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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skit - 왼쪽으로 꺾이다

거의 다 왔어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와 주셨다는 건 어느 정도 저랑 비슷한 사람이라는 뜻인 것 같아요. 한 때는 그런 사람들 밖에 만날 수 없어서 제 닮은꼴들만 사는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근데 그런 마을은 존재하지 않았고, 딱히 존재할 필요도 없더군요. 


요즘은 어느 정도 똑똑한 노점상처럼 돌아다닙니다. 수능날 학교 앞에서 시계를 팔거나, 연주회, 졸업식이 있는 곳에서 꽃을 팔거나 하는 것처럼 무작정 아무 데서 연관도 없는 물건을 늘어놓지는 않습니다. 그래봤자 그런 걸 챙길 사람들은 진작에 챙겼을 테니 파리 날리는 건 똑같습니다. 그래도 몇몇 사람들의 하루는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빈손으로 지인 졸업식에 가다가, 즉흥적으로 구매한 제 정신 산만한 꽃다발 덕분에 관계가 발전될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 둘이 훗날 결혼식을 올린다면 저는 거기 참석 못하겠죠. 생판 모르는 식충이는 테이블 배치만 어지럽힙니다. 그래도 그날 하늘을 나는 부케에 어느 정도 박차를 가해준 건 사실일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반대로 안 좋았던 것들을 나불대려 합니다. 전문용어로 꼴 보기 싫었던 일들이죠. 분명 일정 부분은 젊음의 소치입니다. 그래도 화가 나는 걸 어떻게 합니까. 꾹 참고 불교 석상처럼 앉아있을 바에 옆테이블 불편하게 하는 주정뱅이가 나은 것 같습니다. 



1) 말 같지도 않은 중용


나는 지하철을 사람 구경하는 맛에 탄다. 지하철은 특유의 공간감과 폐쇄적인 공기 덕분에 버스랑 달리 장소라는 감각이 든다. 그래서 지하철 이용객들은 알게 모르게 자기 모습들을 보여준다. 지하철 이용객들이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인 각자의 방에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어떤 아저씨는 자기 방에 누워 책을 읽으며 쉬고 있고, 대학생 몇 명은 친구 자취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행동들을 보여준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 자리가 없으면 왔다 갔다 거리며 기차표를 확인하는 직원처럼 열차를 순회한다. 그러다 보면 얼굴을 외우는 사람도 생기고, 갈아탈 때 그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사람 구경할 힘도 없었다. 그날은 일반적인 경우처럼 진짜 앉을자리를 찾으려고 열차 안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어떤 아줌마는 짐이 여러 개였다. 양손보다 많았다. 근데 그 아이들에게 한 자리씩 줬고, 자기까지 앉아 혼자서 좌석 4개를 먹고 있었다.


보통 그런 상황을 보면 참 이기적이구나 하고 끝낼 것이다. 성깔 있는 사람들은 자리에 앉겠다며 짐을 치워달라고 할 거다. 무슨 어린이집에서 현장체험이라도 가는 것 마냥 짐을 일렬로 무리 지어 놓은 꼬라지에 이미 화가 많이 났는데, 그 아줌마가 앉아있는 모양새가 특히 가관이었다. 


아주 조금도 양 무릎을 벌리지 않고, 정말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순간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지하철 안이 아니라 정통 일식집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일찍 온 약속 상대가 막 도착한 나를 보며, 교양과 매너를 지키라고 나직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본 회사원처럼 쥐색 양복 재킷을 옷걸이에 걸고, 상대와 똑같이 불편한 자세로 방석에 앉아 도쿠리를 따라주며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을 애써 무시해야 했다.


차라리 그 아줌마가 다리를 쫙 벌리고, 사람들 다 들을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고 있었으면 덜 짜증 났을 거다. 근데 그 빌어먹을 방석 자세랑 현장학습 나온 쇼핑백들을 동시에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냥 자리에 앉아 쉬기를 포기하고 평소처럼 다른 사람들 구경이나 갔다. 



2) 당신의 TPO를 책임지세요


사람들은 버스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적어도 나는 아마추어지만 악기를 하고 있는지라 마냥 편하게 듣지는 못한다. 잘하고 못하고를 안 들을 수가 없고, 안 들으려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것만 따지는 사람은 버스킹을 보면 안 된다. 실력이 되면 딴 데서 심사위원이나 하라 그러고, 그 정도도 안 되면 그냥 조용히 다른 길목으로 돌아가야 한다. 


버스킹은 마인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사람들이랑 연결될 생각도 없이 닥치고 들으라는 태도면 술 먹고 노래 부르는 아저씨가 차라리 더 가치 있다. 같은 소음공해여도 조금의 정감이라도 생기니까. 


버스킹을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부터 너무나 멋있고 대단하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친구들이랑 동네를 돌아다니다 지자체 단위에서 연 버스킹을 보게 됐다. 전공자들은 없어 보였고, 구민 신청에서 허가받은 팀들이 돌아가며 연주를 했다. 그래서인지 그닥 잘하지는 않았지만, 무료했던 우리는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상황에 익숙해지자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처럼 길 가다 자리깐 어르신들이 많았고, 세상 어디에 가도 있는 커플 몇 쌍도 보였다. 내 바로 옆에는 아저씨 한 분이 휴대폰을 째려보며 앉아계셨다. 보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분 화면을 봤는데, 삼원색으로 삐뚤삐뚤한 주식 차트를 보고 있었다.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주식이야 뭐 할 수도 있지. 나는 주식을 모르니 저 아저씨가 어느 정도로 중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직접 하고 싶은 말은 없다. 근데 그걸 굳이 버스킹이 한창 진행 중인 관객석에서 해야 할까? 경위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저기서 저런 화면을 켜야 하는 걸까? 만약 내가 버스킹 중인데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용기를 무릅쓰고 주가 떨어지라고 뭐라 할 것 같다. 


꼭 옷에만 TPO가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사업 전화 할 수 있지, 해야지. 근데 그걸 영화관에서 러닝타임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안 나가서 하면 그게 맞나? 연인이랑 싸울 수 있지. 풀 건 풀어야 할 거 아냐. 근데 대학교 전공 수업 중간고사 끝나기 15분 전에 하면 이상한 사람들이다. 


좀 극단적으로 얘기했는데, 기분 나쁜 건 매한가지다. 나도 멋대로 그 사람 얘기를 한 게 떳떳한 건 아니니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때 본 아저씨, 재테크 파이팅입니다. 



3) 새벽 독서실의 풍경


나는 올해 초에 세 달 정도 독서실을 다녔다. 시험을 준비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제발 좀 더 열심히 살자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독서실에서 하고 싶었던 건 글쓰기와 영화 보기였다. 그래서 집 주변 독서실마다 일일이 전화를 드려 키보드나 마우스 사용이 가능한지, 개별적으로 폐쇄된 공간이 있는지 정중하게 물어봤다. 딱 한 곳 제공해 주는 무음 키보드랑 마우스를 사용하면 가능하다 그래서 등록했다. 


나는 첫날 짐을 풀고 무슨 개인 작업실이라도 생긴 것처럼 기뻤다. 친구들 불러서 파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원대한 의지와는 반대로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었다. 그게 매너니까. 물론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 편하게 영화를 보니 짜릿한 건 사실이었다. 모두가 초록색 칠판을 배경으로 하기 싫은 것을 흰색으로 주입하는 아저씨, 아줌마를 바라볼 때, 나만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짓이 성심성의껏 담긴 편지를 읽고 있었으니까. 편지 내용도 입맛대로 고를 수 있었고, 영화 비평이나 소설을 쓸 때면 더더욱 다른 고객들이랑 친밀감이 들었다. 그쪽이 노트에 개념정리를 하고 있을 때 저도 뭔가 끄적이고 있답니다! 우리 존나 멋있어요! 


그리고 그 독서실은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새벽에 혼자 남아있으면 큰 우월감을 느꼈다. 오늘도 내가 이겼다며 아침에 학교 가는 학생들 이겨먹었다고 주접을 떨었다. 그러다 한 고등학생 무리를 발견했다. 남학생들이었는데, 독서실에 한 방 있는 세미나룸을 친구 자취방처럼 쓰며 놀고 있었다. 나는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시험을 준비하는 예민한 상태도 아니었으니까. 원래 돈 내고 써야 하는 세미나룸이었지만, 새벽 2시에 거길 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자리 깔고 놀아도 딱히 상관없었다. 


독서실 건물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 학생들도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근데 담배 피우면서 공부 얘기를 했다. 어떤 수학 강사가 더 좋네, 어떤 교재는 쓸모가 없으니 갖다 버리라는 등, 무슨 고3들 점심시간 토크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친구 없어서 일찍 점심을 먹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느지막이 급식실로 출발하는 성적 중간정도 되는 애들 대화를 엿들은 것 같았다. 나는 걔네들 때문에 열받지는 않았다. 새벽에 끼리끼리 모여 놀고, 담배를 필 만한 애들인데, 그래도 공부를 하려고는 하는구나 하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봤다. 


근데, 그날 독서실 옆에서 엄청 시끄럽게 떠드는 남자들이 있었다. 많이 쳐줘도 서른이 안 되는 그들은 한 친구가 차에서 내리자 부릴 수 있는 호들갑은 다 떨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잠시 침착하게 이를 받아주다가 더한 데시벨과 몸짓으로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내가 차는 잘 몰라서 어떤 차의 가격이나 희소가치는 알 수 없지만 그 차는 문이 위로 열렸다. 걸윙도어니까 대충 비싼 차였겠지. 색깔도 형광이었다. 내가 여기서 어이없었던 거는 그 남자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를 반겨준 곳이 코다리강정 전문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코다리 강정이라는 음식은 전혀 잘못한 게 없다. 그래도 그들이 너무 하찮아 보였다. 이왕 신날 거면 돈도 많겠다 좀 더 납득이 가는 데서 시끄러웠으면 좋았겠다. 



4) 대중교통도 제대로 못 타냐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본 분들 중에 제일 갑갑했던 분들을 읊어보려 한다. 모두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부부였다. 


버스에 있었는데, 다음 역이 노부부가 내릴 역이었다. 두 분은 버스 뒤쪽에 앉아계셨고, 성격이 급해 보이시는 어머님이 먼저 교통카드를 찍으러 버스 뒷문 쪽으로 갔다. 어머님이 교통카드를 찍자마자 여전히 앉아계셨던 아버님이 교통카드를 꺼내 어머님을 보며 흔들었다. 어머님은 다시 버스 뒤쪽으로 올라와 그 교통카드를 받아 들고는 아버님 대신 찍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다시 아버님 옆으로 와 앉았다. 진짜 한몇 초 지났을까? 버스가 정차했고, 그때서야 아버님은 엉덩이를 드셨다. 결국 어머님은 버스 맨 뒷자리에서 교통카드 찍는 곳까지 세 번 왔다 갔다 하신 거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걸 시키냐? 아무리 나이가 있어도 잠깐 서 있는 게 뭔 대수라고 미리 안 나오나?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은 왜 짓는 걸까?


다른 노부부는 지하철에서 봤다. 두 분은 앉을자리를 찾고 계셨다. 어머님은 딱 두 개 남은 노약자 석에 앉아 아버님께 옆에 앉으라고 권유하셨다. 아버님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시고 옆 칸 노약자석에 앉았다. 추측하기에 모르는 사람들이랑 앉기 싫었나 보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냐면, 계속 그렇게 따로 앉았다. 내가 내리기 전까지 여러 번 확인했는데, 아버님은 인상 구기며 계속 휴대폰을 보고 계셨고, 어머님은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멍을 때렸다. 한 명만 져 주면 될 거를 웃기는 모양새가 나왔다.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부부는 싸우기 싫어도 싸울 일이 참 많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위험한 촉매들이 많아질 텐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 단순한 일에도 그렇게 안 좋은 모습을 보여야 했을까?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다면 존경스럽다. 웬만한 청년들 기는 다 빨아먹을 거다. 



읊는다고 읊어 봤는데 몇 개 안 되는군요. 꼴 보기 싫은 일들은 화수분처럼 겪는데, 막상 쓰려니 차마 키보드에 손이 안 갑니다. 역시 위악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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