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영화관을 나오며 어느덧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표정과 닮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행복해서 슬픈 건지, 행복하지만 슬픈 건지, 아니면 행복하면서 슬픈 건지. 어쩌면 그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Nina Simone의 [Feeling Good]이 흐르는 동안 그와 나의 얼굴은 슬픔과 행복이 만든 빛으로 일렁였다.
komorebi :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오르고 나면 코모레비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하나의 단어에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슬픔과 기쁨이 버무려진 순간들이다. 우리는 슬프고 기쁘게, 그렇게 살아간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인 코모레비처럼 슬픔의 바탕에 기쁨이 일렁이거나, 혹은 기쁨의 바탕에 슬픔이 일렁이며.
나는 코모레비를 정말 좋아한다. 히라야마처럼 필름 사진을 몇 년째 찍고 있는 나는 코모레비 폴더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매일 찍는 그 비슷한 사진들에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른다. 그가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 기쁨을 나도 느껴보았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태양과 나무지만 왠지 모르게 나뭇잎 사이를 지나며 춤추는 햇살을 보면 내 안의 행복도 춤추는 걸 느낄 수 있다.
행복이 얼굴을 비추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자 매번 같은 것에 기뻐하며 카메라를 든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나의 기쁨을 기억하고 싶어서, 나아가 다른 사람도 이 사진을 보고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 같아서 사진을 찍는다. 그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 느끼는 이 기쁨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일 뿐이라는 사실에 행복해서, 슬퍼서 오늘도 카메라를 든다.
흑백 필름
히라야마가 찍는 흑백사진은 무심코 보면 큰 차이가 없는 사진들이다. 왜 매번 비슷해 보이는 것을 몇 상자씩 모으는 것일까. 어떤 이는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가 찍은 사진들 중 같은 것은 없다. 코모레비는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순간이 지나면 절대 다시 같은 코모레비를 볼 수 없다. 그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언뜻 보면 매일 반복되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의 하루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매일 아침 새벽에 비질 소리에 눈을 뜨면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한 후 나무가 될 식물들에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자판기에서 매일 같은 캔커피를 고르고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같은 화장실들을 청소한다. 단골 목욕탕과 단골 식당을 이용하며 책을 읽다 잠이 든다. 주말은 주말만의 패턴이 있다. 그가 매일 찍어 모으는 흑백사진 같은 삶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 다른 음악을 듣고, 매일 다른 코모레비를 바라보며, 매일 다른 날씨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는 삶의 행복을 느낀다.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줄 아는 그의 표정은 바라보는 이 마저 행복하게 만든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인생이 너무도 부러웠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삶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 음악, 필름사진, 책, 식물, 성실하게 반복되는 일상.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그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 그가 부러웠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 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가. 아니다. 어쩌면 이미 나도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단 하나.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아는가.
한동안 삶이 힘들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 왜 바뀌지 않는지, 왜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운 좋게도 한 달간 휴직을 할 기회를 얻었다. 한 달 동안 혼자 여행을 다녔다. 차도 없이 캐리어를 끌고 3주 동안 8곳의 숙소에 묵었다. 하루 6-7시간 땡볕 아래를 걸었다. 이 여행을 통해 무언가 배우는 것이,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한다. 여행 초반에 나는 그 무언가에 집착했다. 내가 여기서 얻어가는 것이 없으면 어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늘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얻어가는 것 아닐까. 지금 느끼는 이 기쁨이, 금세 사라져 버릴 이 행복이 내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다음이 언제냐는 조카의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가장 인생을 퍼펙트하게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 영화에 수록된 올드팝들은 정말 좋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말 그대로 전율과도 같은 감동이 느껴졌다. 한동안은 나의 플레이리스트 가장 상단을 차지하게 될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