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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Oct 02. 2023

벌려고 하니까 전부 밥벌이

직업이 아닌 직업을 가진 사람들


흔히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얘기한다. 진짜 딱 얘기만 한다. 본인들 나름대로 기준이 있어 미달된 밥벌이는 껴주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렇게 끄적이는 것도 안 좋게 보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데... 


새로운 직업이 계속 생기고 있는 요즘이지만, 비아냥 섞인 사람들 관심으로 방해 안 받으려면 높은 월 수입을 런닝맨 이름표보다 크게 등에 붙여 놓거나, 항상 귀마개를 끼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낫겠다. 그냥 이어폰을 꽂으면 되니까.


내가 지금 스펙 쌓기 싫다고 넋두리를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고, 나름 직업관이 열려있는 나도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직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특별한 알바만 골라서 했고, 하고 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소액이지만 돈을 벌면서 밥벌이에 대해 이해했다. 어리숙한 내가 큰 용기를 내서 접객에 뛰어들어보니 서비스업 특유의 박애주의도 터득했다. 그건 어떤 손님이든 일단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 친절히 대하되, 손님이 꼴 보기 싫은 짓을 할 때마다 뒤에서 욕하고 기억하는, 내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었다. 


제대로 된 직업은 아니었지만, 알바에 대한 기본적인 토양이 깔리니 이제 돈을 많이 벌 수 있냐, 일이 얼마나 쉽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구경이든, 경험을 쌓든 최대한 재밌어 보이는 걸 찾게 됐고, 어느 정도 충족되면 바로 그만뒀다. 무협에서는 하산이라고 표현하는데, 딱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적당한 수련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렇다고 샘솟는 패기만 가지고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아쿠아리움에서 접객업을 하고 싶었는데 금요일에 시간을 못 낸다며 면접에서 떨어졌고, 장례 도우미는 30세 이상부터 뽑는다며 핏덩이는 꺼지라는 업계 차원의 거절도 당했다. 정말 아쉬웠다. 


알바에도 상하가 있다면, 당연히 어른들이 추구하는 고상함이 주요할 것이다. 과외는 명문대생의 효도고, 막노동은 젊음의 낭비라고 주로 생각하니까 말이다. 근데 그것보다 더 실질적인 요소는 필요인 것 같다. 한창 주말알바를 뛸 때 가장 화났던 건 작년 주말에 공휴일이 정말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상황인 대학교 친구들도 많았다. 그날 우리는 톡방에서 유니폼이든 명찰이든 각자 찍어서 올렸고, 형형색색의 일터를 쭈욱 확인한 우리는 엄청난 위로를 느꼈다. 그날 알바를 끝내고 밤에 학교에 모여 우리가 대한민국을 굴러가게 하고 있다, 우리가 없으면 사회가 안 돌아간다는 둥 호쾌한 말을 하며 술을 먹었다. 그날만큼은 우리가 사회 엘리트층들이 모인 이너 서클이었다. 


매장 직원은 필요하다. 없으면 매장이 안 돌아가니까. 나를 포함한 젊은 애들은 주로 이런 데서 일한다. 그래서 뭣도 없는 우리를 쓰는 거겠지. 근데 전단지 알바나 노점상, 폐지 수거를 이런 측면에서 좋게 볼 수 있을까? 그 일들이 사라진다 해도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도 동요하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시대에 전단지를 건네주는 게 무슨 홍보 효과를 낼까? 길거리에서 파는 생선을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여름에! 


이것도 요즘에서야 든 생각이지, 그전에는 제대로 인식도 못하고 그렇게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분들 입장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들에 괜히 놀라거나 인상 깊었던 적이 많다.   


어느 날은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 흰색 봉다리랑 백 여러 개가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쓰레기도 아닌 것이 중요하게 담겨 있어서 안을 확인해 보니, 막 공사가 끝난 상가 분양 안내 책자와 작은 물티슈였다. 전단지 알바를 하시는 분이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짐이 많아서 놓고 간 것 같았다. 이때 무례하게도 인상이 깊었다. 내가 그전까지 전단지 알바를 보면서 그분들이 화장실을 갔다 온다는 개념을 연결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일이 언제 끝날 줄 알고. 당연히 화장실 마려울 거고 갈 수도 있지. 


최근에는 동네에서 밥을 먹고 걷고 있었는데, 어떤 여성분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그분도 분양 사무소에서 전단지 알바 비슷한 걸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그때 나는 대체 무슨 사진을 찍어달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가서 그분이 취한 포즈 몇 개를 놓쳤다. 자세한 디렉팅을 들어보니, 자기가 전단지들을 들고 업체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아 황당했지만, 요청대로 찍어드렸다. 


이것도 비슷한 문맥인 것 같다. 그분이 정확히 어떤 경위로 거기서 전단지 알바를 하는지도 모르는데, 사진을 찍어줄 거면 이상한 판단은 안 해도 됐던 거 아닌가? 지인 사업을 도와주러 온 것일 수도 있고, 그냥 그날 전단지 알바를 하는 것에 다른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있는데, 괜히 나는 이해가 안 되니까 별 꼴이라고 관성적으로 생각해 버린 것 같다. 버스 정류장 옆에서 작달막한 식기를 팔고 있는 노점상이 프랜차이즈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고 계셨을 때도 비슷했다. 그분들도 밖에서 일하니 더운데, 당연히 커피 한 잔 할 수도 있지. 뭘 그걸 놀라고 자빠졌나. 노점상 분들을 노숙하는 거지분들이랑 똑같이 보는 건 너무 무례한 일이었다. 수입은 둘째치고 말이다. 


어느 새벽에는,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노점상 두 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거리가 충분히 안 가까워 자세히는 못 봤지만, 아저씨는 해산물을, 아주머니는 채소를 팔고 계셨다. 새벽 3시에... 

오후 3시였어도 판매 확률이 낮은데, 왜 새벽 3시부터 장사를 시작할까. 이러고 그냥 넘겼다. 


근데 그 모습들을 몇 번 보다 보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두 분 사이에서는 핑크빛 기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후로 두 분을 뵌 적이 없어 애초에 부부 관계이신 건지, 아니라면 발전은 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두 분은 야심한 새벽에 생업의 혼이 깃든 식품들을 늘여놓고 데이트 중인 것처럼 보였다. 


이 글의 결론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모든 직업을 소중히 하라는 돼먹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내 관찰력의 부족함을 늘어놓으면서 으스대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분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나도 똑같이 밥 벌러 여기저기 가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은 것뿐이다. 내일이 알바 면접이라서 이런 글을 쓴 걸지도 모른다. 무슨 놈의 매장이 그리 바쁜지, 정한 알바 면접날을 미룬 곳은 처음이다. 덕분에 이틀 더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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