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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cember 디셈버 May 29. 2024

14. 간호사 물 좀 떠다 줘

내 병원비로 너네 월급 주는 거잖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떠 여유롭게 출근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여느 날과 같이 출근을 하고, 인계를 받은 후 환자들을 살피러 나섰다. 이제 막 눈을 떠 아침식사를 마친 환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오늘의 안부를 물었다. 아침식사 양을 가볍게 눈으로 훑어보고 식사는 잘하는지, 물은 잘 마시고 있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또, 통증이 있는 환자들은 통증의 양상을 살피고, 혹시 진통제가 더 필요한 지 아니면 통증이 호전되어 진통제 양을 줄여도 될지 등에 대해 확인한다.


그렇게 아침 라운딩을 마치고, 아침약을 준비해 전달하며 오늘의 스케줄에 대해 간략히 브리핑을 해준다. 예를 들어 검사 일정이 잡혀있다던가, 시술을 할 예정이라던가 등에 대한 것들 말이다. 어느 정도 컨디션이 괜찮은 환자들은 샤워를 마치고 복도를 걸어 다니며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도 하고, 가끔 친밀도가 더 쌓인 환자들에게는 복도 몇 바퀴 돌기를 미션처럼 제시하기도 한다.


시간에 맞추어 이런저런 일을 하고, 동료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다른 부서와 전화통화를 하며 환자에 대한 검사나 수혈 스케줄을 조율하던 중 내가 담당하는 환자의 방에서 호출벨이 울렸다. 주사를 맞고 있지도 않고 특별한 일로 호출할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하며 환자의 방에 들어갔다. 먼저 환자를 살피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다. 환자는 병원밥이 질려서 오트밀을 먹고 싶은데 어시스턴트를 통해 따뜻한 물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물론이지"라고 대답한 후 키친에 가서 따뜻한 물을 준비해 환자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환자는 놀라며 "미안해, 너한테 부탁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시스턴트에게 부탁하려고 했던 거였어. 미안해. 바쁠 텐데 정말 고마워."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일하던 한국의 병원은 환자 한 명당 한 명의 간병인이 꼭 상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규정이었는데, 아무래도 환자가 전적으로 간병인의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아무리 설명을 하더라도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한 환자들 중 간혹 시도 때도 없이 간호사 호출벨을 눌러 TV가 고장 났다, 물을 떠다 달라, 핸드폰으로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달라는 등의 다양한 부탁을 들어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에는 한두 번은 부탁을 들어드리며 바쁠 때에는 이렇게 도와드릴 수가 없으니 간병인을 고용하셔야 한다고 재차 설명드리는데 그럴 때에 버럭 "내가 병원비를 얼마나 내는데! 내가 내는 병원비로 너네가 월급 받는 거잖아! 환자를 이렇게 대하는 게 간호사야?" 라며 화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반응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간호사 1명 당 간호해야 하는 환자의 수가 많다 보니 이러한 일들을 매번 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호사가 모든 것을 케어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간병인을 고용하도록 안내하는 상황이 참 비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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