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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Jan 19. 2024

인간의 두려움을 전시한 곳, 케브랑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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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 사진이 제일 예쁘게 나오는 곳이 샤이오궁이란 말을 들었다. 정말 전 세계 많은 이들이 거기에 몰려들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이 내 손에 든 셀카봉을 보며 신기해했다. 10년 전엔 우리나라에서만 흔하게 셀카봉을 썼던 것 같다. 저게 뭐냐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셀피! 하며 설명해 주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베리 덴저러스'라고 말했다. 왜 위험하지? 의아했지만 바로 소매치기가 떠올랐다. 난 이미 한 번 당해본 전적도 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폰을 내렸다.  


  파리에서 예쁜 사진을 찍으려면 무조건 날씨가 좋아야 한다. 하늘이 파란 날은 어딜 가도 사진이 예쁜데, 흐린 날은 어딜 가서 뭘 찍어도 우중충하다. 흐린 날과 맑은 날을 여러 번 오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어떤 이는 파리가 너무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정말 별로라고 하는데 그 차이가 바로 날씨 때문이었다. 파리 여행을 길게 하는 경우는 다른데, 짧게 오는 경우는 도착한 날의 날씨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았다. 3박 4일 중 하루 정도 날씨가 좋더라도 도착한 첫날의 날씨가 흐려서 첫인상을 말아먹으면 끝인 것 같았다.


  에펠탑엘 가도 날씨 때문인지 무겁고 꿀꿀했다. 그래도 거기서 파는 간식들을 사 먹으며 사람들을 따라 어설프게나마 여유를 즐기는 척했다. 그러다 에펠탑 열쇠고리를 손에 걸고 팔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어딜 가도 살 수 있는 흔한 것이지만 에펠탑에 온 기념으로 몇 개 사야지 싶어 가격을 물었다. 하나에 2유로, 세 개에 5유로라길래 10유로를 줬는데 열쇠고리 다섯 개만 준다. "엉, 두, 트와, 꺄트흐, 썽끄, 씨쓰, 씨쓰, 씨쓰!!" 하나가 빈다고 프랑스어로 어설프게 숫자를 세며 손에 든 열쇠고리를 과장되게 헤아리며 열심히 어필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왜?? 그는 손가락에 에펠탑을 걸고 판매행위를 계속하며 내 존재를 무시했다. "헤이!!" 나는 그를 계속 불렀다. '하나를 더 내놓으라고!' 하는 마음을 담아 한 개를 손가락에 걸고 흔들며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한참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하니까 그가 내 등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 10미터쯤 떨어진 거기엔 다양한 크기의 에펠탑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니 또 사란 거야? 하나 더 달라는 거잖아!' 말이 안 통하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 그가 한숨을 쉬며 그쪽을 향해 걸었다. 저기 가서 주겠다는 건가? 싶어 따라갔다.  


  그는 열쇠고리가 전시된 쪽에서 바닥에 놓인 종이를 집어 내밀었다. "1개=2유로 / 3개=5유로 / 5개=10유로." 대체 이게 무슨 셈법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그럼 세 개만 하겠다는 듯 두 개를 돌려주며 5유로를 내놓으라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는 내가 내미는 에펠탑을 손톱으로 톡톡 치며 내 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 뭐라 했다. 그리고 자기 손가락에 걸고 있는 에펠탑을 달랑달랑 흔들며 손가락을 가져가다가 닿기 직전에 손을 멀리 했다. 아마도 내 지문이 묻어서 환불해 줄 수 없다는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날씨도 구리고 일진도 사납다. 에펠탑을 등지고 케브랑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는 곳을 향해 걸으면서 한숨만 자꾸 나왔다. 사실 뭐 그렇게 대단치 않은, 어떻게 보면 웃고 넘길 예피소드이기도 한데, 기분이 너무 나빴다. 날씨 때문이겠지.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에 가면 내 기분도 아름다워지겠지. 지친 맘을 추슬렀다. 아무리 맘을 추슬러도 건물이 뭐 그렇게 아름다운지 외관이 뭐가 특별한지 내 눈으로 알아보긴 어려웠다. 그저 신기해 보이긴 했다. 어찌 보면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건가 싶기도 했다.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의 1층엔 원시인들의 사용했던 의복과 다양한 아이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키는 작았다면서 의복이나 장신구들이 너무도 과장돼 보였다. 자기 키보다 클 것 같은 뾰족한 모자를 쓰고,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무지막지 큰 옷을 입었다. 혼자 들지도 못할 크기의 창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신발이든 뭐든 도저히 착용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만 했다. 정말 저런 걸 착용하고 저런 걸 손에 들고 사냥을 했을까? 걷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저걸 입으면 사자가 나타나도 도망가기가 어려웠을 것만 같았다.


  가운데 계단으로 돌아 올라간 2층엔 다양한 타투들의 문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다양한 원시부족들의 성인식 문화가 영상으로 나오고 있기도 했고, 타투를 하는 영상들도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귀나 턱에 구멍을 뚫기도 하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듯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으~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무슨 이런 걸 전시하고 있을까? 저런 걸 꼭 저렇게까지 보여줘야 하는 건가, 인권 따위는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왕 온 거니까 남기고 가버리진 말잔 생각으로 전시들은 계속 봤다. 게 중엔 예쁜 타투도 있었다.


  아무래도 날씨 때문이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이렇게 꿀꿀하지 않았을 텐데. 내일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나가서 뭘 먹을까? 집중력도 떨어지고 몸도 지쳤다. 그리고 아까 정색하며 에펠탑을 흔들던 그 흑인의 표정도 떠올랐다. 내가 만만했던 거지? 사기꾼 흑형들을 조심하란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다신 안 속아! 절대 안 속아! 푸우. 코뿔소 한숨이 나왔다. 오늘의 이 꿀꿀함은 맛있는 저녁으로 날릴 수 있을까? 커피를 한 잔 마시면 괜찮을까? 그러다 어떤 여자가 눈화장과 머리를 무지무지 과하게 하는 영상에 시선이 꽂혔다.  


  순간, 나는 정말 큰 깨달음이라도 얻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배경이 짙은 네이비에서 밝은 파랑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걷던 발길을 멈추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며 눈으로 전체를 다시 훑었다. 그리고 가운데 계단 쪽 난간으로 와서 아래도 한 번 다시 스캔했다. 아~ 이거구나! 케브랑리는 내가 가진 편견과 선입견을 깨부수는 곳이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족속을 시대나 공간에 의해 구분하고 나누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다. 예나 지금이나, 여기나 저기나, 너나 나나 우린 모두 같은 삶을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보니 공간 구성도 그랬다. 1층과 2층, 코너마다 섹션을 나누어 제각각 구분돼 보이지만, 사실은 다 트여 있어서 어디서든 무엇을 보는 것에 막힘이 없도록 되어 있었다. 세상에. 내가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 입고,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내 마음이, 말도 안 돼 보이는 과장된 화장을 하거나 온몸을 휘감는 타투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체를 변형할 정도의 장신구를 착용하면서 우린 결국 모두 강해 보이고 싶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약함을 가리고 싶은, 바로 그 마음인 것이다.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크고 강해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동물들을 사냥하려는 사람들은 혼자서는 들 수도 없던 창을 함께 들고 최대한 멀리서 공격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리 중 누군가 도저히 착용할 수 없는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여 동물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공포감을 주어야 했던 것일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무리를 지키려 했던 것이리라. 픽픽 웃어대며 우습게 봤던 것들이 숭고하게 와닿았다. 결국 그 마음들이 이렇게 저렇게 변형되고 대상만 바뀌고 달라지며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겠는가.


  와~ 이곳은 정말 대단한 곳이구나! 외국어를 잘 못해서 설명을 제대로 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전시물들을 눈으로만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하는 곳이구나. 미술 자체가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도록 구성하고 설치하는구나.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감동이 일었다. 그걸 해내는 파리는 정말 예술의 도시가 맞다. 인간이 다 달라 보여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도, 결국 그 근원을 찾아 따라가 보면 나의 어떤 부분과 반드시 닿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 누군가를 함부로 배척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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