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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대체 애가 몇 명일까

아이를 키우는 걸 본다는 것 


20대 중반에 불과한 나도 육아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건 내가 내 성장과정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가 너무 커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내가 느끼기에 부모님의 육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부채감 때문일 수도 있다. 결혼도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인 주제에 좋은 부모가 되는 건 뭘까? 하며 자기 진단을 가끔 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엄청 단순하다. 


'좋은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좋은 부모가 된다!'


언제나 이론은 명료하다. 그걸 실현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머리가 아픈 거지.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는 건 필수에 가까운 일인 것 같다. 교보재가 이리 많은데 굳이 정성 들여 맨땅에 대가리를 박을 필요는 없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급식을 먹을 시절에는 또래 밖에 안 보였는데, 사회인 극초반에 강제적으로 다다르니까, 이제야 좀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다. 그중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을 볼 때면 감정이 좀 격해진다.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치고 싶을 때도 있었고, 화가 나서 부모만 따로 불러 물꼬를 트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반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 이 얘기를 지인한테 하면 백 프로 캐디였냐고 물어보지만, 그런 건 전혀 아니었고, 음료 갖다 드리고 빈방 치우고 그냥 엄청 규모 작은 호텔의 종업원이었다고 본다. 아니면 엄청 럭셔리한 당구장이었을 수도. 실제로 손님들은 골프장 룸을 그런 용도로 썼다. 본인들끼리 은밀한 얘기를 하는데 소주잔 대신 커피잔을, 큐대 대신에 골프채를 쥐었다고 보면 된다. 흡연실을 치우면서 듣는 아저씨들 대화는 매우 재밌었다. 꼴 보기 싫은 회사 직원을 날 잡고 조질 거라 동료에게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고, 야근 중이라며 사모님께 결재를 받고 있기도 했고, 10년도 전에 열린 결혼식에 서로 안 왔다며 아직도 싸우고 있는 모습도 봤다. 


우리 골프장은 원래 사우나였다. 코로나 사태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골프장으로 업종을 변경했는데, 그래서 더럽게 넓고, 룸도 더럽게 많았다. 그러니 일도 더럽게 많았고, 다행히 그 더럽게 많은 정도보다는 덜 짜증 났다. 표현을 이쁘게 해서, 쾌적하고 여유 있는 우리 골프장은 방 사이 복도도 넓었고, 마땅한 곳에는 인조잔디를 깔았다. 예약을 기다리는 손님들은 그곳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서빙을 하며 그곳을 지나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 잔디 중앙에 웬 5살 갓 넘은 애기가 휴대폰을 보며 누워있었다. 


일을 반년 동안 해보니 그런 애기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어른들이 애기들 데리고 골프를 치러 왔는데, 애기들 걸리적거린다고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한 거다. 걔네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눈에 밟혔고, 당연히 애기들이니 기분은 안 나빴지만 마음이 아팠다. 방에 같이 있는 애기들은 나도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드라이버 소리를 들어야 하니 전혀 좋을 리가 없었고, 어른들이 왔다 갔다 하는 복도에서 시대를 대변하는 전자기기랑 단 둘이 방치되는 건 최악의 정서 함양이었다. 스크린 골프장 환경을 따졌을 때, 애기들이 올 곳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 중 한 명이 홀인원을 쳐 경품을 받아가는 모습에 꼴 보기 싫었다. 애기들은 그게 어떤 경유로, 뭘 받았는지도(골프용 장갑이나 디자인 골프공이었다.) 모르면서 부모가 자랑하니 마냥 밝게 웃었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이스티 몇 잔 더 주고, 새우깡이나 포스틱 같은 과자를 한 컵 가득 담아 주는 것 밖에 없었다. 


언제는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 잠깐 쉬려고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엄마랑 남자아이가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다. 아이는 팔짝팔짝 뛰며 피자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문제는 엄마가 대가리에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는 거다. 나도 들은 아이의 저녁메뉴를 그 엄마는 듣지 못했고, 아이가 오두방정을 떠느라 풀린 손을 다시 붙잡지도 않더라. 그거 보고 화가 나서 달려가 헤드셋을 잡아 던지고 싶었다. 


내가 관찰한 이런 류의 부모들 중 제일 없어 보였던 건 카페에 온 가족이었다. 그때 나는 중학생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 가족은 각자 음료와 조각 케이크를 시켰는데, 이미 포크를 잡은 두 명에게 아이는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엄청 앙칼지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좀 찾아보라고 소리쳤고, 착한 아이는 진짜 찾으러 카페 곳곳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꼴을 끝까지 봤다. 내 학생이 문제를 풀고 있는 타이밍이 아니었으면 잠깐만 기다리라며 수업을 중단했을 거다. 


애가 화장실에 성공적으로 다녀온 지는 모르지만, 부모들은 이미 그 케이크를 다 먹어치웠고, 돌아온 아이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고 난 후 나는 내 학생에게 아까 그 손님들 봤냐며 괜히 울컥해서 설명했다. 나에게 부모라는 자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부모의 자질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부모가 되었으면 부모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날 그 먹보들을 보면서, 자질을 먼저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꽤 복잡했다. 


마지막 일화다. 겨울철 밤에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내 뒤로 부모 둘과 아이 하나가 양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러다 골목을 돌아 차량 하나가 접근했는데, 갑자기 나와서 헤드라이트 빛이 엄청 셌다. 내 뒤에 있던 부모들은 누구 먼저라 할 것 없이 아이 양눈을 가리며 도로 측면으로 빠졌다. 행여나 애 눈 버릴까 고심했던 거다. 그때 나는 라섹을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길에 쌓인 하얀 눈도 잘 못 보던 시기였다. 괜히 내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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