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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친해지고 싶었다, 그뿐

샘솟는 친밀감에 대하여 - 2


이번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행위 자체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다. 결론을 내려보면, 걸고 싶어도 걸면 안 되는 상황이 많은데, 그것도 결국에는 상관이 없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지금 독서실에 있다면 아무한테도 말을 안 걸 것이다. 나처럼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면, 독서실에 온 사람들은 모두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한 것들과 마주하기 위해 그곳에 앉아있다. 그런 사람들의 집중을 단순한 호기심으로 방해할 수는 없다. 카페도 비슷하다. 카페에 혼자 온 사람은 정말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거라고 나는 느끼니까, 적어도 나는 말을 걸면 안 됐다. 카페에 일행들끼리 왔다면 그들끼리의 시간을 침해하면 안 되니까 이것도 똑같았다. 이렇게 하나하나씩 소거해가다 보니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입을 꾹 닫고 살아야 하더라. 그걸 확인하니까 복잡한 수식, 명분을 중요시하지 않게 됐다. 돌고 돌아 바보로 살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버릴 수 있었던 제약 중 가장 큰 것은 보답에 관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서 내 일부분을 공개했는데, 상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히 서운했다. 왜 나한테는 질문이 없냐는 식으로 말이다. 대학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는 이게 정말 짜증 났다. 아니, 우리가 단체에서 만났는데, 친해지면 좋잖아. 아무도 못 친해지면 여기 또 못 와! 왜 너는 협조를 이렇게 안 해주는 거니? 


여전히 괘씸함은 종종 느끼지만, 그래도 내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오고 가는 게 있으면 그건 정말 운이 좋은 거고. 골프장 알바를 할 때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잦았다. 사람이 빌 때마다 하루, 이틀 단위로 사람을 뽑았는데, 그분들이랑은 합법적으로 스몰토크를 할 수 있었다. 전공이 겹치는 나이 많은 선배님께 진로 자문을 구할 수 있었고, 대학원에 다니는 어떤 분 덕분에 과제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 상대가 되려 편히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스몰 토크가 엄청 헤비해지는 일도 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전연인이 군대 간 사이 환승연애를 했다는 하소연은 당황스럽지만 귀중한 이야기였다. 


골프장에 새로 취직한 분께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같은 대학교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확히는 그분은 편입을 하셔서 이제는 다른 대학교를 다니게 됐지만, 아무튼 우리는 엄청 반가웠다. 그렇게 대입 얘기를 하다가 본인이 다음 주에 여기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인수인계하는 내 입장에서는 경종이었다. 그분의 할머니가 엄청 신실하고 강압적이셔서, 일요일에 알바를 하는 걸 걸리면 큰일이 난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그날 헌금을 까먹었는데, 그분이 다니시는 교회는 헌금 명단을 매주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한다고, 그걸 할머니가 확인하시면 바로 비상소집이라고 말씀하신 거다. 


나는 그딴 교회 빨리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헌금이 헌팅 트로피도 아니고. 소소한 자선으로 판촉을 하고 자빠졌냐. 대입 얘기에서 이 주제로 빠진 것도, 원래 본인이 원하는 대학교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그 학교는 크리스천 스쿨이 아니라며 반대를 하셔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서 어느새 대화가 깊어졌다. 생각 외로 말을 많이 했고, 나는 퇴근할 때 그분께 다음 주에 꼭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인사했다. 


결국 그 사람은 알바를 그만뒀다. 매니저님께 여쭤보니, 가족 사정 때문에 그만두셨다고 했다. 나는 그때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이를 그분께 전달하고 싶었다. 매니저님께 그분 연락처를 물어봤다. 학교 선배님이라 친해지고 싶다고. 그렇게 연락처를 얻어서 내 마음을 표현했고, 그분은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언제 술 한 번 같이 먹자며 연락하자고 했다.


별로 놀랍지 않게, 나와 그분 서로 연락은 없었다. 그 일을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움보다는 성취감이 앞선다. 나는 진심을 표현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것에 대한 응답을 어느 정도 받았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떤 래퍼의 음감회를 갔을 때도 비슷한 문맥으로 말을 걸었었다. 한창 음악이 나오고 있을 때는 말을 걸지 않았다. 음악이 나오는데 음악을 들어야지. 걸리적거리게 하면 안 된다. 그러다 휴식 시간이 생겼을 때, 뒤에 대화하고 있던 두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둘도 서로 모르는 데 옆에 있으니까 말을 섞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한 형님은 선배님이셨다. 어떤 연재처에서 소설 연재가 결정돼서 한창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덕분에 같이 예술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음감회가 끝나고 같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서 그분 연락처를 물어봤다. 그분은 흔쾌히 시간 되면 한 번 보자고 말씀하셨다. 한 달 정도 후에 그때 음감회에 갔던 래퍼의 신보가 공개됐는데, 그분께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흘러서 이제는 연락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아쉽다는 감정은 크지 않다. 그분 말마따나 내가 여유가 없었는데, 후회할 일이 전혀 아니다. 



용기는 결과랑 크게 상관이 없는 거라는 걸 진짜 어렵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 선배님 옆에 있던 사람은 재수생이었다. 수능 준비를 하다가 답답해서 간만에 밖에 나왔다고 했다. 그분이랑은 지하철 방향이 비슷해서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분이랑 연락처를 교환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술 한잔 사달라고 부탁하면 흔쾌히 없는 잔고를 무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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