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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새벽 3시, 행인을 놀라게 하는 연주자

 흥겹고 우스운


최근에, 새벽에 산책을 하다 또래 무리들의 시선을 빼앗은 적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다 현기증을 느껴 입고 있던 줄무늬 잠옷 그대로 나와 공사장 주변을 서성였다. 그날 마주친 또래 남자들 대여섯 명은 동네에서 늦은 회식이 끝났는지 들떠있지만 지친 기색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이어폰을 꽂았고, 정신은 위태로운 젠가처럼 서있기는 했다. 난 그 무리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허공에 양손을 저으며 음악에 몰입했고, 그들은 나를 지나치자마자 데시벨을 줄였다. 나와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긴 후에 다시 이야기꽃이 폈는데, 분명 나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거리 때문에 멀어진 그들을 귀로 쫓으며 웅얼거리는 웃음소리에 멋쩍어했다. 


내 이런 습관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생겼다. 마스크로 가린 입은 전보다 더 자유로워했다. 흰색 비닐하우스 같았던 마스크는 목소리 있는 음악을 들으며 걸을 때 흥겨움을 방출하게 해주는 흡음실이었다. 음소거 영상으로 한창 마스크 쓰고 다니던 나를 본다면, 지지직거리며 흔들리는 내 고개로 듣고 있는 음악의 빠르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게 됐어도 버릇은 남아있어 산책 시간만 시나브로 늘었다. 


그러다 올해 초, 놓은 지 6년은 더 된 악기를 다시 잡게 됐다. 휴학하고 남는 시간이 생기니, 다시 바이올린이 하고 싶어서 교내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여렸을 적 순수했던 모습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서 다시 시작한 건데, 나도 모르는 애착이 엄청 커져 있었다. 그걸 몸소 느낀 후로 음악을 가만히 앉아 들을 수 없게 됐다. 영화관에서 아는 클래식 음악이 삽입되면 무릎 위에서 어정쩡하게 바이올린을 켜기도 했다. 그 모습은 돌팔이 작곡가가 처음 들어보는 노래의 코드를 따려고 기타로 도둑질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요즘 새벽에 산책하는 나는 더블링도 하고, 왼손을 줄에, 오른손은 활에 올려 무형의 나무조각들과 교감도 하고 있다. 한적한 공원 옆에서, 새벽에 그런 모습을 본다면 대부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지 않을까. 내가 느껴야 할 쪽팔림이 생각보다 작은 건 두 달 전에 간 팬음감회 덕분이다. 


어떤 래퍼의 팬이 다른 팬들을 모아 래퍼 없이 음악을 내리 틀었기 때문에 엄밀히는 음감회가 아니었지만, 분위기나 깊이 면에서 충분히 음감회라 부를 만했다. 처음 가본 동네의 클럽에서 60명 내외로 진행됐는데, 힙합 클럽이었지만 각종 예술로 벽면이 쫙 채워져 있었다. 나는 모르는 재즈 거장의 사진도 있었고, 고흐의 해바라기도 있었고, 화양연화라는 홍콩 영화의 포스터도 재해색되어 걸려 있었다. 사람들도 열정적이었다. 대부분 혼자 왔던데 그런 티가 안 날 정도로 열기가 심했다. 실제로 그날 하나뿐인 클럽 에어컨이 고장 나서 더럽게 더웠긴 했다. 쉬는 시간이 됐을 때 흡연자, 비흡연자 할 것 없이 나가서 바깥바람을 쑀다. 


아티스트 본인도 없이 품질 좋은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였지만 그들은 각자의 바이브에 맞춰 음악에 호응했다. 그들은 90년대에 5년 정도 명맥을 유지했을법한, 컴퓨터를 숭배하는 잡종교의 집회 현장처럼 기계 소리에 맞춰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비니를 꾹 눌러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만의 박자에 맞춰 입을 크게 벌리고 닫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던지는 먹이를 기다리는 잉어 같았다. 근데 그 사람은 남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우스꽝스러울 만큼 크게 입을 오므리고 벌렸고, 행사가 끝에 다다를수록 더 심해졌다. 그렇게 보니 분명 그 사람은 잉어 한 마리였지만, 동네 호수에서 동족포식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잉어가 아니라, 대기업에서 관리하는 공원에서 나풀거리는 회장님의 값비싼 반려동물처럼 보였다. 걔네는 자기들 무늬나 색에 따라서 이름도 하사 받는다는데, 그 사람은 자기 이름에 만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한테도 말 안 걸고 음악만 듣다 간 그 사람을 본 후로 감정이 고취되면 남의 곁눈질은 신경 쓰지 않고 맘대로 행동하게 됐다. 그래도 내 심취는 아직까진 자폐적인 것 같다. 언제는 지하철을 타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칸을 이동하는 젊은이 무리들에게 빨리 지나가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무슨 역직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휴대폰으로 찍고 싶은 구도가 있으니, 빨리 비키라는 손짓이었다. 그러나 계속 사람이 왔다 갔다 하니 20분은 넘게 그 할아버지의 실랑이가 끝날 일은 없었다. 그때 느낀 답답함 덕분에 새벽에 우발적으로 개최되는 내 공연에는 관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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