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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May 11. 2024

[챌린저스] 러브, 서브, 테니스

[챌린저스] 루카 구아다니노


러브. 무득점이라는 말을 이보다 로맨틱하게 말할 수 있을까.

테니스에서는 영점을 러브라고 말한다. 정말이지 테니스는 관계라고 할만하다. 주인공 타시 덩컨의 말에 의하면 테니스는 단순히 스포츠 게임이 아니라 관계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사랑에 빠지는 일, 또는 아름다운 걸 함께 하는 것이다. 그녀는 테니스를 칠 때 누구보다 당당하고 아름답다. 경기와 상대에게 고도로 집중하며 서로를 파악하고 그 관계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그녀의 테니스를 처음 본 아트와 패트릭은 한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그 순간 늘 함께하던 그들 사이에 타시라는 네트가 놓인다. 그렇게 ’타시 덩컨‘이라는 여자를 가운데 두고 엎치락 뒤차락 하며 멀어진 그들이 다시 서로를 마주하고 서게 된 곳은 챌린저급의 테니스 경기이다. 역시나 타시를 기준으로 양쪽에 서로를 바라보며 선 그들은 러브와 서브를 주고받는다.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그들은 모두 여전히 테니스에서 챌린저이다. 패트릭은 아직도 제대로 된 기록 없이 챌린저급의 경기들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챌린저이다. 아트는 이름을 날리는 테니스 선수로 성장하며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의 인생에 패트릭이 나타나기만 하면 이기지 못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한 채 자신감과 의욕이 떨어져 챌린저급 게임에 와일드카드로 등장한다. 타시는 재능과 열정을 타고났지만 부상을 당해 테니스 선수로써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패트릭과 아트 사이를 오가며 진정한 관계를 갖지 못하는 챌린저로 전락한다.



그들은 사랑에 있어 챌린저이다. 영화는 게임에서 다시 만난 아트와 패트릭이 세트를 거듭하며 사랑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린다. 첫 번째 세트에서 패트릭은 아트를 이기며 이는 13년 전 타시의 번호를 얻기 위해 아트를 이기는 그의 모습과 이어진다. 그들은 불과 얼음으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고, 단식 게임에서는 아트를 위해 져줄 수도 있을 만큼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패트릭이 복식 게임에서의 승리는 아트와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뻐하는 사이였다. 여자를 보는 눈 마저 비슷했던 그들은 타시의 등장으로 틀어지게 된다. 아트는 패트릭이 그녀와 잤는지 계속해서 궁금하고, 이 관계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둘의 관계에 신경을 쓰며 질투심을 내비친다. 타시는 그에게 최악의 친구라고 말하며 화를 내고, 패트릭은 그런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테니스에서도 그렇게 푹 빠진 모습을 보여보라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세트에서 아트가 패트릭을 이기며 타시와 패트릭이 헤어진 후 아트가 그녀와 결혼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 번째 세트에서는 40:40으로 듀스가 되어 아트, 패트릭, 타시의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아트와 결혼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타시는 패트릭을 만나 바람을 피우고, 결승 전날에도 엄청난 바람 소용돌이 속에서 그 둘은 바람을 피운다. 사우나에서 마주친 아트와 패트릭은 신경전을 벌이고, 특히 아트는 패트릭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모진 말들을 내뱉는다. 이렇게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맴돌며 진심을 말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도전한다.


영화의 중후반까지 이 삼각관계의 중심축으로 느껴지는 타시는 패트릭의 열정, 쾌락에 끌리면서도 안정적이지도 헌신적이지도 못한 그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 타시가 무릎을 다치는 그날, 경기 직전 그들의 싸움에서도 타시는 그에게 ’게임이 끝나기도 전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의 단점‘이라며 모든 건 테니스 이야기라고 말한다. 테니스와 그녀의 관계 모두에서 패트릭이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하지 않는 점이 그녀의 마음을 식게 만든다. 반면 타시는 아트의 이성적이고 순종적인 성향과 끝까지 헌신하는 그의 모습에 끌려 그를 자신의 인생, 즉 테니스 파트너로 선택한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이지 못 하는 그의 고지식함과 시들어가는 열정에 타시는 마음이 식어가고 그를 미워하게 된다. 그녀는 그 둘을 모두 갖고 싶다. 사실 그 둘, 열정과 끈기를 모두 가진 그녀는 스스로 온전히 테니스를 못 하게 된 운명 앞에서 절뚝거린다. 무릎 위 상처를 보듬으며 매일 아침저녁 로션을 바르며 상처의 거친 기억을 부드럽게 지워보려 하지만 몰아치는 바람 폭풍처럼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럽다. 그토록 당당하고 아름답던 그녀는 언발란스한 그녀의 원피스 카라처럼 삐뚤어졌다.


반면 영화의 후반부에서 ‘game chager’로 셋의 게임에 진정한 축이 되는 아트는 진짜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한 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패트릭을 제대로 대면하고, 즉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대면하고 게임 체인저로써 테니스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아트는 정열적인 패트릭에 밀려 타시의 사랑을 차지하지 못하고, 패트릭과의 우정을 잃고, 끝에 가서는 결혼 생활에서도 온전히 사랑받지 못 한채 그녀에게 헌신하며 끌려다니는 불쌍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진짜 힘을 가진 것은 아트이다. 영화 초반 아트의 테니스 경기 씬에서 그와 타시는 대기실에 앉아 있다. 타시는 아트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지만 그는 복숭아를 먹으며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코트로 나가기 직전 타시는 아트가 뱉는 복숭아 씨앗을 손으로 받는다. 그녀는 아트의 아이를 낳아 키우며 그의 코치를 하고 있다. 13년 전 패트릭과 아트가 연습 코트에 들어가며 패트릭은 그가 뱉는 껌을 손으로 받는다. 둘 사이에 타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들은 운명의 단짝이었다. 이들은 아트를 사랑한다. 테니스 파트너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방식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의 타액을 손으로 받을 정도로 그를 사랑한다. 아트 또한 마차가지이다. 아트는 타시를 사랑하고, 패트릭을 사랑한다. 아트는 이기고 싶기에, 혼자서도 빛나는 타시를 동경하기에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그와 함께하는 패트릭을 사랑한다. 그가 타시와 패트릭 사이를 질투하는 모습에서 누구를 질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관객인 우리도, 심지어 아트 자신도 모르는 듯하다. 그는 소외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최악의 친구로 보일까 봐 걱정된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으며, 누구에게 최악의 친구가 될까 우려하는 것일까. 마지막 장면으로 말미암아 그 ‘누구’는 패트릭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 세트에서 게임 체인저로 등극한 아트가 타시와 패트릭이 잤다는 시그널을 보며 불같이 화를 내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는다. 오히려 패트릭에게 씩 웃어 보이기까지 하며 열정적으로 게임에 임한다. 그는 진짜 테니스를 한다. 온전히 자신이 되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듯 사랑에 푹 빠지고, 아름다운 걸 함께한다. 패트릭과 함께한다. 그리고 그 둘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며 끝내 네트를 넘어 서로를 안는다. 그렇게 아트는 진정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깨달은 것 같다. 패트릭은 온몸으로 그런 그를 받아준다. 그리고 타시는 다시 한번 그때 모든 것을 잃기 전 그 테니스를 친다. 최고의 테니스를 보고 싶어 하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cinematic.mm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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