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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친해져도 될까요?

샘솟는 친밀감에 대하여 - 1


모르는 사람이랑 다짜고짜 대화하는 건 요즘 시대에는 어색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외향과 내향, 세대의 차이 등 여려 요인이 연결되어 있지만 결국 산재한 시선들에 뒤통수가 아리다. 그래서인지 말을 걸어보고 싶어도 괜히 망설이게 되는 것 같다. 혹시 나 때문에 상대가 거북해하지 않을까? 내가 이러는 걸 주변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이 발목을 잡고 여러 인연들을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이 앞자리가 2로 바뀌면서 훨씬 외향적인 사람이 됐다. 애매모호한 성인딱지가 의외로 큰 효과를 발휘한 것도 있고, 낯가려봤자 내 손해라는 사실을 멍들면서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명분만 갖춰지면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용기가 부족할 때면 벨이 없는 술집에 간 소심한 사람처럼 직원들 동선만 눈으로 좇는 일도 잦았다. 나는 이럴 때 행동하는 것을 인생에서 정말 중요시하기 때문에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 능력부족도 느끼고 있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다. 도보 8초도 안 되는, 정말 표현 그대로 바로 앞에 있다. 정확하게 네 번 자빠지면 쓰라린 몸 구석구석을 모른 체하며 그 편의점 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새로운 편의점 알바생을 만났다. 내 또래의 남자였는데, 야간 파트타임을 담당하고 있었다. 보통 새벽에 처방전도 필요 없는 담배를 보충할 때 자주 봤다. 그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다 보니 그분도 흡연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 편의점 알바생이 내 쪽으로 와서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담뱃불을 붙였다. 당시 나는 이 일이 상당히 불편했다. 먼저 내게 말을 걸어주는 것 자체는 고마운 일이다. 내가 그걸 자연스레 여길 만큼 외적으로 매력적이지는 않아서인지, 보통 그럴 때는 후한 값을 쳐서 대답과 질문을 던졌다. 근데 나와 그 사람의 관계는 편의점 직원과 고객이다. 이상한 권위를 운운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 사람에게 기능을 요구하고, 그 사람은 그 기능에 부합하는 그런 관계인 거다. 그리고 나는 이 기능이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필요한 연결고리들과 상극이라고 생각한다. 시끌벅적한 술집이어도 비슷할 텐데, 일대일 대면이 주요한 편의점에서 그런 관계가 생기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 알바가 그만둘 동안 다른 곳에서 담배를 피워야 했다. 


새로운 알바와도 문제 아닌 문제가 생겼다. 내가 편의점에 들어왔을 때 그분은 스피커로 노래를 듣고 있었다. 별 일 아니었지만 나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너무 궁금했다. 복합적인 재즈 선율 위에 깔리는 일본어 랩은 엄청 감미로웠다. 마치 동네를 걷다가 연주 중인 기타리스트를 봤는데, 연주에 매혹돼 더 가까이 갔다가 모자로 푹 눌러쓴 외모를 확인했고, 그게 내 예상과 너무 다른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삼각김밥 몇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참지 못하고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물어봤다. 편의점 알바는 당연히 상황이 낯설어서 이 단순한 질문도 몇 번 되물으며 확인해야 했다. 나도 대답을 몇 번 되물어서야 머릿속에 글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누자베스라는 일본 래퍼의 노래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발음이 기억이 안 나 훈련받는 ai마냥 몇 번이나 타자를 두들겨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새벽에 그 사람을 만나기가 꺼려졌다. 괜히 부끄러웠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말로는 새로운,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즐긴다고 했지만, 결국 거부하는 감정선이 있었던 것 같다. 먼저 내게 말을 건 편의점 알바랑 몇 마디라도 섞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정작 어렵게 알아낸 그 일본 래퍼 음악은 아직도 안 들어봤다. 어느 날은 혼자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와서 말을 걸었다. 무슨 알파벳 몇 개를 말하며 아냐고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모른다 그랬고, 알고 보니 그건 헤드셋 제품 이름이었다. 그걸 싸게 판다고, 살 의향이 있냐고 내게 물어봤다. 나는 거기서 반사적으로 거부의 표시를 했다. 이미 다른 헤드셋을 샀다고. 근데 나는 당시 이어폰을 산 지 얼마 안 됐다. 거기서 거짓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 않았을까? 그 사람이랑 말을 더 섞었다면 그 싸게 넘기는 헤드셋에 담긴 사연을 알 수도 있었을 텐데. 


그 후로 게임을 몇 판 더 하다가 담배를 피우고 나가려 그랬는데, 나한테 말을 건 사람이 흡연실에 있어서 그냥 나갔다. 결국 나는 내가 선택한 새로움만 원했던 것 같다. 그게 잘못은 아닌데, 나도 좀 마음을 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카페에 앉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을 때도 누구 언제든 말을 걸어도 이제는 상관없다. 그래도 종교는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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