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녹 May 04. 2024

[괴물] 나는 불쌍하지 않아.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Aqua-Ryuichi Sakamoto)


 편견을 낳는 주된 원인은 관점, 즉 어떤 것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이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편향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생각한다. 정보의 부족, 욕망의 차이, 본인이 처한 상황이나 입장은 시선의 폭을 좁힌다. 여기에 더해 살면서 형성된 가치관이나 타고난 성향 등으로 만들어진 ’나‘라는 하나의 객체가 지닌 색으로 인해 우리는 동일하게 내리쬐는 빛이라도 특정 색만 반사시키고 나머지는 묵음 해버린다. 이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아무리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하더라도 그 판단이라는 것이 결국 나를 거쳐 나오기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특별히 상대, 혹은 상황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내가 악당이어서 일그러진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꼭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기에, 보편적이고 평범하기에, 더욱 슬프다. 그저 ’평범한‘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이 치명적인 편견일 수 있기에 이러한 아픔은 예고도 없이 도처에 널려있다.


호리 선생은 요리와 미나토에게 ‘남자답게’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가 유난히 가부장적인 사람이어서 혹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체적인 폭력만이 폭력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폭력도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듯 그렇게 가벼운 것들이 쌓여 무거운 결과를 초래한다. 남자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던가 남자답게 악수를 하라는 작은 말들이 결국 아이들의 마음속에 태풍을 일으킨다. 그렇기에 미나토는 자신에게 돼지의 뇌를 가졌다고 이야기한 사람으로 호리 선생을 지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 말랑하고 방대한 시선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요리 아빠의 폭력과 호리 선생의 말이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살면서 다른 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나 상처를 주는 상황은 필연적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간들 그것도 어떤 상황에서는 나쁘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은가.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뤄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잔인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삶은 원래 그런 거야.‘ 하며 포기하고 제멋대로 살면 되는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책임감 없는 태도로 살아간다면 정말 괴물이 되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이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볼 줄 아는 감수성은 능력이다. 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신발을 바꿔 신어보는 유연성과 나아가 다양한 모양과 색의 신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유연함. 나에게는 당연한 사실이 당신에게는 터무니없는 가설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미나토의 엄마가 생각하는 ’평범함‘이 미나토에게는 자신을 가두는 흰 선이 될 수 있듯이 무심코 그어진 선의 안팎으로 판단하고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 흙속에 묻힌 기차를 찾아낸 미나토의 엄마와 호리 선생이 그 속에서 아이들을 발견했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거센 폭풍 속 위험에 처해 있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나토의 엄마는 학교를 찾아가고, 호리 선생은 아이들을 다정하게 지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치는 날 기어코 산사태를 뚫고 아이들을 구하러 나선다. 하지만 흙물은 치우고 치워도 흘러내리며 그들의 눈을 가린다. 어쩌면 이 태풍을 초래한 이들은 그들이다.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고,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 것은 부모와 선생님의 작은 말 한마디, 나비의 날갯짓이다. 아이들에게는 우주가 사라지는 빅크런치보다, 세상을 뒤흔드는 태풍보다도 어른들의 편견과 혐오가 더 무서운 것이다. 아빠가 휘두른 폭력과 샤워기 물에 흠뻑 젖은 요리처럼 어른들의 편견과 그들을 가두는 틀은 가랑비처럼 조금씩 그러나 깊이 아이들을 적시고 상처 입힌다.



버려진 기차는 미나토와 요리만의 세계이다. 다른 누구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그들 다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이다. 부모 또는 선생이라도 침범할 수 없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세상이 있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태풍을 통과하며 성장한다. 그 강렬한 소용돌이 같은 감정을 정통으로 받아들이고 어른들의 도움 없이 힘차게 겁 없이 한 걸음 나아간다. 태풍이 지나가고 온통 흙투성이가 된 아이들은 터널을 넘어 찬란한 햇살 아래 푸른 자연 속을 달린다. 누군가 그어놓은 흰 선 따위는 전혀 없는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온전히 자신이 되어 힘껏 목소리를 내며 뛰어 나간다. 그 세상에서는 악기의 소리를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치며 기어이 자신의 목소리로 외친다.


난 불쌍하지 않아.


이전 07화 [로봇 드림] Do you remember?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