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let that Chinese into my room
오랜만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고 출근길에 나섰다. 오랜만의 나이트 근무 출근이라 나이트 근무 루틴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되짚어보다 보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오늘은 나이트는 3명의 환자를 배정받았고, 그중 한 사람은 입원 후 처음 맡게 되는 환자였다. 동료들에게 어렴풋이 아주 까다롭고 mean 한 환자라는 것을 익히 들었지만 (입원 당시에도 본인은 최소 10잔의 커피를 오전에 마셔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10잔의 커피를 뜨겁게 병실 내로 가져다 달라고 요구했었다. 키친 스태프들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커피를 요청하면 가져다주겠다고 했으나 만족하지 못했고, 본인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개인 커피머신이 병실 내에 없는 것으로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 의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며 병실의 청소상태가 불만이고, 간호사들은 본인을 너무나도 강압적으로 대한다는 등의 컴플레인을 매일같이 쏟아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이트 근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이 잠을 자기 때문에 뭐 별일 있겠나 싶었었다.
그렇게 인계를 받고, 9시경 저녁약을 챙겨 방문을 열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안부를 묻고 이전부터 있었던 통증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환자는 대뜸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내 방문을 연 적이 없어, 나는 며칠 동안 열도 나고 잠도 못 자고 있는 데 왜들 그렇게 방문을 열어대는 거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다짜고짜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짜증을 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근무하는 병동에서는 밤 9-10시경, 오전 1-2시경, 오전 5-6시경 환자들의 혈압 및 체온 등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유령이 아닌 이상, 환자들의 방문을 열지 않고 약을 주고,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병원 생활이 지속되면서 까칠한 환자들을 마주했던 경험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환자에게 눈을 맞추고 설명했다. "최근에 컨디션이 안 좋았었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너의 담당 간호사이고 너의 상태가 더욱 나빠지지 않도록 확인할 책임이 있어. 상태가 지속되거나 혹은 악화될 경우 내가 빠르게 알아채서 조치를 취해야 회복을 도울 수 있는 거니까. 혹시 원한다면 잠을 도울 수 있는 약을 줄 수 있어 그리고 새벽 1-2시경 확인해야 하는 혈압, 체온 등의 측정을 앞당겨 12시 이전에 할게.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환자는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다 필요 없으니 그냥 나가고 다시는 내 방에 오지 마"라고 답했다. 애초에 내 말은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어차피 내가 방에 들어왔으니, 체온만 측정하겠다고 말했다. 환자는 고개를 돌리고 체온계를 달라는 손짓을 하며 내게 답했다. "너는 영어를 못해? 왜 내 말을 이해를 못 해?" 환자는 서투른 영어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체온계를 건네며 답했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언어는 영어야. 네가 듣지 않을 뿐이지. 필요한 게 있으면 벨을 눌러."라고 답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자 인도인 나이트 근무 매니저가 내게 "그 환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나 보네"라고 농담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매니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다음번에는 본인이 대신 들어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매니저에게 고맙다고 대답하고, 내가 대신 다른 일을 해줄 수 있을지 물었지만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오전 1시가 되었고, 매니저가 대신 방에 들어가 환자를 확인했다. 매니저는 내게 "저 환자에 대해서는 내가 오전 매니저에게 리포트할게. 환자가 중국인은 자기 방에 들이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전해주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간호사에게 화풀이를 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사실 익숙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나를 중국인이라고 부르고, 언어로 꼬투리를 잡는 것이 더해지니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고 매니저에게 솔직하게 털어두었다. 그러자 매니저는
"약속할게, 앞으로 너에게는 저 환자를 배정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는 약속할 수 없어. 환자들의 마음을 우리가 컨트롤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지만 이러한 환자들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거야. 나도 그랬거든."
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해내다 보니 퇴근시간이 다가왔고, 약 3일간 휴일이 있었기 때문에 밤 새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출근을 했다. 병동에 들어서자 매니저를 마주쳤고, 평소처럼 "굿 모닝"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매니저는 내게
"이야기 들었어,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 그냥 환자의 방을 나와 간호기록을 남겨. 우리에게는 환자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들도 중요하거든."
하고 조언해 주었다. 마주치는 다른 선배 간호사들 역시 내게 위로를 건넸고, 친한 동료 간호사들은 내게 "걱정 마 또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가서 혼내줄게" 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일이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매니저의 말처럼 이것 역시 경험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