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이틀 정도 약을 복용한 후에는 따로 약을 찾고 있지는 않다. 시간상 부정맥 약과 동시에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잠든 이후에 몸이 극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 이후로는 무서워서 더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공황장애 증상은 많이 완화된 것 같다. 평소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과 지갑마다 '필요 시 약'을 몇 개씩 넣어둔 것이 큰 위안이 되는 듯하다. 버스에서 숨 쉬기가 어려운 순간에도 지갑을 열고 언제든 필요 시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면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나는 그냥 믿을 구석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젊은 나이에 부정맥이라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 곧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와도 정신만 잘 차리면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나저나 다음 번 정신과 진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저 2주만에 공황장애 극복한 것 같아요' 라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그럼 다음 달 심장내과 진료에서는 뭐라 말해야 할까. '저 사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정신과도 다녀왔어요. 선생님을 못 믿은 건 아니구요' 라고 고백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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