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낳다>
살면서 참 무겁다고 느껴진 것들이 몇몇 있다.
졸음으로 눌린 눈꺼풀
책임을 짊어진 어깨
오랜 세월 놓았던 연필
진실을 머금은 입술
개중에 하날 다시 집어보려 한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문득 떠오른 시상이 날아갈까 두려워 부랴부랴 수첩이나 핸드폰 메모장을 열고선, 시상의 날개를 똑 떼어 기록하던 내 모습은. 아직도 핸드폰 메모장엔 쓰다 만 시들이 유적에서 막 발굴된 고서마냥 군데군데 살점이 빈 채 놓여 있다. 일상 속에서도 감성의 옅은 호흡조차 느끼겠다던 작은 바람은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현실이란 광염狂炎에 녹아내렸다. 돌이켜 보면 유치하고 어수룩했던, 어쩌면 내 심장보다 더 꿈틀대던 그 감성. 무엇이 앗아갔고 나는 왜 그리고 지금, 그것을 찾으려 하는가.
한때 여행 작가를 꿈꾸었고 별명조차 감성굳으로 지었다. 그 정도로 나는 가슴 깊은 곳의 미세한 떨림을 몇 줄의 활자로 적는 걸 즐겨 했다. 이제껏 100여 편의 시를 지으며 내 감정을 오롯이 느끼려 했다. 하지만 연필보단 밥숟가락이 더 절실했을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녹록지 않았기에 가슴 안에 ‘감성’ 단 두 글자 품을 여유는 내게 과분했다. 시조를 읊으며 자적하게 사는 건 돈 많은 백수에게나 가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동화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버리곤 대학교 도서관에서 전공 책을 펼쳤다.
다시 살고 싶다. 도서관에서 수십 가지 전자공학 공식을 적어 내려가던 연필보단 누군가를 향한 진심을 편지지에 꾹꾹 눌러쓰던 연필을 다시 쥐고 싶다. 어딘가 묻혀 있을 쓰다 만 시들의 뿌리도 캐내겠다. 딱 맞는 표현을 찾았을 때 오는 그 쾌감, 그 짜릿함을 느끼고 싶다. 뺨을 스치는 바람 한 점에도 가슴이 바르르 떨리고 싶다. 매일 같은 자리에 지는 노을에도 의미를 담고 싶다. 삶의 생기를 되찾으면 죽었던 감성이 다시금 날개를 달아 내 가슴에서 뛰놀 수 있을까.
나는 연필을 낳았다.
내가 태어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