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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차라리 검은색만 보였으면

불면으로 소실된 밤들에게


처음으로 밤을 새운 건 유치원 때였다. 아니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더럽게 어렸을 때부터였다는 건 분명하다. 우리 유치원은 도시락을 싸가는 곳이었다. 날 밤을 새우고 간 나는 점심을 먹을 기력도 없이 쓰러지다시피 잠에 들었고, 선생님은 아예 남는 이불을 깔아 날 누이셨다. 쟤 왜 저러냐는 친구들의 콩알만 한 목소리와 식기들이 부딪히는 깨작거리는 소리가 검은색 시야에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그때 안 먹은 점심을 언제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뭣도 모르는 애기가 왜 지금은 하고 싶어도 어려운 철야를 했을까?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때 내 방 벽지는 토이스토리가 연상되는 하늘에 구름이 송송 박힌 디자인이었는데, 날이 조금씩 밝아올수록 시커먼 벽지에서 스멀스멀 구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캄캄한 방이 새벽하늘과 비슷한 색이 되었던 건 지금 돌이켜봐도 아련하다. 


이후로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꾸준히 잠을 못 잤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잠에 들 수 있도록 여러 얘기를 해주셨는데, 어머니는 나를 가지셨을 때 커피를 많이 마셔서 애가 이렇게 잠을 못 자나보다 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그때 입덧이 심했는데, 비교적 편히 먹을 수 있었던 게 군밤이었단다. 차라리 밤을 많이 먹어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생각하는 게 내 마음은 더 편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주 조금 머리에 뭔가 들어왔다. 근데 그것도 지 깜냥으로 감당할 수 있을 수준은 전혀 아니었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무슨 생각이 났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네. 잠이 안 온다! 이런 레퍼토리가 반복됐다. 그게 심해지니까 공황 증상도 찾아왔다. 숨 쉬는 걸 의식하니까 침대에 눕는 게 두려웠다. 아직 건강한 폐라는 믿음직스러운 녀석이 있었는데, 그딴 놈은 모르겠고 그냥 내가 작정하면 당장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내게 사회를 가르쳐주셨던 과외쌤은 어른이 보통 잠이 안 오면 고민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요즘 고민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멍청해서 고민이 뭔지도 몰랐다. 굉장히 핵심적이었던 선생님의 말은 이미그레이션도 없이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스쳐 지나갔다. 


와중에 한창 반항스러운 기운이 돋아서 인지, 학교 수업 시간에 억지로 눕기 시작했다. 그 짓을 꾸준히 하다 보면 나 같은 애도 낮잠을 잘 수 있었는데, 그러면 밤에는 더더욱 잠이 안 오니 악순환이 끊이질 않았다. 어쩌면 그 반항은 밤에 진짜 자려고 하면 호흡을 의식하니 무서워서, 자는 척을 하며 편히 숨 쉬고 싶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그때부터는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지만 수면 패턴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웠다. 중학생 때는 부득불 책상에 누워서 선생님 수업내용을 엿듣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수업시간에는 잠을 안 자고 싶어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내신 성적은 바닥을 쳤고, 수능에 사활을 걸게 됐다. 수능날도 당연히 잠을 잘 못 잤다. 현역으로 볼 때는 11시에 누웠는데 새벽 2시쯤 잤고, 두 번째 수능을 볼 때는 잘 자다가 3시쯤 깼다. 그때 초인적인 힘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누웠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고등생물답게 시간을 보며 내일을 걱정했다면 지금 다니는 대학교에 절대 못 왔을 거다. 


아니 이 새끼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도 잠을 안 잔 거 아니야? 그래서 잠을 못 자나? 하고 요즘은 의학계에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조사를 안 해서 그렇지 아마 후속 연구까지 다 끝났을 수도 있다. 알아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미 이 나이까지 먹었는데, 태아들이 잠을 자는지 못 자는지 무슨 상관이람? 지금 내가 못 자서 죽겠는데. 


물론 내가 불면증 검사를 전문적으로 받은 적은 없어서, 지금 내가 못 자는 정도로는 불면증이라고 부르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어딜 가나 당당하게 불면증이라고 얘기하고 다닌다. 정 못 믿겠으면 날 잡고 나랑 한 방 쓰면서 같이 못 자든가. 실제로 수학여행을 가든, 친구들과 여행을 가든, 항상 나는 외딴곳에서 잠을 청했다. 층을 달리 하든, 위치를 문 쪽에 가깝게 하든 다른 애들 잠 안 깨게 말이다. 


지금에서야 당연히 잠에 대한 여러 정리가 끝나서 예전처럼 두서없이 잠을 못 자지는 않지만, 못 자기로 잡혀버린 날에는 여전히 무력하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잠을 자고 싶을 때 못 자면 기분이 매우 더럽다는 것이다. 나는 젊고, 불확실해서 내일 할 일을 정하고, 실제로 행하는 게 너무 중요한데, 전날 잠을 못 자서 늦게 일어나면 하루 스케줄이 쓰레기가 된다. 첫 끗발이 아주 개 끗발인 거다. 그러니 잠이 안 오는 날은 당장 몇 시간의 숙면과 함께 내일에 대한 열망까지 싸그리 박살난다. 세상에 아무 이유도 없이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든다. 섬에서 아무것도 없이 고립됐는데, 지나가던 유람선에서 확성기를 켜고 거기서 뭐 하냐고 놀림받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잠을 지배한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데, 살면서 변수 몇 개 터져봐야 별 티도 안 날 것 같다. 


잠을 못 자는 것과 안 자는 것은 다르다. 잠을 못 자는 건 계속 말한 더러운 상황들이고, 잠을 안 자는 것은 졸리긴 한데 딴짓을 하며 침대에 눈감고 눕지를 않는 것이다. 나는 못 자는 만큼 안 자기도 하는 심각한 사람인데,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보면 전자는 의문 때문이고, 후자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고 싶어도 못 자는 거고, 내일 할 일을 포함해 얼추 정리 됐는데도 그걸 그냥 따르기엔 뭔가 두렵기 때문에 무거운 눈꺼풀의 멱살을 잡으며 잠을 안 자는 거다. 


여러 이유로 잠을 늦게 잘 수는 있지만 이게 반복되면, 강제적으로 뇌는 굴렸는데 시간은 버려진 한심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여러모로 피하고 싶다. 진짜 개 짜증 난다. 그래서 머리만 누이면 잠에 빠지는 친구들이 키가 큰 친구들 다음으로 제일 부럽다. 


생각을 비우는 게 정론이지만, 그게 안 되는 인간들은 죽어도 못한다. 나처럼 잡생각 많고, 선인장처럼 가시로 변한 잎이 많은 사람은 불가능하다. 눈을 감으면 검은색만 보여야 하는데, 자꾸 다른 게 보인다. 그 검은색이 깜깜한 적은 거의 없었고, 샌드쇼 스크린처럼 뒤에 조명이 켜진다. 허우적거리는 손짓으로 모래들을 만지다 보면 결국 시작점이었던 사막으로 돌아온다. 그 괴상한 제스처들도 그나마 많은 훈련과 노력의 결실이다. 어렸을 때는 혼잣말로 생각의 모래들을 만지작거렸는데, 밖에서 듣던 어머니는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애가 제정신이냐고. 


차라리 커피를 마셔서 잠을 못 자면 덜 짜증 날 텐데. 나는 2년 전부터 커피를 끊었다. 카페인 그런 거는 잘 모르겠고, 위에서 잘 안 받아서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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