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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녹 Apr 20. 2024

[레이디 버드]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1-4. [레이디 버드] 그레타 거윅



왜 날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지 않는 거야?


주인공 크리스틴은 스스로 이름을 붙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소개하며 그렇게 불러주길 요청한다. 스스로 이름을 붙이는 행위에는 깊은 고민과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이름을 짓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데, 나의 필명부터 내가 쓰고 있는 모든 글들의 제목, 하다못해 sns 아이디까지 그 속에는 깊은 사려와 순간의 직감이 담겨있다. 이름에는 정체성이 담겨있기에 한 마디로 나를 표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레이디 버드 또한 기나긴 숙고 끝에 스스로 이름을 붙였으리라. 그렇다면 그 이름은 그녀의 무엇을 드러내려 하는 걸까.


LADY와 BIRD.

수많은 단어 중에 그녀는 이 두 단어를 선택했다. 전혀 연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이 한 사람을 표현하고 있다. lady. 요즘 들어 영국 시대극 시리즈나 영화를 즐겨 보았는데 상류층 여성들의 호칭에서 ‘레이디’라는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 사교계 여성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레이디 버드는 스스로 ‘교양 있는 숙녀, 아기씨’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bird’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는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꾼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길 꿈꾸는 레이디 버드는 아직 제대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둥지에서 떨어져 보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녀는 엄마와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하더니 엄마의 무분별한 공격에 결국 터지고 만다. 그녀는 달리는 차에서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지긋지긋한 둥지를 떠나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아직 날 준비가 덜 된 그녀는 당연히 맨바닥에 헤딩하듯 떨어지고 팔이 부러진다.



날개를 다친 그녀는 여전히 답답한 가톨릭계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 1년은 어딜 봐도 ‘lady’스럽지도, ’bird’스럽지도 않다. 그녀가 생각하는 레이디는 잘 나가는 사교계 여성처럼 돈 많고, 인기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가씨였을까. 혹은 어린 소녀 티를 벗고 사랑에 빠지는 숙녀였을까. 그렇다면 레이디 버드는 끝내 그토록 원한 ’레이디‘가 된다.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하고, 거짓말을 하고, 말썽을 부리며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친구와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그 무리 안에 제멋대로인 소년과 사귀며 첫 경험을 한다. 하지만 상상했던 바와는 많이 다르다. 새로 사귄 여자 친구는 레이디 버드를 이상한 애로 여기고, 그들은 별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새로 사귄 남자 친구는 스스로 뭐라도 되듯 어려운 얘기만 늘어놓으며 정작 여자친구에게 배려나 만족감 등은 주지 못 한다. 첫 경험은 30초 남짓하게 끝났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bird’가 되는 것은 제대로 성공했을까? 그녀는 새가 되어 새크라멘토를 떠난다. 예일까지는 아니어도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그토록 꿈꾸던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 몰래 뉴욕에 있는 대학교에 지원한 그녀에게 화가 나 말도 안 하고, 공항에서 배웅조차 해주지 않는다. 뉴욕에서 첫날밤, 술을 진탕 마시고 정신을 잃은 그녀는 얼룩덜룩한 얼굴로 병원에서 눈을 뜬다. 둥지를 떠난 그녀는 여전히 어설프고 모자라서 완벽하게 날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리도 원하던 뉴욕에서 그렇게 벗어나고만 싶던 고향을 떠올린다. 끝내 ‘레이디 버드’가 된 그녀는 ‘크리스틴’이 된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던 그 이름이 이제는 그녀를 담고 있다.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엄마는 가끔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으로 그녀를 부른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분노한다.

 “왜 날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지 않는 거야?”

그녀는 엄마가 자신을 인정해 주길, 지금 이 모습의 나를 그대로 바라보고 좋아해 주길 원한다. 엄마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묻는다.

 “그건 알아. 그런데 날 좋아하냐고.”

지금까지 ‘좋아하다’와 ‘사랑하다’를 떨어뜨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랑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큰 마음이라 ‘좋아한다’는 원소를 포함하고 있는 집합이라 의심 없이 여겨왔다. 이를 분리시켜 말하는 그녀의 질문은 즐거운 충격을 주었다. 그렇다. ’좋아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만이 참인 명제가 아니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도 참이 될 수 있었다.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관계가 있듯이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 사람이 좋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부모 자식 사이라고 서로를 무조건 좋아하리란 법은 없다. 그리고 항상 좋으리란 법도 없다. 깊고 진한 사이라도 좋았다 미웠다 하는 것이 사람이고 진실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내가 밉지만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고, 나를 사랑하면서 내가 좋은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딸은 엄마가 나를 좋아해 주길 마음속 깊이 바란다.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돼? 엄마는 엄마지만 나의 가장 친한 여자 친구이기도 하니까. 나를 좋아하길 원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어쩌면 엄마도 딸이 당신을 좋아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쪽이 좀 더 정확한 묘사인 듯싶다.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내 모습이 싫어서, 미워서, 그러니까 좋지 않아서다. 레이디버드는 학교에서 회장 출마를 하기도 하고, 남들에게 본인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굉장히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일고 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지금 나를 드러내고 싶고,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앞으로 나은 삶을 열망하며 분명히 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계속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강한 마음이 있다면,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좋아졌다, 싫어졌다 하는 바람에 쉬이 몸을 흔들리는 가지를 가졌다한들 상관없다. 꽃을 피우고 단풍이 들고, 새순을 피웠다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낙엽을 떨어뜨리며 끊임없이 변하더라도 우리는 나무를 여전히 나무라고 부를 것이다.  



지금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엄마와 프롬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고르던 레이디 버드는 마음에 쏙 드는 원피스를 발견한다. 조금은 유치해 보이는 그 원피스를 입고 좋아하는 그녀를 보며 엄마는 ‘너무 핑크 아니야?’ 하며 칭찬에 인색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엄마를 보며 그녀는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되냐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질문에서 조금 벗어나는 대답을 한다.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여기에 대답하는 그녀의 말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지금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말문이 턱 막혀 당황하는 엄마와 함께 나도 숨이 턱 막혔다. 엄마의 그 말에는 ’지금 너보다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즉 이보다 더 나아져봐‘라는 기대와 애정, 더불어 불인정이 함께 녹아있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말이었겠지만 그녀에겐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레이디 버드는 거울을 보며 ‘왜 나는 잡지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생기지 않은 거야?’라며 스스로를 온전히 좋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불확실한 순간에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누군가라도 대신 나를 좋아해 주길 원해본다.


사실 이 모든 마음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슬며시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내 모습이 최고의 모습이라면 어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아니 너무 싫은 지금 내 모습에서 더 나아지지 못할까 두렵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재보다 더 나아질 미래를 희망하곤 한다. 지금보다 나빠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아야 더 나아질 거라 다들 말하지만 이 순간에 흡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모순된 두 감정이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만족해하며 동시에 만족하지 않으며 살다 보면 깨닫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 그 순간에 나는 최고의 나였음을. 한낱 한 시에 다양한 선택을 하며 살아보지 않는 이상 모든 가정에서 내가 어떤 모습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훗날 뒤돌아 보았을 때 모든 순간 나는 그날의 최고인 나였다고 믿을 수 있는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보기에 추한게 꼭 부도덕한 건 아니에요.


어설픈 연극, 첫 연애와 첫 남자친구의 커밍아웃, 가장 친한 친구와의 싸움,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가족과 엄마와의 갈등. 인생은 삐걱거리며 나아간다. 그녀는 낙태를 반대하는 강사의 말에 반기를 든다. 강사는 어디서 한 번씩은 들어본 듯한 상투적인 이야기로 낙태는 부도덕한 일이라 주장한다. 어쩌면 뻔한 그 이야기에 그녀는 말한다.

 “보기에 추하다고 무조건 부도덕한 건 아니에요.” 이에 강사가 되묻자 그녀는 생리를 하는 자신의 성기를 가까이 찍은 사진은 보기엔 징그러울지 몰라도 나쁜 건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표현은 날 것 그대로이고 과격하다. 어리고 서툴며 그래서 솔직한 그 말은 나이가 들수록 포장하고 감추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성찰을 던진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도 계속 어리고 서툴다. 매일 오늘은 처음 살아보는 날이기에 어설프고 바보 같고 기대만큼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음은 이랬다 저랬다 하고 실패하고 넘어져 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추한 모습들,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추하다고 단정하는 모습들을 부도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연극 연습을 하는 씬에서 목사님은 말한다. 옳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어떤 사실들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자꾸만 ‘이것은 옳은 일인가?‘ 하며 자신을 옥죄인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흑과 백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다채로운 색을 띤다. 그렇기에 ’ 맞다/틀리다 ‘로 바라볼게 아니라 그 안의 진실(true)을 들여봐야 한다. 습관처럼 ‘이게 맞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일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부터는 O/X 둘 중 하나로 답해야만 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주관식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려 한다.





세상에 전쟁보다 슬픈 건 많아.


항상 책을 손에 들고 세상 이야기를 하는 카일. 모든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본인 덕분에 소중한 첫 경험을 망쳐 속상해하는 크리스틴 앞에서 그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더니 갑자기 전쟁 이야기를 꺼낸다. 전쟁은 슬프다. 정말 슬픈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는 한낱 사소한 슬픔들이 너무나도 많다. 레이디버드의 인생만 보아도 모두 나열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 순간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슬픔을  지니고 있다. 레이디 버드의 엄마는 정신병원에서 밤낮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아빠는 실직당했으며, 오빠는 좋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여자친구와 마트에서 일한다. 레이디 버드와 꿈같은 연애를 한 대니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모님이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학교 목사님은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녀의 단짝인 줄리는 자신을 그냥 원래 불행한 사람이라 말한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 슬픔을 가슴 깊숙이 가지고 살아간다. 정말 작고 사소한 슬픔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슬픔까지. 슬픔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삶인 마냥 그렇게 살아 나간다. 그럼에도 이 슬픔들이 다른 슬픔을 만나 서로의 그것들을 매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적어도 내가 당신의 슬픔을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길, 그래서 우리의 슬픔들이 만나 커다란 슬픔으로 자라나지 않길 다짐한다. 서로 부비고 맞닿아 따듯함이 스며 나오길 진정으로 바란다.



엄마도 새크라멘토 거리를 처음 운전할 때 감상에 젖었었어?

난 그랬어, 그 얘길 하고 싶었는데 그땐 우리 사이가 안 좋았지 평생 지나다니던 그 길들, 가게랑 건물들이 너무 정겨웠어.

엄마한테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사랑해요. 고마워요.

… 고마워요.


너무나도 익숙해서 지겹고 싫던 그 풍경들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그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괴롭고, 벗어나고 싶고, 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일부가 되어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토록 밉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사랑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항상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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