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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여섯 개짜리 다리

죄는 없지만 그래도 싫은 벌레들 이야기


세상에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곤충학자들 말고. 미취학 아동들 말고. 장수풍뎅이 같은 멋지게 생긴 애들 말고 해충들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절의 심상을 매미에 담았던 선현들도 막상 매미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지 않을까. 


나는 벌레를 정말 싫어한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나중에 꼭 성공해서 세스코에서 제일 철저한 패키지로 정기 점검을 받는 것이다. 그 주기는 자세히 모르지만 제일 자주 받는 것보다 더 자주 받아 세스코 직원들을 집들이 손님처럼 맞을 거고, 연말 선물도 챙겨드릴 거다. 예전에도 싫었지만 나이 앞자리가 2로 바뀐 후부터는 더 싫어진 것 같다. 


성인 전에는 벌레 관련해서 딱히 일화랄게 없었다. 그냥 봐서 싫었다, 못 잡아서 부모님을 불렀다, 이 정도. 그러다 스무 살에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여름이었는데, 그때 처음 벌레 때문에 심각함을 느꼈다.   


그때 다니던 독서실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 독서실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들어오려고 문 손잡이를 잡기 직전이었다. 문 손잡이 위쪽에 뻔뻔하게 붙어 있는 그놈을 발견하고서 너무 놀라 벽에 붙을 정도로 뒤쪽으로 빠졌다. 조금씩 움직이는 괴수의 동태를 살피며 내 딴에는 정말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형체를 조금이라도 뭉개기 위해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불안함이 극에 달해 극단적인 가짓수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가야 하나? 지갑을 놓고 와서 그건 안 되는데, 직원을 불러야 하나? 아니면 휴지를 뭉쳐서 던져볼까? 내 가지치기는 분재랑은 거리가 멀었고, 벌목기의 꿈을 꾸는 예초기처럼 동선을 막는 나무는 무시하고 야금야금 자기 그릇에 맞는 전진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깎인 잔디의 모습은 다여섯살 애기가 이불에 오줌으로 그린 웅덩이보다 더 무분별했다. 내가 지적 창의력과 판단력을 총동원하던 중 다른 사람이 문 손잡이를 짚고 독서실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그 벌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안심하고 나도 독서실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불쾌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놈이 날아서 바닥에 착지한 것이다. 그놈은 보통은 퇴화됐을 비행능력이 아직 남아있는, 자신의 종이 살아남은 시간의 크기로 우쭐대는 거만한 놈이었다. 


어렵게 내 자리로 돌아왔지만 공부에 집중할 만한 심신이 아니었다. 겨우 진정될 때쯤 이번엔 그놈이 독서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 독서실은 문이 열리고 닫히는 개인 룸을 제공했는데, 복도 끝에 있는 누군가의 방문에 그놈이 또 앉아 있었다. 그 벌레는 강의실에서 큰 소리를 내며 기지개 피는 늙기만 한 복학생처럼 벽에 붙어있었다. 그렇게 다시 심란해졌을 때 내 방 한편에 있는 도시락 통이 눈에 밟혔다. 어머니가 사랑과 사랑으로 인한 걱정을 담아 싸준 그 일용할 양식에 처음으로 섬뜩함을 느꼈고, 그 찰나에 가방을 싸 들고 독서실을 떴다. 혹여나 그 벌레가 내 도시락에서 새는 음식 냄새를 맡고 다가올 까봐 겁이 났다. 결국 그놈의 동물적인 강함을 인정한 꼴이었다. 


독서실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내가 왜 그렇게까지 두려움을 느꼈는지 돌이켜봤다. 똥은 분명 더러워서 피하는 것인데, 나는 그날 추잡스럽게 줄행랑을 쳤으니까. 막연한 책임감 때문인 거라고 결론지었다. 스무 살은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히 사회인을 포함한 어른에 전혀 해당되지 않고, 해당되지 않아도 괜찮을 나이인데, 당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첫 수능도 만족스럽게 치르지 못한 내가 그 상황에서 느낀 압박감은 꽤 컸던 것 같다. 일종의 외재화인 것 같다. 언젠가는 독립해서 살아야 하고, 그러면 자기 집에서 나온 벌레는 자기가 잡는 게 당연하니까. 근데 당장 그게 안 되니까 일을 부풀려 생각한 것이다. 


근거는 회피 가능성에 있다. 벌레 한 마리를 못 잡아서 독서실에 있지 못하면 그 공간에서 공부를 못하고, 집에 있을 수 없으면 노숙을 해야 한다. 반면에 당장 자리를 뜰 수 있는 곳에서는 그런 두려움은 일렁이지 않는다. 우리 집 앞에는 규모가 적당한 공원이 있다. 원주가 1km 정도 되는, 나무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인데, 새벽에 거기서 산책을 하다 보면 벌레를 엄청 자주 본다. 기어 다니는 애들은 종류별로 보고, 날벌레들은 서로 부주의하면 부딪히기도 한다. 거기서 만난 바퀴벌레는 딱히 무섭지 않았다. 그냥 눈을 돌리고 다른 쪽으로 가면 되니까. 그 바퀴벌레는 여전히 벌레지만 동네 주민에 가까웠다.  


벌레를 맘대로 못 잡는 것에 부채감을 느끼고 있을 때, 생애 처음으로 바퀴벌레를 자력으로 잡았다. 나는 만화카페에서 반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그곳은 평수가 그리 크지 않아서 평일 마감의 경우 알바생 혼자 관리했다. 일이 없으면 심심함을 빙자한 외로움을, 일이 많으면 책임감을 등에 업은 갑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날은 일이 적당한 날이었다. 별생각 없이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있었는데, 나를 반기는지 위협하는지, 바퀴벌레가 미동도 안 하고 조용히 벽에 붙어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바로 화장실을 떴다. 그놈은 마치 화장실 마감 상태를 체크하는 까칠한 매니저처럼 벽과 벽 사이 모서리의 정확한 가운데에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항상 바퀴벌레들은 과시욕에 빠져 있는 걸까? 자기네들의 생물적 우월함은 이미 여러 과학계에서 공인하고 있는데... 고작 몇 센티로 크다는 평가를 얻는 바퀴벌레들은 제법 속 편한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계산대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것은 화장실 마감이었다. 내가 불을 끄고 나가는 입장이니까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일단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계산대로 다시 돌아와 독서실 때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랑 달리 절대 저 놈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바퀴벌레를 손님들이 보면 가게 별점을 안 좋게 달 수도 있었다. 실제로 대표님은 네이버 리뷰에 악평이 하나 달리자, 알바생들에게 아무 영수증이나 찍어 리뷰를 올리면 5000원을 계좌로 보내준다고 하신 적도 있었다. 


그러니 그 바퀴벌레는 가게 경영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혼자 일하는 내 입장에서는 책임져야 하는 불똥이었다. 일단 손님들이 화장실을 가려고 하실 때마다 사정이 있어 지금은 이용 못한다고 둘러대 시간을 벌었다. 나는 평소에 다리를 떨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진짜 초조할 때 다리를 떠는 자신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고, 자연스레 상황에 몰입할 수 있다. 그때 나는 다리를 엄청 떨면서 몰입하기 싫은 순간에 행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실 가만히 있던 내게 순간이 알아서 찾아왔다. 그놈이 화장실을 나와 손님들 쪽으로 조금씩 이동했기 때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뇌 대신 근육이 몸을 움직였다. 살충제로 어떻게든 무력화시키고, 쓰레받기에 담아 변기에 넣는 데 성공했다. 텍스트로만 보면 깔끔해 보이지만, 실상은 정말 우스꽝스러웠다. 쓰레받기 안 쪽으로 쓸다가 놓치고, 다시 움직이니 손을 바꿔 살충제를 뿌리고, 혈투는 분명 60초를 넘겼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커플이 그 꼬라지를 다 지켜봤는데, 다행히 소리 내어 비웃거나 하지는 않으셨지만 괜히 눈치 보였다. 


그다음 날도 바퀴벌레는 나왔고, 알고 보니 우리 만화카페 세스코 정기검진이 밀려있었다. 세스코 직원이 몇 번 다녀간 후로는 좀 나아졌다. 누군가에겐 이게 별일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별일이 아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그 불쾌한 생명을 변기 구멍, 감정적으로는 지옥의 입구로 내려보낸 그날,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진 건 아닐까. 지금도 여전히 벌레를 잘 못 잡는다. 내 맘대로 이십 대답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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