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생~ 간호학생~
한국에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에 입학해 간호교육을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3년제와 4년제 간호학과로 나뉘어 있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4년제 간호학과에 입학해 4년간 교육을 받고 간호사 국가고시를 치러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학과에 입학하면 1-2학년은 이론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3-4학년은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병원에서 실습을 한다.
제 아무리 2년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지식을 실제 병원 임상환경에 곧바로 적용하기란 쉽지가 않다. 나름대로 머리망과 유니폼을 갖춰 입고, 주머니 속엔 각종 형광펜, 볼펜 등등이 가득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병동으로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치를 보다가 간호사 선생님께서 전화를 받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어쩔 줄을 모르는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면 괜스레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학생신분으로 병원에 실습을 간 것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보고 들으며 배우려고 하지만, 막상 궁금한 것이 생겨도 바쁜 간호사 선생님들을 붙잡고 질문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간호사 스테이션에 있거나,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인계를 들으려 뒤에 서있거나, 혹은 바쁜 간호사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혹시라도 새로운 걸 보거나 도와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하루를 보내고는 했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볼 바에는 작은 일이라도 하기를 바랐었다. 간호학생이 실제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환자이송과 '바이탈'이다. '바이탈'은 바이탈 사인(Vital sign)의 줄임말인데, 환자의 활력징후를 측정하는 일이다. 보통 활력징후는 환자의 혈압, 체온, 맥박 수, 호흡 수를 측정하는 일인데 병원에 입원을 해봤다면 하루에도 여러 번 '혈압 잴게요~'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간호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간호학생의 손을 빌려 환자의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또 환자들을 엑스레이실 혹은 검사실 등으로 이송시키고 그 시간 동안 다른 일들을 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학생의 입장에서는 궁금한 것이 있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더라도 선뜻 질문을 하기가 어려워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보거나 혹은 교수님께 질문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바쁜 임상의 현실 상 환자의 상태나 처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간호학생이 본 단편적인 부분만 잘라 질문을 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그 상황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하는 질문과는 답변의 퀄리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궁금한 것이 있더라도 거리낌 없이 질문을 하기가 어려운 것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 임상 현지에 있는 동안 학생간호사들을 실습 및 교육을 위해서 온 학생이 아닌 그저 '인력'으로 대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몇 년 뒤 졸업 후 신규간호사가 될 간호학생들을 임상에 첫 발을 내딛는 그 시작부터 그저 '일'을 해내기 위한 인력으로만 대하기 때문에 추후 간호사가 되어서도 '인력'으로서 병원에 존재한다는 한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물론 유럽 현지에서도 간호학생에게 활력징후 측정 혹은 환자이송을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내가 본 거의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왜 활력징후를 측정해야 하는지, 이 환자에게 특별히 유의해서 봐야 하는 활력징후가 있는지, 이 환자는 왜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한 지 등에 대해 매번 설명을 해준다. 또, 심지어 지금 당장 모두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되더라도 그 질병의 경과과정 및 치료과정에 대해서 역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도 학생 간호사의 교육에 열의가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을 뵌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밀려드는 업무에 학생 간호사에게 까지 할애할 시간은 많지 않기 때문에 간호학생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외면받는 간호학생이었고, 학생들에게 많은 시간을 쓰지 못한 간호사였기에 이러한 상황이 더 와닿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