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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Jun 19. 2024

17. 7시에 출근해 3시에 퇴근하기

교대근무의 현실

한국의 간호사는 보통 3교대로 근무를 한다. 병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는 아침근무를 "데이"라고 부르고,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를 한다. 데이 근무가 끝날 무렵 오후근무인 "이브닝" 근무자들이 출근을 하는 데, 오후 3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근무를 한다. 마지막으로 밤 근무인 "나이트" 근무는 오후 11시에 시작해 다음 날 아침 7시에 마친다. 이렇게 하루 24시간을 8시간씩 근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에서의 근무시간이다.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에는 한국의 근무가 이상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8시간씩 나눠서 근무를 하니 야근도 없고, 이브닝이나 나이트 근무일 때에는 늦잠도 잘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먼저 간호사의 업무 특성상 특정한 시간에 맞추어 업무가 진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뇨가 있는 환자는 정해진 시간에 (보통 식사 전) 혈당검사를 하고, 혈당에 맞추어 인슐린 주사 (혈당을 조절하기 위한 주사)를 놓아야 한다. 담당 간호사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임의로 업무의 순서나 일정을 변경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이벤트가 생긴다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틈틈이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응급환자가 있는 경우는 상황의 경중 및 인력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하여 업무를 재분담해 처리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응급상황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간호사는 정해진 업무를 최대한 빠르게 해내고 틈틈이 정기적인 업무를 처리해 나가는 데에 익숙하다. 하지만,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간호사 혹은 부서를 이동하여 해당 부서의 업무에 다시 익숙해져야 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정해진 일을 내 근무 안에 끝내지 못하면 퇴근을 미루고 추가로 근무를 하더라도 이미 식사를 끝내고 밤잠에 든 환자를 깨워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 주사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수의 간호사들은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한다. (신규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신규 간호사와 함께 근무하는 경우 일이 늦어질 것을 예상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기도 한다.)


내가 처음 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했을 때에는, 보통 5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출근을 해 미리 일을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쏟아지는 일을 모두 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리 병동 물품의 재고현황을 파악하는 "물품카운트"를 시작하고 (휠체어, 수액을 매달아 끌고 이동할 수 있는 폴대, 산소탱크, 시술에 필요한 물품 등의 현황을 파악해 업무시간 동안 필요한 경우 바로 찾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물품을 세고, 혹시 고장이 난 경우 미리 확인해 위험한 상황을 대비한다.) 그 후 응급카트를 확인한다. 응급 상황이 일어날 경우 환자에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약품과 심폐소생술에 필요한 물품들이 한 곳에 보관된 카트를 약물의 개수 및 유효기간을 확인해 재고를 관리하기 때문에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


그 후, 오늘 투약해야 할 약물이 정확히 온 것인 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주사약물을 준비하고 내가 맡은 환자에 대해 질병명, 오늘의 시술 혹은 수술, 특이사항 등을 파악한다. 그 후 7시가 되어 인계가 시작되면 이전 근무번 간호사들이 환자의 상태에 대해 인수인계를 해주고,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반면, 인계가 끝난 이전 번 근무자들은 인수인계를 하며 놓친 것들을 다시 한번 파악하기도 하고 또 업무시간 동안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인계를 주고 나면 추가근무를 통해 업무를 해내고 퇴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종종 평일 데이근무가 끝나면 병원교육 일정에 참여해야 한다. 일을 미처 다 끝내지도 못한 채 찝찝한 마음을 안고 병원 내 강당 혹은 회의실 등으로 향한다. 약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의 교육일정 내내 강의가 끝난 후 병동으로 돌아가 마저 해야 하는 일들이 머릿속을 떠다니지만, 수간호사 선생님 (혹은 부서장)의 요청으로 강의 내용을 정리해 공유해야 하므로 몇 차례 고개를 흔들어 강의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교육이 끝난 후, 빠르게 기록한 내용을 정리해 수간호사 선생님께 전달해 드리자 수간호사 선생님은 "어머, 정리를 너무 잘했네. 우리가 받은 강의자료랑 정리한 내용 합쳐서 보기 좋게 ppt로 정리해 주면 참 좋겠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추가근무를 한 후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6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을 자고 싶지만, 수간호사 선생님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강의자료와 내용을 합쳐 ppt로 보기 좋게 정리한 후 식사를 대충 때우고 잠에 든다.


나는 운이 좋게도 병원과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오전 4시 50분쯤 눈을 떠 5시 20분에 집을 나선다. 쏟아지는 잠과 피로가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선배 간호사들 역시 모두 겪은 일이라고 하기 때문에 애꿎은 커피만 들이켠다. 이 마저도 본격적으로 인수인계가 시작되면 언제 또 마실 수 있을지 모르니 인계시간이 다가오면 벌컥벌컥 해치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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