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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skit - 오른쪽으로 꺾이다

잠시 쉬어갑시다


우리 조금만 쉬어 가도록 합시다. 멋대로 써재낀 제 글은 딱히 읽기 편안한 종류도 아니었잖아요? 저는 살면서 하는 일들 중 제일 재밌는 게 관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안쪽이든 모르는 사람의 일부분이든 전부 말이죠. 


관찰만큼 실패 없는 유흥이 있을까요? 통찰도 제공하고, 무료함도 달래주는데 비용은 0원입니다! 술자리 재료로도 쓰이니 제 입장에서 관찰은 포기 못하는 소일거리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잘한 이야기들을 풀까 합니다. skit이라고 부르니 여러 가지가 편해지는군요. 제가 보거나 느낀 것들 중 좋았던 것들입니다. 정확히는 정감이 간 일들이죠. 



1) 틈틈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8년 넘게 산 동네지만, 처음 보는 골목이 나올 때까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끈질기게 치근덕댈수록 동네는 무력해 보이지만 친근하게 자기 안 쪽을 내주었다. 그러다 작은 카페를 만났다. 


어느 여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개인카페였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그것 때문에 사장님이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는 모르지만, 갑작스레 요가를 시작하셨다. 카운터 책상에 한쪽 발을 올려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머신 위쪽에 양손을 짚고 허리를 폈다. 나는 카페의 오른쪽 골목에서 유리벽을 넘어 그 모습을 봤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짜내서 운동을 하신 거랑 별개로, 매우 건강해 보이셨다. 



2) 편안하게


지하철이 막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전동 휠체어에 앉은 분이 보였다.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딱 휠체어가 그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분은 졸고 계셨다. 


나는 그때 죄송스러운 생경함을 느꼈다. 대중교통에서든 길에서든, 내가 지금까지 본 휠체어에 앉아계신 분들은 모두 깨 있으셨다. 개운해 보이든 정신이 몽롱해 보이든, 그분들에게 수면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다 똑같은 사람인데.


졸고 계신 그분은 열차의 딱 중간에 계셨다. 사람들이 이동하기 불편해 보였지만, 그 자리가 지하철 좌석 7개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더라. 혹여나 깨실까 봐 다른 칸으로 옮겼다. 



3)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친구랑 술집에 갔다. 옆 테이블에는 우리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커플이 있었다. 우리는 중간중간 담배를 피우고 올 때마다 눈에 밟히는 게 하나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을 때마다 그 커플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에 있는 수저칸이 계속 열려 있었던 것이다. 내 자리는 안쪽 소파였는데, 옆 수저칸이 계속 열려있어서 이동하기 불편했다. 


나는 그 커플, 정확히는 남성분이 일부러 계속 열어놓으신 줄 알았다. 수저 옆에 있는 휴지를 여성분이 필요할 때마다 최대한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꼴 보기 싫었다. 


커플이 술집에서 나가자, 나는 친구에게 이걸 설명하려고 그 수저칸을 닫았는데, 바로 다시 열리더라. 알고 보니 고정이 안 되는 칸이었다. 괜한 분들을 괘씸한 사람으로 만들 뻔했다. 오해해서 죄송했다. 



4) 많이 힘들었구나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왔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마감이 1시간이나 늦어졌다. 와중에 창고에서 뭘 찾느라 행색도 엉망이었다. 기력이 다 떨어져서 도저히 씻을 수가 없었다. 


그냥 집에 오자마자 옷 갈아입고, 양치랑 세수하고 불을 껐다. 근데 내 시야는 생각보다 어둠으로 덮이지 않았다. 보니까 아까 창고 뒤질 때 휴대폰 라이트를 켰는데 그게 아직까지 켜져 있더라. 어이가 없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라이트를 끄니 갑작스러운 흑색에 벙쪘다.



5) 그쪽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ㅠㅠ


지하철역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는 빵집이 하나 있었다. 프랜차이즈는 아니었고, 싸고 맛있는 완벽한 곳이었다. 출퇴근길을 겨낭하고 풍기는 빵냄새 때문에 내 피하지방에 여러 번 이바지한 곳이었다. 어느 날 그 빵집이 문을 닫았다. 더 이상 유리 너머로 노르스름한 빵들의 대열을 볼 수는 없었다. 그 빈자리는 벽지 디자인처럼 안색 나쁜 회색이었다. 유리문에 붙은 종이에는 자필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빵집 없어졌어요! 어디 갔는지는 저도 몰라요! ^^; "


너무 울컥하더라. 사장님이 모르시면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6) 그래도 노력 중이시군요

 

그날도 새벽에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상 주차장이 딸린 빌라에서 웬 아저씨를 발견했다. 그 지상주차장은 특이하게 작은 육각형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차주들을 배려한 깜냥이 보였다. 아저씨는 그 벌집 같은 곳에서 빈손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마치 거기서 삐져나오면 안 되는 꿀처럼 주차장을 벗어나질 못하자, 나는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 아저씨는 왜 주차장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걸까? 혹시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방에서 못 나가는데, 큰 용기를 내서 활동반경을 넓히신 걸까? 직사각형 세상에서 육각형 세상으로 넘어가신 걸까? 아니면 가까운 곳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이랑 어떤 사이일까? 인사하기 망설여질만큼 소중한 사람인 걸까, 어색한 사람인 걸까? 


내가 맘대로 여러 갈래를 트는 사이 아저씨가 움직였다. 시선을 거두는 척 휴대폰을 보며 어디로 가는지 확인했는데, 바로 앞 편의점 문을 열었다. 


아! 금연 중이셨구나... 새 담배를 살 지 말 지 고민하고 계셨구나. 결국 피기로 하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아까처럼 여러 가능성을 염두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그렇다고 결정하기로 했다. 내가 흡연자라서 그런 걸까. 그럼 그런 걸로 치고, 아저씨 그래도 노력 중이시군요. 파이팅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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