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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Jan 26. 2024

루브르에서 나를 사로잡은 두 작품

  뮤지엄패스는 일주일 짜리로  다시 구입했다. 날짜를 쓰자마자 홀랑 잃어버린 게 너무 아깝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망칠 수는 없으니! 새 뮤지엄패스의 시작은 다시 그 장소, 루브르 박물관이다. 오디오 가이드는 반나절 정도 돌 수 있을 코스로 안내해 달라고 세팅했다. 하.. 그런데 이놈의 오디오 가이드는 영 나랑 손발이 맞지 않는다. 끝까지 가면 문이 있다는데 벽이고, 코너를 따라 도는데, 막힌 벽이다. 자꾸 벽으로만 안내하는데, 이건 내 귀가 이상한 건지, 오디오 가이드 눈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넓은 곳에서 맞는 곳이든 틀린 곳이든 안내를 해준다는 게 도움은 된다. 결정장애가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특히나.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이고 고민하는 동안 어디로든 가게는 해주니까. 그렇게 발길을 옮기면 무조건 대작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여긴 무조건 대대대대대대작들만 전시되어 있는 곳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도 마찬가지려나. 뭐라도 하면, 어디로든 가면, 제자리에 서있는 것보단 나은 것이려나. 아무튼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꼴이 나 사는 꼴 같아 마음이 영 불편하다. 

 

  루브르에서 본 작품 중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는 건 두 작품이다. 그중 하나는 사모트라케의 니케.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른다는 그 작품은 머리도 없고 팔도 발도 깨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가 되어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웅장하게 했다. 작가의 이름보다는 작품 자체에 의미를 둔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다른 게 생각하면 그 어떤 것을 배제하고도 버릴 수 없는 훌륭함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어쩌면 프랑스는 자기네 복원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전시한 것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대리석을 깎아 만든 이 작품은  핏줄 하나하나 살아있고, 근육이 숨 쉬는 듯한 느낌이다. 물에 젖은 얇은 천이 피부 위에 닿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생생히 표현되어 있다. 이게 정말 대리석이라고? 이 작품의 경이로움은 나의 글로는 담을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날 아무것도 못하게 잡아 묶어버린 작품이 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역시 교과서에서 봤던 느낌으로 치면 내 취향이 아니다. 아름답지도 매혹적이지도 않은 그냥 전쟁을 표현한 작품이려니 했었으니까. 모나리자를 찾아 헤매다 우연히 툭 바라본 왼쪽 벽에 크기로 압도하는 작품이 있어 이거 뭐지? 하고 뒤로 물러서 바라본 작품이다. 보자마자 머리가 띵 하고 숨이 멎는 듯했다. 숨을 죽이고 한참 동안 작품에 빠져들었다, 

  이 작품은 내가 겪지도 않은 당시의 상황을 너무 생생하게 담고 있고, 또한 혁명의 의미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단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도 꼭 직접 봐야만 한다. 실제 사람의 크기와 비슷한 크기로 담은 이 작품은 혁명의 그 성공만이 아닌 그 과정의 처절함을 잘 담고 있고, 또한 혁명의 의미를 잘 표현했다고도 생각한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쓰러져있고, 모두 지쳐 쓰러졌을 때, 당시 인간 취급받지 못하던 여성과 아이가 모두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성공한 혁명은 모두 중학생이 가담했을 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스갯소리이기도 하지만 이건 사실이기도 하다. 그만큼 전 국민의 열망이 뜨겁고 참여도가 높았다는 소리다. 영화 레 미제라블(2012)을 보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성공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 그림을 형상화한 부분이 있다. 확고한 신념으로 정의를 실현하려던 자베르 경감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하고, 가장 어린 꼬마 아이가 맨 꼭대기로 올라 깃발을 든다. 그게 바로 혁명이었던 거다. 모든 것이 뒤집히는. 

  

   관심도 없었던 들라크루아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려고 며칠 뒤 나는 들라크루아 미술관으로 간다. 관람객이 없는 아주 조용하고 심심한 곳이지만 자부심을 갖고 그곳을 지키는 이가 있었다. 쭈뼛거리는 나에게 여길 어떻게 알고 왔냐고 질문해 주었다. 루브르에서의 감동을 말하자 그가 더 감동받으며 자신이 들라크루아의 후손이라며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은 중정이 아름다운 곳이니 나가서 중정도 즐기라고 안내해 주었다. 예술을 정말 사랑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곳, 이곳은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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