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녹 Apr 27. 2024

[로봇 드림] Do you remember?

1-5. [Robot Dreams] 파블로 베르헤르

Robot Dreams.


거대한 도시 속 혼자 살고있는 강아지는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어둡고 고요한 방 안에 앉아 상대 없이 혼자 게임을 하고 저녁을 먹으며 어두운 TV화면 속에 비친 쓸쓸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화면을 켜 이것저것 둘러보지만 마음 둘 곳은 없다. 느닷없이 ’ARE YOU ALONE?’이라는 문구와 함께 로봇 친구를 배달해 준다는 광고에 마음을 뺏긴 강아지는 로봇을 주문한다. 바로 다음 날 아침 배송받은 로봇을 하나씩 조립한 강아지는 하나뿐인 친구 ‘로봇’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낸다.



차갑고 단단한 철로 만들어진 로봇은 그 외면과는 달리 따듯한 마음과 사랑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거대한 로봇이 처음 몸을 일으켜 눈을 뜨는 순간, 긴장되는 분위기 속 창 밖의 새들은 놀라 달아나고, 강아지는 이를 숨죽여 지켜본다. 걱정과 달리 로봇은 한눈에 강아지를 친구로 인식한다. 아기새가 갓 눈을 떴을 때 자신 앞에 보이는 누군가를 엄마로 생각하며 한눈에 사랑하게 되듯 로봇은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강아지를 첫눈에 사랑하게 된다. 강아지가 로봇을 친구로 산다는 사실은 슬프다. 거리마다 누군가 가득한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마음 나눌 친구 하나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은 그리 드물거나 이상한 일이 아닌 가까운 일이기에 슬프다. 어쩌면 로봇은 강아지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이상적인 친구이다. 공허하고 외로운 우주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나 변하지 않는 행복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살면서 바라는 많은 것들 중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간절한 소망이다. 강아지와 로봇의 사랑은 말 그대로 꿈같은 사랑이다.



강아지는 돈을 지불하고 로봇을 구매하지만 직접 손으로 하나씩 조립하여 로봇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런 능동적인 행위는 로봇이 강아지가 원하는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임과 동시에 스스로 그러한 인연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준다. 다른 시퀀스에서도 이러한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위해 스키를 타러 가거나 연을 날리다 우연히 만난 오리와의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마주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강아지는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스키장에서 만난 개미핥기들처럼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이들을 만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어쩌다 마주쳐 먼저 다가와준 오리와 같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만남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좋은 시간을 보내는 상대와 가치관, 취향 등이 다르기도 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타이밍이 어긋나기도 한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의 곁을 떠나고 떠나보낸다.


이렇게 우리는 다양한 이들과 우연과 필연, 운과 노력을 통해 가까워지고 멀어지며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로봇과 강아지의 관계는, 특히 강아지에게 있어 로봇은, 필연과 노력에 의한 산물이다. 강아지는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와 6월 1일이 될 때까지 로봇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친구를 기다린다. 반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로봇의 다리를 잘라 간 토끼들, 로봇을 고물상에 팔아넘기는 원숭이, 그리고 로봇을 한낱 고물 취급하며 던져 버리는 악어까지, 로봇을 동등한 생물체로 대해주지 않는 이들도 많다. 즉 상대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그것이 로봇일지라도, 그를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에 따라 고작 고물 덩어리가 되기도,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영화 속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등장하고, 같은 동물이라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한 그들이 등장한다. 로봇의 다리를 잘라 가는 세 마리 토끼와 로봇 곁에 만든 작은 둥지 속 세 마리 아기 새들 중 한 마리씩은 나머지 둘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토끼 중 한 마리는 마치 왕이라도 되듯 나머지 토끼들에게 명령하고 떠받들어진다. 다른 색의 깃털을 가진 새는 나머지 새들에 비해 모자르고 소외되는 듯하지만 로봇의 애정으로 멋지게 성장한다. 이렇듯 우리는 나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그것이 외면이든 내면이든, 나머지보다 특별하게 섬기거나 따돌리곤 한다. 똑같이 생긴 로봇도 각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듯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른 것은 특별한 것이다. 특별한 것은 차별할 것이 아닌 아니라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 차별은 따돌림의 차별과 섬김의 차별을 모두 포함한다. 어쩌면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내 앞에 당신을 틀리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다른 누군가를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나와 당신을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Do you remember?


로봇을 그리워하던 강아지는 눈사람에게 눈, 코, 입을 만들어주고 살아 움직이게 된 그와 함께 볼링을 치는 꿈을 꾼다. 토끼들에게 다리가 잘리고, 고물가게에서 조각조각 분해되어 버린 로봇은 너구리를 만나 카세트 몸통과 새로운 다리를 갖게 된다. 이렇게 차갑고 딱딱한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며 그들과 친구가 되는 장면들은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을 떠오르게 한다.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인형, 로봇 장난감, 눈사람 등 생명이 없는 것들과 친구가 되어 상상의 나라로 떠나곤 했다. 마치 [토이 스토리]나 [박물관은 살아 움직인다]와 같은 영화처럼 우리는 모든 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뛰어놀 수 있었다. 이제 훌쩍 자라 어른이 된 지금도 남몰래 마음속 비밀을 털어놓았던 곰인형과의 시간들이 그리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로봇이 꿈꾸는 오즈의 마법사 세상처럼 꽃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허수아비, 사자, 양철사람과 친구가 되어 길을 떠나는 그들이 이상하거나 미쳐 보이지 않는 그 환상적인 세상처럼. 그들의 모습이 어떻든 마음을 나눌 수 있고, 함께 위험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관계는 그렇지 않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처럼 내가 필요할 때마다 품에 안고 비밀을 속삭이거나, 귀찮다고 마음대로 던져 버릴 수 없다. 세상은 절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은 결국엔 지나가버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우리를 갈라놓는다. 결국 로봇과 강아지는 헤어지고 로봇은 너구리와 함께, 강아지는 새로운 네모 로봇과 함께 하게 된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고, 행복했던 지난 순간들을 추억한다. 하지만 각자 그 기억들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새로운 인연과 함께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흘러간다. 여전히 그립고, 여전히 보고 싶지만 구태여 과거의 행복들로 현재 행복의 발목을 잡지는 않으려 한다. 대신 그 추억들이 쌓여 오늘 더 행복하길 바라본다.




@cinematic.mmnt


이전 06화 [레이디 버드]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