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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Feb 09. 2024

오랑주리에서 내 영혼을 빼앗은 그녀

  파리를 안 가 본 사람이라도 모두가 다 아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튈르리 정원을 지나면 오랑주리 미술관이 보인다. 모네의 그림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이곳은 원래 온실로 지어졌다. 튈르리 정원의 오렌지 나무가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하려고 만들어진 곳. 하지만 지금은 모네의 수련을 잘 살 수 있도록 용도변경이 된 것이다. 온실이 미술관이라니.. 하긴 오르셰 미술관은 원래 지하철이지 않은가. 이미 지어진 건물은 웬만해선 허물지 않는 이들의 문화가 새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지어진 건물들을 되도록 지키려는 이들의 태도는 건물을 지을 때도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할 것이 아닌가.


  오랑주리 미술관 1층은 모네의 수련관이다. 안정감이 드는 타원형의 전시관 벽에는 물결에 아른대는 수련, 그 여덟 점이 쭈욱~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 가운데에는 마치 그림자인 양 등받이 없는 의자들이 길게 드리워져있다. 거기 앉아 시간을 낚으며 그 그림을 보노라면 그림이 일렁이는 것도 같고, 모네의 영혼이 일렁이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마음도 왠지 살라거린다. 머리가 희끗하신 나이 지긋한 신사 한 분이 가운데 앉아 그림을 감상하고 계셨다. 작품과 교감이라도 하고 계신 듯한 그 눈빛은 모네의 작품보다 인상적이었다.


  오랑주리는 아무래도 모네가 시그니처이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깊은 감동이나 전율을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나에게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 같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작품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매혹적이었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특별하게 말을 걸어주거나 어떤 영감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하에서 내 발목을 부여잡고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 있다. 바로 마리로랑생의 작품이었다.


  지하에도 참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다.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면서 참으로 눈이 즐거웠는데 마리로랑생의 작품 앞에서는 그 즐거움과 기쁨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기 전에 확 새치기하고 들어온 것은 '그래! 이게 바로 여자야.'라는 생각이었다. 몸의 곡선을 과장하며 육감적인 감성을 캔버스 밖으로 표출하는 그런 아름다움은 여성이 느끼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물론 이 생각은 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보고서야 겨우 깨닫게 된 나의 진실한 생각이다.)


  앙마르고 가냘프고 어딜 봐도 육감적인 매력을 뽐내지 않지만 여성미를 한가득 품고, 그 매력을 드러내는 코코샤넬의 초상화를 보면서 나는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남자들의 눈에 비친 여성의 육감적인 모습들을 보며 학습된 아름다움을 내 감상인양 껴안고 살았던 것이다. 왜 교과서에선 마리 로랑생 같은 작가를 품지 않았던 걸까. 내가 미술교과서를 펼치던 그 시절에는 마리 로랑생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해 보니 언제부턴가 마리 로랑생은 교과서에도 실리게 된 모양이다. 참 다행스럽게도.


  마리 로랑생의 그림들 속에서 나는 헤어나지 못했다. 파묻혀버리고 싶었다. 가냘프면서도 약하지 않고, 샤프하면서도 날카롭지 않은 그 선과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개성이 돋보이는 그 색들은 너무도 매혹적이었다. 마리 로랑생의 작품들은 남성들의 시선에 비친 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여성의 모습이 여성의 전부가 아님을 아주 강렬하게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내면에 담고 있는 진정한 여성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표현한다. 누구도 반박 못할 완벽한 그 외침이 너무도 좋다. 나에게 오랑주리는 마리 로랑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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