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드리의 솔루션북] 미셸 공드리
괴롭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괴로움'이었다. 주인공 마크 덕분에 정말 괴롭고 알찬 2시간을 보냈다. 마크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짜증이 나고 어이가 없는 와중에 웃게 되는 나 자신이 황당하게도 느껴졌다. 아마도 마크를 보며 괴로운 이유는 나에게도 그와 같은 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유난히 싫은 어떤 점이 보인다면 나도 그것을 가지고 있기에 내 눈에 그 점이 잘 보인다는 말이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특성 중 마음에 들지 않고, 고치고 싶은 점들이 있다. 그런데 상대에게서 그 점을 보게 되면 너무나도 싫은 것이다. 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싫은데 남도 그러고 있으니 얼마나 싫은가. 마치 거울 치료 같다.
이전에 어떤 영화를 보면서 유난히 화가 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분노가 가라앉을 때쯤에야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주인공에게 너무 화가 났었다는 걸. 마치 내가 저렇게(이렇게) 한심하게 행동하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혹은 알면서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하는 것에 속이 답답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 어쩌면 나아진 점이 있다면 이제 스스로 내 감정의 원인을 알고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크가 너무 싫으면서도 마냥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어주기도 하며 마크에게(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 ‘이해를 해야 사랑할 수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될 때보다는 안 될 때가 훨씬 많다.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 인간이니까. 그래서 그냥 먼저 나를 사랑하고 보는 것이다. 이옥섭 감독님과 구교환 배우가 한 방송에서 했던 말이 있다.
‘만약에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 버려요.’
나는 내가 너무 미워서 사랑해버리려고 한다. 실패할 때도 많지만 조금씩 성공하는 순간이 많아지고 있다. 너무 미운 나를 귀여워해보려고 한다. 만약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라면, 한없이 착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면 과연 그런 내가 좋을까? 매력적이지도 사랑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뭐 저리 비인간적이야 싶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적인 나를 사랑해보려 한다. 내가 이렇게 노력할 수 있게 하는 힘의 많은 부분이 영화와 책에서 나온다.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서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구나.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다행이다.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오히려 좋아. 너무 귀여워!
솔직히 터놓자면 마크처럼 행동하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을까. 마크처럼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참아서 그렇지 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접시를 집어던지거나, 마크의 상상처럼 물건에 총을 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처럼 하고 싶은 일은 그냥 저질러 버리고,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 때문에 진작 해야 하는 일들은 뒷전으로 미루며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마크처럼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은 그의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크의 곁엔 샤를로트, 드니즈, 실비아와 가브리엘까지. 그를 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아무리 말도 안 되게 굴어도 그의 좋은 점을 봐줄 수 있는 사람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의 존재를 좀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느 한쪽이 아닌 양 쪽 모두의 빈틈과 메꿈이 있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인생과 다를 것이 없다.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노력, 시간, 그리고 기나긴 싸움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서 나 자신과의 싸움,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싸움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각자가 모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이해와 공감. 이것이 나의 솔루션 북에 적힐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