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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황무지에서 누워있기

흔쾌히 죽어나간 시간들에게 


PC방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갈까? 가장 대표적인 친구들은 급식들일 것이다. 하루 세 끼중 한 끼가 확정적으로 하달되는 그들은 황홀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 급식이라는 칭호는 결코 비하가 아닐 것이다. 급식들에게 PC방은 단순 오락 시설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쌓는 카페테리아고, 몇 시간짜리 잉여 시간을 탁월하게 잡아주는 도살장이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나이를 올리면, PC방은 오래 본 친구들끼리 추억을 전자기기로 곱씹는 곳이고, 프린터가 망가진, 내일 수업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고장 난 자기 프린터를 애써 무시하고 몇 백 원 기부하는 곳이다. 그리고 술을 먹다 첫차까지 기다리며 택시비를 아끼는 휴게소다. 아저씨들로 넘어가면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안 겪어봐서. 추측하기에 집에 큰 스크린이 없거나, 집에서 편히 있을 수 없어서 오시는 것 같다. 그래서 PC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꼭 한 개는 보이는 바둑판이나 화투 뭉치들 앞에서는 엄숙한 태도로 시선을 거두게 된다. 


이것저것 따져도 결국 PC방은 안 좋은 곳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예전에는 흡연실이 없어서 담배냄새가 자욱했고, 여러 청소년들이 그곳에 시간을 버리느라 학업이 불투명해졌다. 새벽까지 PC방에 있는 젊은이를 어른들이 본다면 혀를 차며 자기 자식들이나 조카들에게 불똥을 집어던질 것이다. 


꿈이 생기고, 시간의 흐름에 큰 공포를 느끼게 된 나는 아직도 PC방에 간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길 PC방에 갈 거면 꼭 누구랑 같이 가라 그랬다. 혼자 다니면 인생 망친다고. 사실인 것 같다.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은 날 PC방에서 밤을 새웠더니 지하 밑바닥으로 몸이 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동네 사람들이 해발 몇 미터에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나는 거기서 몇 백 미터는 감해야 했다. 심해로 갈수록 도달하는 빛이 줄어 바닷물이 어두워진다는데, 삐걱거리는 PC방 의자에 앉아 허리를 혹사할 때면 거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하늘색이고 나만 지저분한 남색이 된 것 같았다. 



내가 PC방에 자주 가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동창들은 나를 포함해 60명뿐이었다. 그리고 걔네들은 사는 곳도 다 달라서 중학교에 올라가서 뿔뿔이 흩어졌다. 학교생활 첫날에 아는 사람이 꼭 있을 필요는 없지만, 동네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른 아이들은 이미 서로 안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 외국의 모르는 한인마을에 막 이사 온 것처럼, 나는 시끌벅적한 교실의 익숙한 분위기에서 생경함과 경각심을 느껴야 했다. 다행히 내가 넉살을 잘 떨었고, 엄청 치근덕거려 금방 친구들을 사귀었다. 반생활도 금방 즐거워졌다.   


진짜 괴로움은 하교와 함께 시작됐다. 친한 친구들끼리 학교 정문을 나와, 아파트 단지 속 큰 길들을 하나하나 지나치는 것은 재밌는 일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친구들끼리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조선시대 때 실력 있는 이야기꾼이 책팔이가 마을에 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엽전을 싹쓸이하는 것 같았다. 내 기억상 이야기꾼과 시장에 나온 부모, 그 부모의 손을 잡고 함박웃음 짓는 아이를 번갈아가며 시연하던 우리들의 작은 연극은 항상 갑작스럽게 끝났다. 몇몇 친구의 집을 지나치며 배우와 관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줄어들다 금세 배우는 집이 멀어 갈 곳이 없는 나 밖에 안 남았다. 나는 발로 차다 가랑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신발주머니랑 실랑이하며 학원에 가야 했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하게 학원에 가야 했지만 걔들은 집에 있다가 오면 되니까 나처럼 몇 시간 덩그러니 놓일 일은 없었다.  


대부분의 그 지역 아이들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즐기며 어른들은 되찾지 못하는 안락한 빈둥거림을 느끼거나, 밀린 숙제를 큰일이 난 것 마냥 급하게 치웠다. 그들의 두세 시간은 일상의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부분이었고, 그 온도를 확인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따뜻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시간을 만져볼 능력도 없이 공백 그 자체와 싸워야 했다. 그 싸움이 재해가 아니라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일단 밥을 먹어야 했고, 그래도 남는 1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돈은 충분했는데도 카페에 가 있을 생각은 못했고, 카페에 가더라도 거기서 뭘 할지를 계획할 능력도 없었다. 결국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얻은 잉여 시간들은 앉을 수 있는 어디든 앉아 하염없이 휴대폰을 보는 일로 채워졌다. 혹은 아파트 상가 복도나 건물 외곽을 훑는 초단거리 산책으로 환기해야 했다. 충분히 오래 다리에 줄이 묶인 동물원 코끼리는 그 줄이 풀려도 제약되었던 반경을 벗어날 수 없었다던데, 그 코끼리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 줄이 풀려도 다른 곳에 가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끼지 못한 것도 코끼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저 돌았고, 앞으로도 돌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황금 같은 시간들을 내다 버린 꼴이지만, 그때의 나는 시간을 내다 버리는 것 자체가 너무 간절했다. 지금은 노력해도 붙잡아지지 않는 시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버려지지 않았으니까. 


어린 나이에 밖에서 혼자 먹는 밥은 너무 날카로웠다. 미각과 후각은 다른 사람들 시선을 곁눈질하는 내 시각 때문에 뭉툭해졌다. 같은 학년 체육복이나 교복이 옆 테이블에 앉게 되면 빨리 그 공간을 벗어나려고 수저를 흔들다 체할 뻔한 적도 많았다. 이런저런 서성거림으로 지옥 같은 공백을 끝내니 학원 선생님이 반갑게 느껴졌다. 단순한 학부모들은 이 사실을 부러워하고 대견해할 것이다. 학원 교재도 싫다며 던져버리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생을 반기는 아이라니!


그렇게 1년을 보내고 2학년 때 만난 친구가 내게 남는 게임 아이디를 줬다. 당시에 부모님이 엄하셔서 게임을 못했던 내게 그 친구는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였다. 불이 생긴 이후로 내 식습관은 아예 달라졌다. 남는 시간에 그냥 PC방에 가면 된다! 날것만 욱여넣어 배탈이 잦았던 나는 그때부터 안정적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문제는 해결됐지만, 내가 서성거리며 느꼈던 근본적인 문제는 되려 더 부각됐다.  


하교하고 종적을 감췄던 또래 아이들의 상당수를 PC방에서 발견한 것이다. 걔들은 나를 의문 섞인 불편함으로 대했다. 쟤가 게임을 했던가? 같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쟤는 왜 혼자 게임을 할까? 왜 저렇게 못할까? 같은 시비 비슷한 관심을 받았다. 나는 거기에 별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나는 배움이 느려서 PC방에 다니기 전까지 다 비슷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으니까. 하교할 때 헤어진 애들과 내 차이점은 집이 가깝냐 머냐 단 하나뿐인 줄 알았다. 


결국 핵심적인 문제는 어린 내가 인간관계와 약속 개념, 시간 관리에 대한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안이었다. 그래도 혼자 PC방에 가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게임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 PC방에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는 습관이 들었고, 그 관성은 쉽게 벗어던져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알 거는 다 아는 내가 왜 지금도 PC방에 가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에는 주사가 게임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고, 지금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라며 무슨 템플 스테이라도 가는 것 마냥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남으면 선택해야 한다. 혼자 보낼지, 같이 보낼지, 무엇을 할지. 휴학생활을 영위하다 보니 이게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어떤 경위든 생산성이랑 멀어지면 황무지에 덩그러니 누워있다는 느낌이 든다. 


근데 그냥 앞으로도 별 생각 안 하기로 했다. 내가 황무지에 자빠져서 잠시 쉬어도, 엄청 큰 문제는 안 생기니까. 내가 평생 거기에 누워 있을 거도 아니고, 그 허허벌판에 투자를 하겠다며 있는 돈 없는 돈 모으는 것도 아닌데. 중학생 시절에는 그 황무지가 얼마나 거칠고, 위험한 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위에 설 땅만 있으면 족했던 건 사실이니까. 오늘도 이 글을 퇴고도 안 하고 PC방에 갈 것 같다. 이 글의 표지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그저께 가서 잘 찍었는데, 그냥 또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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