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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Feb 02. 2024

잊을 수 없는 파리의 성당, Best 3

  파리에 있는 동안 나는 수많은 미술관을 방문했다. 모두가 당연히 가는 미술관들은 물론이거니와 잘 모르는 미술관들도 내 레이더망에 들어오는 곳은 가리지 않고 방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성당도 참 많이 들른 것 같다. 여행책자에 소개된 곳들이나 지나다 보이는 성당들도 거르지 않고 들러보았던 것 같다. 뭐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여행 초짜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디에 있는 무엇이 나에게 어떻게 와닿을지 모르니까 치열하게도 돌아다닌 것 같다. 특히나 돈 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곳들은 더 빠뜨리지 않았다.


  미술관은 저마다 독특한 특색들이 있다. 하지만 성당은 공간 자체가 주는 거룩하고 경건함이 있지만, 아주 강렬하게 다른 특징들로 구분되기보다는 공통의 특성들로 기억에 남아있다. 높은 천장과 숭고한 성화들, 마음을 쨍하게 하는 스테인드글라스, 그 색을 통과하고 들어오는 빛줄기들, 그 앞에 낮아지는 내 마음. 작고 낮지만 간절하게 타오르는 색색의 초들. 그 곁을 지나며 나직해지는 내 발걸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난히 기억나는 곳이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사크레 쾨르 대성당, 그리고 생뜨 샤펠 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센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시떼섬에 우뚝 솟아 있다. 어느 다리를 지나며 봤는데, 웅장하게 서 있는 그 성당과 센강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누군가 웨딩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땐 화재 전이라 성당 외부고 내부고 모든 걸 꼼꼼히 잘 관람했지만, 나만의 특별한 의미보다는 그저 온통 웅장하고 장엄했다는 기억이 강렬하다. 다만 나에게 특별했던 건 성당 입구 바닥에 박힌 별(le point zero)이 나를 파리로 다시 불러준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다른 지역에도 여럿 있다. 예전에는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서 미사를 드리다가 그곳에 성당을 세우며 제대 아래 그 성인의 시신을 모셨다고 한다. 그 성인을 수호성인이라 하는데 성당의 수가 많아지면서 다 그럴 순 없게 되면서, 성당마다 특정 성인의 뜻을 받들고 따른다는 의미로 수호성인을 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모마리아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로 성모마리아 성당이라 하면 그게 바로 노트르담(notredame) 성당이 된다. 


  프랑스어로 담(dame)은 여성을 뜻한다. 특정 여성 한 명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느낌의 여성의 의미인데 누군가를 지칭하려 한다면 마담(madame)이라 부른다. ma는 프랑스어에서 '나의'라는 의미가 있는데 아마 그래서 누군가 한 명을 지칭할 때는 그냥 담(dame)이라 하지 않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 마담(madame)이라 부른다. 노트르(notre)는 '우리의'라는 뜻인데 우리 모두의 여성이라는 의미로 성모마리아를 이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노트르담은 성모마리아가 된 것인가 보다. 


  그래서인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끝없이 하늘을 갈구하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건물보다, 깊고 오랜 역사를 지켜오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성유물들보다 강렬하게 나를 잡아 것은 바로 '피에타'다. 종교적인 의미와 가치를 알진 못하더라도, 모성의 의미로 바라보아도 어딘가 가슴을 친다. 잘은 모르지만, 시대에도 여성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여기기보다는 남자들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받을 때였을 텐데 마리아를 성인으로 인정하고 받드는 종교가 참으로 거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몽마르트르에 있는 사크레 쾨르 대성당은 정말 종교적인 감성을 잘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뾰족한 고딕양식의 노트르담 성당과는 다르게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돔 모양의 우아한 품격을 과시하는 성당. 천장에 성화는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하고, 모자이크도 세계 최고인지 최대인지 그렇다며 과시했다. 그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 그 성당은 나에게 희미하고도 잔잔한 안개가 가득 들어찬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잘게 부서진 빛들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사크레 쾨르 성당은 주변 경관이 인상적이었다. 성당을 나오면 탁 트인 전경에 파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주변에 게릴라 공연을 하는 장소가 있는데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공연의 퀄리티가 무지 높다. 내가 갔을 때 한 여인의 천상의 목소리로 온 세계인들의 마음을 싹 정화해주고 있었는데, 뒤이은 공연은 네 명의 흑인들이 환상적인 멜로디와 유쾌함으로 깊은 행복을 선사해 주었다. 몽마르트르 자체가 예술인들의 전유물이라 그런지 발길이 닿는,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예술적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감정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와닿았던 곳은 생뜨 샤펠 성당이다. 그 성당은 아름다운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있는 마레지구에 있다. 예쁜 가게들을 스쳐지나 들어간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천국이 이런 곳일까 싶은 느낌이 들게 했다. 너무 아름다운 빛들이 한 곳으로 쏟아지는 느낌이었는데, 그 빛이 쏟아지는 성당의 고요함은 환하고도 깊었다. 마침 그곳에 너무 아름다운 한 여인이 조용히 들어왔다.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조용히 초를 하나 밝히고 그 앞에 앉았다. 


  나는 조용히 돌아 나가려고 뒤돌았다. 하지만 걸음을 내딛는 발소리가 방해가 될 것 같아 한쪽 귀퉁이에 조용히 앉았다. 나도 모르게 다시 그 여인을 슬쩍 봤는데 눈을 감은 모습조차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얼굴 위로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몰래 사진이라도 찍고 싶을 정도로 매료됐지만,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 시선을 거두려 했는데 거두던 시선이 조용히 모은 그녀의 손에 닿았다. 수고롭고 거친 인생의 풍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눈 감은 그녀 위에 덮쳐버린 나의 시선이 너무도 죄스러웠다. 


  시선을 올려 색색깔로 쪼개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하늘에서 잘게 부서져 뻗어내려 오는 빛들이 저 여인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밝힌 초를 다시 내려다보면서 저 초가 다 타버리기 전에는 저 여인의 간절하고도 뜨거운 기도가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호흡에 실어 천천히 내 쉬었다. 저 여인의 손이 더 딱딱해지게는 하지 말아 주세요. 저 손을 잡고 어루만져 주세요. 뜨겁게 흘린 저 눈물만큼이나 뜨거운 숨결로 꼭 그녀를 위로해 주세요. 저 여인이 바라는 것을 꼭 이루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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