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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Feb 16. 2023

한자시험 도전기

하나 둘셋넷다섯여섯...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는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쓰고 있다. 난 그 앞에서 마치 구령을 하듯 숫자를 반복하고 있다. 




"어머니 이번에 둘째 한자 시험 보는 거 어때요? "

"네. 어.. 둘째한테 한번 물어보고 정할게요."

"이제 초4이니 5급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번에 시험 삼아 준 5급 보시고 다음에 5급 보셔도 되고, 아님 다음 시험  준비한다 생각하고 5급 보셔도 돼요."

선생님이 가시고 아이한테 물어보니 아이는 이미 학습지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은 터라 시험을 보고 싶다고 한다.  

"왜? 한자 시험을 왜 보고 싶어? 학습지 한자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이요."




2학년이 된 둘째는 한자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고 싶다고 했다. 왜 하고 싶은지 물어봐도 그냥 하고 싶다고 한다. 국어 어휘의 60%가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으니 한자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초등때 해야 하는 것들 중에 하나로 한자를 꼽는다. 물론 여기에서 한자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닌 한자어 공부를 말한다. 나 역시 자격증을 위한 한자는 시키고 싶지 않았다. 저학년 때는 예체능 쪽 방과후 하다가 아이가 원하면 고학년 때쯤이나 시작했으면 했지만 아이의 의견을 따라주기로 했다. 중학교 때 한자를 처음 접한 나는 걱정이 되었다. 한자를 획수에 맞게 쓰는 것도 그렇고 훈, 음까지 공부하려면 켤코 쉬운 공부는 아닐 거라 생각됐다. 그런데 아이는 의외로 수업을 잘 따라갔다. 6월에 7급 자격증을 따더니 8월에는 6급 시험을 보았다. 6급 시험을 마친 아이는 이제 한자 방과 후 수업을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몇 달 사이 6급까지 시험을 준비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힘들었겠다 싶어 조금씩 집에서 공부해 보자고 하고 2학기 방과 후 수업은 다른 과목으로 신청을 했다.

한자 방과 후 수업 마지막날

"엄마." 둘째가 울먹이며 전화가 왔다.

"왜. 무슨 일이야. 수업 시간 아니야?"

"선생님이 나 이제 한자 못한대."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옆에 선생님 계셔?"

울먹이는 아이에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쿵쾅 거렸다. 선생님 말씀은 둘째가 2학기 방과 후 신청을 안 해서 잘하는 애라 더했으면 좋겠어서 엄마랑 상의해 보라고 전화를 해보라고 하셨단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해졌다. 최대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선생님께 아이랑 상의 한 부분이니 한자 수업은 그만두겠다고 했다. 

'꼭 아이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하셨어야 하나'.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 직접 전화 주시면 안 되나'

'선생님이 아이한테 어떻게 말씀하셨길래 아이가 울면서 전화를 했을까'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업을 마치고 온 아이와 한참을 얘기했다. 아이한테 선생님은 네가 잘하는 아이라 계속했으면 좋겠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한자는 언제든지 다시 배울 수 있느니 걱정 말라고.  


네가 언제든 다시 하고 싶을 때 말하면
그때는 엄마가 옆에서 함께 해줄게.


     


내가 말한 게 있으니 아이의 시험을 함께 해야 했다. 5급 배정한자는 250자 범위이다. 학습지 선생님이 주신 교재를 쭉 살펴봤다. 결코 만만한 시험은 아닌 것 같았다. 3주 목표를 잡고 시작했다. 생각보다 아이는 잘했다. 다만 내가 조금 귀찮을 뿐이었다. 아이가 한자를 하는 동안에는 무조건 같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시험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아이는 종이 하나를 쓱 내밀었다. 

"엄마 나 한자시험 합격하면 거북이 키우면 안 돼요?"

"무슨 거북이. 한자 시험이랑 거북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한자 시험을 합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한다고 했으니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해. 그런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거야."

"그러니까요. 일주일 남았으니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거북이 키워요. 엄마 여기 사인하세요."

"너 시험 끝나고 생각해 볼게."








시험 전날밤. 

아이는 자려고 방에 들어오더니 다시 나간다. 

"어디 가?"

"아무래도 모의고사 하나 더 풀고 와야겠어요." 한참 후 아이가 들어왔다.

"내일 아침에 채점해 주세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님 본인도 시험이 걱정되는 걸까. 아직 어리게만 봤던 둘째가 제법 어른스러워 보였다.

시험 당일날.

아이보다 내가 더 긴장이 됐다. 처음 온라인으로 보는 시험이라 이것저것 시스템적으로 걱정은 부분들이 있었으나 아이는 담담하게 시험을 잘 마쳤다. 온라인 시험이라 합격여부는 당일 저녁에 발표했다. 당당히 82점이라는 점수로 합격했다. 그리고 커먼머스크터틀 길쭉이와 동글이라는 새 식구가 생겼다.


카드처럼 만들어 매일 본 자료



 " 부모는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부모가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당장 예전과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대할 수 없더라도, 아이의 문제에 간섭하거나 아이를 야단치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아이는 부모가 없어도 자란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아이는 부모가 있어도 자란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만큼 아이는 강인한 존재다.
                                                                          
                                                                        엄마가 믿는 만큼 크는 아이(기시미이치로)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이의 강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온라인 시험이 처음이었지만 당황하지 않았고 시험시간 동안 원활하지 못한 시스템 문제로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집중하며 시험을 마무리하는 모습에 놀라웠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고 노력하려는 자세를 보았다. 준비기간은 짧았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더 강인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영향들을 불러왔다. 남편이 붓펜을 사 오더니 자기도 아이가 공부한 교재로 한자 공부를 해본다고 한자를 써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다 알던 한자들인데도 잘 안 쓰다 보니 헷갈리는 것들이 있었는데 아이와 함께하며 절로 공부가 되었다. 아이와 끝말잇기가 한층 고급스러워졌다. 아이 입에서 가끔 사자성어도 나온다.

"엄마. 좌불안석이 뭐예요?" 만화책을 보던 아이가 묻는다.

"앉을 좌, 아니 불, 편안할 안, 자리 석. 아니 불, 편안할 안은 이번에 배운 거잖아.

앉아 있으나 자리가 편안하지 않다는 뜻이지."

"아. 알겠어요."

전에 같으면 물어보지도 않았을 텐데 이제 아이가 먼저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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