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다(전체에서 일부를 제외하거나 덜어 내다.)
태어난 순간부터 상위 90%인 둘째.
영유아 검진시마다 상위 90%라는 숫자는 자랑스러웠다. 인지능력 지수가 아닌 신체계측 지수지만 나에게 아이를 잘 기르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속으로 엄청 뿌듯했다. 그런데 그 지수는 지금도 그대로다. 이제 초4가 되는 딸은 점점 걱정이 되었다. 주변에 성조숙증 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하나씩 늘어나게 되니 나도 마음이 급해진다.
성조숙증이란
사춘기 발달이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경우를 의미합니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아의 경우 8세 이전에 유방발달이 시작되는 경우,
남아의 경우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기 시작하는 경우를 말한다.
세 살쯤 아이는 코감기가 생겼다 하면 그다음 날부터는 숨이 가쁘기 시작했다. 바로 천식이 따라왔다. 소아과 선생님은 좀 커야 좋아진다고 하시는데 난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아침엔 좀 괜찮다가도 밤만 되면 아이의 끊임없는 기침과 가쁜 숨소리를 듣고 있자면 불안한 마음에 내 심장도 두근두근 거렸다. 심한 날은 아이를 두 번씩 소아과를 데리고 다녔다. 선생님의 입원하셔야겠어요라는 말씀을 듣는 날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초등학생인 큰아이를 두고 입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밤 잘 지켜보시고 안되면 내일 입원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수액을 맞고 집에 왔다. 계속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을 갔다. 한의원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아이의 키, 몸무게등을 말하시더니 아이가 비만 체질이라고 하신다.
" 엄마는 아닌데 그럼 아빠가 비만이신가요?" 아이를 안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묻는다.
" 아니요. 키 176cm 몸무게 70kg 정도인데요."
" 그럼 누굴 닮았을까요. 아무튼 아이는 비만 체질이니 관리 잘해주셔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시끄러워졌다. 무슨 세 살 아이가 비만체질이야. 말도 안 돼. 큰애도 어렸을 땐 통통했지만 5살 정도 되니 키가 크면서 살이 빠졌는데 당연히 둘째도 그러지 않겠어. 난 속상한 마음에 상담비 결제하고 한약은 짓지 않은 채 그냥 나왔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한의원 선생님 말씀은 맞았다.
초1 때 신생아 때부터 다니던 소아과 선생님께 성조숙증에 대해 물어봤다. 선생님은 검사보다 중요한 건 몸무게이니 간식류 및 음료수를 줄이고 식사량은 줄이지 말라고 하셨다. 둘째는 우유, 치즈, 달걀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여서 다행이긴 했지만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아이였다.
큰아이 기말고사 기간이라 간식을 끊이지 않게 쌓아 놓았다. 시험 스트레스 단거 하나라도 먹으면 풀리겠지 싶었다. 그 덕분인지 둘째 역시 살이 조금씩 늘어갔다. 대책이 필요했다. 우선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유튜브를 보며 이것저것 공통된 부분들을 적어 내려갔다. 아이 키와 몸무게, 생년월일을 넣고 클릭하니 적정체중이 나오고 키 순위가 나왔다. 역시 키는 90%다. 적정체중은 -3kg.
" 우리 이번 방학에 운동도 하면서 살 조금만 빼보는 건 어떨까?" 조심스레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부드럽게 얘기해 본다.
" 몸무게가 자꾸 늘면 2차 성징도 더 빨리 나타날 수 있고, 주변에 성조숙증 치료받은 애들도 하나씩 늘어나니 엄마도 걱정된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응. 우리 반 친구도 이제 주사 맞는대."
"그래. 이제 4학년이니 주변에서 많이 맞더라. 3kg만 빼면 적정체중이래. 우리 방학에 운동도 하고 식단도 조금 관리하면서 2kg만 빼보면 어떨까? 2kg 못 빼면 현상유지라도 하면 되잖아."
아이와 상의 끝에 우린 3개월 프로젝트를 정했다.
*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기
- 3개월 동안 키 크며 살 빼기
- 키 1.5cm 키우기, 몸무게 2kg 감량하기
첫째. 운동 시작 하기
집에서 10분 거리 교육문화회관에서 하는 겨울방학 특강 수영을 신청했다. 시설도 작년에 생겨서 깨끗하고 신청한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제일 좋은 점은 무료로 강습을 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3초 컷이다.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평균속도 34위.
모바일 인터넷 평균속도 3위.
9시 59분 30초 핸드폰을 켜고 크롬으로 들어가 로그인하고 수강신청을 클릭한 후 인적사항을 기록하면 접수 성공. 다행이다. 이번에도 3초 컷을 뚫고 수강신청을 완료했다. 그럼 1단계는 성공이다. 운동을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 살이 1kg은 빠진 것 같았다.
둘째. 식단관리
더 이상 과자와 아이스크림은 사다 놓지 않기로 했다. 과자, 아이스크림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먹고 싶은 거 사주기로 하고 간식은 과일, 고구마, 견과류, 마른오징어 등으로 대체하고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붕어빵, 호빵등은 양을 정해 먹기로 했다. 성장기인 아이라 매끼니는 적정량을 주되 가급적 면류, 고기류는 점심에 저녁은 생선, 야채, 닭고기등으로 정했다. 특히 아이가 좋아하는 라면이 문제다. 좋아하는 라면을 안 줄 수도 없고 그래서 내린 결론은 면을 삶아서 씻어내 수프를 양을 조금 줄이고 끓여 주었다. 라면에 기름기가 줄어드니 담백한 맛이다. 특히 첫째가 이 라면을 더 좋아했다. 느끼한 거 안 좋아하는 큰아이는 이렇게 끓여 주니 라면하나를 금세 먹어 치웠다. 둘째 역시 라면은 맛있다며 좋아했다.
셋째. 규칙적인 생활하기
방학이지만 7시 30분에 기상시간을 정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저녁에 또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기 때문에 기상시간을 정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로 했다.
넷째. 엄마와 함께하기
저녁을 먹고 아이랑 같이 짧은 운동을 하기로 했다. 뭐가 좋을까 생각하던 중 남편은 전신 운동인 pt체조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루에 80개 2주 정도를 해봤지만 재미가 없었다. pt체조 대신 우린 다이어트댄스를 하기 시작했다. 우린 어떤 아이돌 가수도 될 수 있었다. 다이어트 댄스라 어렵지 않고 노래도 흥얼거리며 몸을 움직이니 몇 곡만 따라 해도 금방 온몸에 땀이 났다. 무엇보다 엄마의 댄스 실력을 볼 수 있으니 둘째는 이 시간을 더 즐거워했다.
아마 꿈만 같겠지만 분명 꿈이 아니야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이건 사랑일 거야
방금 내가 말한 감정 감히 의심하지 마
그냥 좋다는 게 아냐 what's after 'LIKE'?
(아이브-after like)
나는 오늘도 노래에 맞춰 양쪽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오른쪽 팔을 벌린 후, 왼쪽 팔을 오른쪽으로 보내 몸을 비틀고 무릎을 굽혀 위아래로 쭉쭉 스트레칭해 준다. 최대한 아이돌처럼 깜찍한 표정도 지었다가, 섹시하고 귀엽게 엉덩이도 살짝 흔들어 준다. 웨이브 없이 꺾이는 허리를 만지며 둘째와 춤을 추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 아이고 삭신이야' 하며 일어나겠지만 둘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나 역시 즐겁다.
아이랑 프로젝트 진행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키는 0.5cm 정도 자랐고 몸무게는 그대로이다. 이번달 최대 고비였던 명절을 보냈는데도 몸무게가 그대로라는 점에 우린 안도했고 여전히 우리의 다이어트는 진행 중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