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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무 Apr 09. 2023

컬러링을 10개나 쓰는 이유

'버닝' 中

요즘 통화연결음(컬러링)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무뚝뚝한 기본음이다.

무엇보다 시간 대나 요일 별로 여러 개를 설정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대부분 그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기능 존재 자체를 모르고, 굳이 그런 사소한 것에까지 돈과 신경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컬러링을 사용하게 된 첫 계기는 흔히 콜포비아 (Call Phobia)라고 불리는 심리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거의 다 고쳐졌다.) 전화가 울리면 상대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손이 덜덜 떨렸다. 천둥처럼 요동치는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고 핸드폰을 들어도,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누를 용기는 끝내 나지 않았다. 짧으면 5초, 길어도 20초도 안 되는 그 시간에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상상의 끝은 꼭 부정적인 쪽으로만 향해 있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불만이 있었는데 이제야 참다가 말하는 걸까? 내가 혹시나 말실수를 했나? 도대체 무슨 용건일까?

비언어적 표현 없이 상대방의 표정과 진심을 상상하며 통화를 하는 것은 나에겐 굉장히 어려운 미션이다. 무엇보다 생각을 정리할 틈 없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말을 더듬게 될 때도 많다. 내가 말을 더듬는 것이 상대방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는 것 같다는 오해의 씨앗을 낳는 악순환을 만들기도 한다. 그 씨앗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시한폭탄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침묵을 하자니 그 침묵이 주는 불안함이 나로 하여금 진심이 아닌 말을 쉽게 내뱉게 만들기도 한다.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다. 5초 전에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헛소리의 대잔치다.

그런 일들을 겪은 난 꽤 오랫동안 전화 공포증에 시달렸다. 진동이 멈춘 후 최소 30분 정도가 흐른 뒤에야 난 메신저로 전화의 이유를 묻곤 했다.

나이브스 아웃  '中'

모르는 번호에 대한 공포증은 훨씬 더 심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데, 내 번호의 전 주인을 찾는 전화가 몰아쳤던 적이 있다. 하필 또 그 사람이 불법적인 일을 많이 저지른 모양이다.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다. 통화 상대의 신원을 확인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PC방에서 후불제로 사용하고 계산하지 않고 도망갔다거나, 게임 아이템으로 사기를 쳤다는 등의 범죄들이었다. 피해자들의 말을 들으며 추측해 보니 나보다 대략 10살은 많은 듯했다. (민xx씨, 지금은 어디서 잘 살고 계신가요?)

그때 당시 통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가 아닌 '안녕하세요 OOO입니다.'라고 내 이름을 말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괜히 무슨 내가 사업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혹시나 그 사람을 찾는다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 화를 내지 말아 주세요’
500일의 썸머 中

그럼에도 정말 가까운 사람과는 몇 시간 동안 쉼 없이 통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 사람은 뭘 해도 내 편일 거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조심하게 된다. 그 사람은 당연히 내 편일 의무가 없으며,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메신저가 편한 것은 또 아니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대화, 그 적정선을 찾아야 하고 상대방의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해야 하며, 일정 시간의 답장을 넘기지 않아야 하는 등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나를 잡아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난 연애할 때도 카멜레온처럼 상대방에 맞춰 변화했다. 상대방이 잦은 연락을 원하면 그만큼 나도 연락을 자주 했다. 힘들었던 건 나도 점차 상대방의 빠르고 잦은 연락을 갈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연락 문제로 자주 다투게 되며 쓸데없는 오해와 불만으로 관계가 무너지곤 했다.

'Euphoria Season 2' 中

어찌 되었든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전화를 안 받고, 안 걸고 살아갈 수는 없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전화를 바로 받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다.


"Personalized Coloring Service"


그렇게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다 나온 결론 첫 번째. 나와 자주 통화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 컬러링 서비스다. 번호 별로 컬러링을 설정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그 서비스를 이용한 이후로 그들은 내가 전화를 늦게 받거나 받지 않아도 짜증을 덜 낸다. 음악이 주는 만족감이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쾌함을 일부 상쇄시켜 준 것이다. 그들에게 맞춤화된 음악은 그들이 잠시 복잡한 머릿속에서 벗어나 음악에 오롯이 몰입하는 순간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친한 사람들과만 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은 시간대 별로 음악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었다. 낮, 밤, 평일, 주말을 나누어서 생각했다.


1. 08-18시

주로 일 또는 스팸 관련 전화가 많이 오는 이 시간 사이에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면서도 유명하고 너무 딥하지는 않은 곡으로 한다. 누구나 적당히 리듬을 탈 수 있는 템포의 곡으로 한다. 그렇게 컬러링을 설정한 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이 너무 좋네요. 무슨 곡이에요?'라는 첫마디의 말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해서 스몰토크가 이루어진 뒤 용건을 말하게 되니 쉽게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운 좋게 그 음악이 그의 취향에도 맞았다면 더욱 좋다. ‘영업'적인 측면에서도 꽤 많은 도움을 얻었다.

Justin Bieber, Calvin Harris, Sam Smith, 밴드 Coin 등 수많은 아티스트를 거쳐 지금은 Joji의 음악으로 하고 있다.


2. 18-22시

이 시간에는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나에게 개인적인 용건으로 전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남을 위해 약속을 잡았거나 만나기 위함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대중적인 곡보다는 적당히 나의 감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곡으로 한다. 음악을 더 듣고 싶어 '전화 끊고 다시 걸 테니 전화받지 마'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뿌듯하다. 음악 덕분에 나는 그들과 더욱 긴밀해질 수 있었다. 월 1회 무료로 바꿀 수 있는 부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이 시간대 음악을 뭘로 바꿀지 생각한다. (컬러링으로 등록되지 않은 곡들이 꽤 많아 정말 아쉽다.)


3. 22시-08시, 주말

누구나 센치해지는 새벽 시간이다. 심지어 주말이다. 이때 전화를 하는 경우는 꽤 깊은 사이일 것이다. 나의 요즘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곡으로 선정한다. 새벽과 어울리는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도 중요하다. 짧은 시간에 전달되는 그 한 두 문장이 나의 감정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음악을 들으면 내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음악을 듣고 싶다는 것을 핑계로 나에게 전화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처음엔 방어기제로 시작했던 컬러링이 이제는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변화되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음악을 고르고, 그 사람의 취향이 바뀌면 나도 맞춰 바꾼다.
나를 잘 알던, 잘 알지 못하던, 친하던, 친하지 못하던, 나에게 전화를 해주는 사람이 음악으로 인해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음악에 취해 용건을 까먹더라도 괜찮다. 오히려 좋다. 가끔은 당신들과 용건 없이 대화하고 싶다. 당신에게 내가 닿고, 내가 당신에게 닿으면 좋겠다.




브런치에서만 밝히는 나의 현재 22시-08시 컬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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