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와 초콜릿 그리고 간호사의 상관관계
모처럼 여유로운 날,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자리에 앉아 환자의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므로 추가적으로 확인할 것이 있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을 하던 중 병동 사무원 C가 내게 다가왔다. (병동마다 병동 사무원이라는 직함의 직원이 있는데, 병동 및 병원 시스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관여한다. 예를 들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주고, 외래 진료를 잡아주기도 한다.) 평소 재치 있고 늘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C는 내게 종종 슬랭을 알려주거나, 농담을 건네고는 한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침 인사를 나누자 C는 내게 "초콜릿 먹었어?"라고 물었고, 나는 "응? 무슨 초콜릿?"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C는 지난주에 퇴원한 환자가 외래진료를 보러 온 길에 초콜릿을 한가득 사 왔다고 말해주었다. 마침 간식이 생각나던 참이라 확인해 보니 사과 상자의 절반 크기의 초콜릿이 3박스나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누가 이렇게 많은 초콜릿을 가지고 왔나 싶어 C에게 어떤 환자였는 지 물어보니 약 4주간 입원치료를 받았던 환자 A라고 답해주며, 초콜릿 상자 아래에 카드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을 하나 골라 입에 넣고는 초콜릿에 정신이 팔려 미처 보지 못한 카드를 집어 들었다. 꽃다발이 그려진 카드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감사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To all the doctors and nursing team on ward. I'll never find the wards to thank every single one of you for providing such amazing care for me. From the bottom of my heart, thank you all and I'll never forget it."
"병동의 모든 의사 및 간호팀에게, 이렇게 엄청난 돌봄을 제공하는 병동은 찾을 수 없을 거예요. 당신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해 감사해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C에게 "외래진료 보느라 피곤했을 텐데 선물이랑 카드도 챙겨주다니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더니, C는 "따뜻한 퇴원 환자의 수만큼 다들 뱃살이 늘어가는 거지"라고 농담했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의 퇴원과 입원을 도왔었다. 바쁜 업무 와중에 화장실 갈 시간은커녕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없이 바쁘게 근무를 하는 날이 다반사였는데, 이러한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입사 후 두 달 만에 10kg이 빠졌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에게는 버거운 나날들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생활을 계속했었던 이유는 결국 환자였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환자만큼 힘들 수 있을까. 병마와의 싸움을 위해 힘겹게 병원생활을 해나가시면서도, 통증이 심해 본인은 마약성 진통제를 투약받으면서도 내게 오늘 아침밥은 먹고 왔는지 물어보시고, 내 이마에 맺힌 땀을 보시고는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이 안쓰럽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끈질기게도 근무할 수 있었다.
유럽 현지에서 한국인 간호사로 근무를 하다 보면 정말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문화차이를 느낀다. 한국과 비교해 아무래도 다양한 국적 및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 차이가 더더욱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어떠한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더라도 같은 것이 있다. 바로 간호사가 환자에게서, 환자가 간호사에게서 얻는 에너지는 서로에게 늘 더욱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