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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Jun 05. 2024

15. 자~ 주사 따끔해요 따끔~

"자 따끔해요~"를 영어로 하면?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실감하게 된 것 중 하나는 바로 아이는 물론, 꽤 많은 수의 성인들도 주사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이다. 주사를 놓기 전 종종 주사를 무서워하는 지를 물어보며 환자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 지 확인하고, 또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지금껏 물어본 환자들 중 약 10%로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주사가 무섭지 않다고 답한다. 그리고, 주사를 놓게 되면 그 10% 중 절반의 환자들은 한껏 얼굴을 찡그리고 주삿바늘을 참아내기 위해 숨을 꾹 참는 것을 보아왔다. 이러한 경험에 빗대에 볼 때, 아마 95%의 환자들은 주사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일례로, 간호학도 시절 학교에서 처음으로 주사를 놓는 실습을 했었는데, 보통은 두 명씩 조를 짜 서로에게 주사를 놓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처음 카테터(정맥주사를 놓는 바늘)를 처음 잡아보기 때문에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서로의 손등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는 했다. 장난기 많은 동기들은 "악!" 소리를 내며 상대를 더 긴장하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동기들은 첫 실습이기 때문에 혈관을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동기가 긴장할까 봐 아파도 꾹 참으며 바늘이 하나도 안 느껴진다는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는 했다.


그렇게 이론수업을 마친 후 교수님의 감독 하에 두 명을 한 조로 하여 실습을 하는데, 아마도 중 후반쯤 되는 순서로 두 명의 동기가 교수님 앞에 앉았다. 한 명이 카테터를 준비하고, 한 명은 누워서 혹은 앉아서 환자의 역할을 대신하는데 간호사 역할의 동기가 준비물들을 정리하는 동안 환자역할의 동기는 꽤나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토니켓(팔에 묶는 고무줄)을 묶고 카테터(주삿바늘)를 들고 손등에 가까이 가자 환자역할을 했던 동기가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얘져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머리를 잘 받쳐 침대에 눕혀주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동기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때가 처음으로 주사 앞에서 극도의 긴장을 하기도 하고, 기절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본 날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하게 된 한국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주사를 놓았었다. 엉덩이나 팔근육에 놓는 근육주사, 혈관에 놓는 혈관주사, 피하지방에 놓는 피하지방주사 등등 수많은 방법들 중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주사를 놓기 전 "따끔"이라는 말로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시점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눈을 질끈 감거나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카테터의 삽입이 끝나면 나는 "다 끝났어요, 위에 테이프만 붙여서 고정할게요"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아유 아프지 않게 주사를 잘 놓네" 혹은 "주삿바늘은 쳐다보지도 못하겠어"라고 하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다년간의 트레이닝으로 주사를 놓는 것에 꽤나 자신이 있었는데, 현지에 와서 근무를 하면서 한 가지 어려웠던 게 있다. 바로 주사를 놓기 전 환자에게 어떤 식으로 경고(?)를 해줘야 하는 지를 모르겠던 것이다.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따끔"을 "Ouch"라고 하기는 조금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함께 근무하는 다른 간호사들에게 물어보니 그저 "breath in, and hold your breath" (숨 들이쉬고, 그대로 참으세요)라고 하거나, "little scratch"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 이후로 나도 주사를 놓거나 혈액검사를 할 때에 저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한국어 "따끔"만 한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반가울 리 없는 환자와 그 환자를 안정시켜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또 동시에 혈관을 잘 찾아내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주사를 놓아야 하는 간호사 사이를 한 단어로 소통하게 해주는 "따끔"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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