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메이커

열한 번째 이야기

by 향다월


1


어스름한 시간대, 석양의 주홍색 빛을 받는 골목길이 가로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등하게 작은 전원주택들의 행렬. 혼자 입구 쪽이 움푹 파인 회색 주택에서 무언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작은 주택의 흰색 철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지지직거리는 소리는 자리를 지키는 철제를 무시하고 곧 밤의 배경이 될 골목길 사이에서 흐느적대기 시작했다. 그 주택 지하실에서 방진 마스크를 쓴 남자가 나무를 갈고 있었다. 마감이 투박한 검은색 테이블 위에서 세로로 회전하는 나무 조각은 남자가 조각칼을 갖다 댈 때마다 자기 허리를 내어줬다. 납득 가능한 허리 곡선이 나오자 남자는 기계 전원을 껐다. 아령 손잡이를 닮게 된 나무 조각은 시간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만든 모래시계처럼 중간이 넓었다.


남자는 그 굴곡을 매만지며 흘러가는 모래알들을 응시하듯 시선을 깔았다가, 젓가락보다 조금 두꺼운 지지대를 나무조각 홈에 끼웠다. 그리고 테이블 구석에 고이 모셔 놨던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이 섞인 날짐승 시체의 엉덩이를 위에 꽂았다. 휜 부리가 불 같은 성정을 보여주고, 사이가 먼 두 눈의 총기에서 생명력이 느껴지는 앵무새였다. 삼색으로 구성된 몸체와 결국 머리 색으로 떨어지는 긴 꼬리는 현대에 새로 생긴 국가의 포부 넘치는 국기 디자인 같았다. 앵무새는 죽은 지 며칠은 지난 녀석이었다. 남자는 박제사다. 박제사는 스탠드를 켜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의뢰인에게 전송했다. 이제 막 날아오르려는 듯이 양 날개를 반쯤 편 앵무새의 자태는 괜히 우스꽝스러웠다. 박제사는 앵무새의 모형 눈을 바라봤다. 부리는 벌어져 있었지만 박제물은 대답하지 못했다. 얼마 안 있고 박제사의 휴대폰이 앙칼지게 울렸다. 박제사는 오른손을 털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기요! 제가 주문한 자세가 전혀 아니잖아요!”

의뢰인은 아줌마 특유의 강한 어조로 불만을 제기했고, 박제사는 자기 허벅지 위에서 오른손을 연신 털며 대답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요청하신 대로 하품하는 모습을 그대로 본 땄잖아요.”

“우리 아이는 하품할 때 날개를 움직이지 않아요! 오른쪽 다리를 들이밀지!”

박제사는 실수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일련의 요구사항들은 구두가 아니라 이메일로 확실히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박제사는 마감에 쫓기면서도 여러 번 이 앵무새의 습관을 상기했다.


“우리 애 가지고 장난치는 거도 아니고! 이게 뭔 가요?”

박제사는 청바지 결에 표시가 날 정도로 더 빠르게 오른손을 쓸며 높아지려는 언성을 낮췄다.

“저는 절대 고객님 가족으로 장난치지 않았습니다.”

“됐어요! 작업실 꼬라지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요! 우리 애 몸에 흠집이라도 생긴 거 아니에요?? 날개는 괜히 펴 가지고! 후불금은 못 드릴 것 같네요. 빨리 택배나 부쳐주세요!”


의뢰인은 자신이 보낸 이메일을 확인해 볼 생각도, 여력도 없었다. 일주일도 전에 가족을 잃은 본인은 자기 딴에는 비극의 주인공이었고, 슬픔의 완전한 주체였다. 박제사는 거기 낀 취급 나쁜 제삼자였다. 의뢰인은 자신의 동물을 사람 취급했지만, 남의 동물을 사람 취급하는 박제사는 사람 취급하지 못했다. 박제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다시 전화를 걸까 하다가 고민을 멈추고 테이블 위에서 엿듣던 메스를 집었다. 박제사는 소파에 눕고 메스로 천장을 털며 보이지 않는 묵은 것들을 건드려봤다. 그래봤자 조명을 가로막아 생기는 그림자만 아른거렸다. 이 습관은 포유류 가죽 안쪽에 붙은 지방을 정리할 때, 칼을 계속 예리하게 쓰기 위해 생겼다. 박제사는 기분 나쁜 고민에 빠질 때마다, 고민 자체가 기분이 나빠 오른손에 무엇을 쥐었든 쓸어 넘기는 시늉을 했다.


한 번은 요크셔테리어 박제를 할 때, 강아지 털이 너무 길길래 이발을 했더니, 의뢰인이 통화로 격하게 화내며 선불금도 돌려 달라 한 적이 있었다. 박제사는 정갈하게 만들어 달라는 의뢰인의 요구에 감정을 담아 임했을 뿐이었지만, 감사 인사 대신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갓 완성한 파스타를 한 젓가락 뜨려던 참이었는데, 박제사는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털었고 테이블은 엉망진창이 됐다. 테이블은 파스타를 담는 새로운 그릇이 되어 있었다.


학대하던 오른손이 뻐근해졌고, 박제사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박제사는 서둘러 새장을 괄시하는 앵무새 박제를 포장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우체국에 붙여도 됐지만, 괜히 늦게 보낸다고 또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박제사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자신의 작품을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보관해서 죄책감을 느꼈다.



2



날이 밝았다. 박제사의 작업실은 밤 때보다는 덜 작아 보였지만, 지나치는 행인들이 많아 결국 외로워 보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무능력한 흰색 문을 무시하고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향했다. 박제사는 대충 냉동 피자로 점심을 때우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장갑을 벗은 박제사는 꽤 크지만 내용물을 알면 별로 크지 않은 아이스박스를 바라봤다. 거기엔 지금 당장 작업해야 하는 닥스훈트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의뢰인의 요구사항은 특별하지 않았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박제가 아니라 실물 사이즈 장난감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 아이를 전시해 놓고,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을 화들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 아이가 그런 짓을 많이 해 참 이뻤다고 했다. 막 작업용 장갑을 끼운 찰나, 이번엔 밖에서 안 쪽으로 소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얼굴이 어떤 인상을 나타내는지 흰색 문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조심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큰 노크였다. 박제사는 장갑을 벗고 계단을 올라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을 열자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성이 환하게 웃었다. 밝은 웃음과 대비되게 영락없는 상복 차림이었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토이메이커 박제소 맞나요?”

“네, 맞습니다. 박제 의뢰하시나요?”

“예...”

박제사는 의뢰인의 복장에 괜한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를 찾아왔던 의뢰인들은 죄다 대화가 안 될 만큼 죽상이거나, 여전히 대화를 못할 정도로 성질이 나 있었다. 매 순간 박제사는 오른손을 털며 그들을 동정했고, 일부는 모멸했다. 자기들 감정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 진심을 가진 것들. 그들은 반려동물의 죽음에서 기억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사건을 찾았다. 그들이 굳이 돈을 들여 박제하는 것은 동물의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박제사는 들떴다. 의뢰인의 칠흑 같은 상하의는 진심이 담긴 것 같았고, 환한 미소는 정제된 감정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당장 조의금이라도 내고 싶을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박제사는 떨어지는 낙엽처럼 자유롭고 가벼운 몸짓으로 의뢰인을 작업실로 안내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들 뒤로 노후한 출입문이 닫히며 지저분한 소리를 냈다. 흰색 철문은 비록 자신이 더러운 환영인사를 표했지만, 박제사의 낙엽 같은 흥얼거림은 잘 막았다며 되려 뿌듯함을 느꼈다. 철문은 그 낙엽에서 계절의 끝이 아니라 낙하의 경치를 떠올렸다. 박제사와 의뢰인은 의자가 부족해 마주 보지 못하고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반려동물이었나요?”

박제사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으로 의뢰인의 깊이를 조사했다. 의뢰인은 문을 열었을 때와는 상반되는 분위기로 낮게 대답했다.

“아니요... 저기 일을 맡기기 전에 말입니다, 선생님의 작업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정말 죄송하지만, 선생님이 작업하시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결심이 설 것 같아요.”

박제사가 갖고 있던 기대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박제사 특유의 복잡해진 생각을 그만두는 습관 때문에 그의 관심이 흩어졌다. 소실된 관심은 이윽고 불편함으로 다시 보였다. 오른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 일은 박제입니다. 시체를 다듬는 일이에요. 봐서 좋을 것 없을 겁니다. “

“저는 괜찮습니다.”


박제사는 의뢰인의 괜찮다는 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박제사는 이 의뢰인에게서 깐깐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죽은 가족에 대한 조바심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의뢰인의 검은 상하의, 순수한 하늘이 구름으로 도포된 것처럼 급변한 표정, 애매한 태도의 부탁은 너무나 복잡한 이야기 요소였다. 연신 터는 시늉을 하던 오른손의 움직임이 커졌고, 쥐고 있던 펜은 날아가 의뢰인 앞으로 떨어졌다. 둘 사이에서 대기하던 이면지가 더 하얘졌다. 의뢰인은 자기 쪽으로 날아온 펜을 다시 박제사에게 돌려줬다. 박제사는 쪼달리는 잔고를 상기하고는 결심했다.



3



장갑과 마스크를 착장한 박제사는 아이스박스를 노려봤다. 벽 쪽에 서있는 의뢰인도 똑같은 금액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박제사는 준비를 마치고서야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서 타인의 가족을 공개해도 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뢰인의 시선을 한겨울 지하철 막차가 끊긴 야밤에, 쏟아지는 눈처럼 받아낼 재간이 없어 아이스 박스 뚜껑을 열었다. 드라이아이스 몇 개가 쓰다듬고 있는 닥스훈트는 향년 13세에 폐병으로 죽은 아이였다. 박제사는 외상이 없어서 큰 어려움은 없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박제사는 조심스럽게 닥스훈트를 꺼내 작업용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의뢰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만졌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위험한 장비가 많으니 지켜보기 만 하셔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박제사는 단도를 들고 입 아프게 경고했고, 의뢰인은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제사는 갑자기 뻔뻔해진 의뢰인의 태도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박제사는 닥스훈트의 목 아래부터 배꼽까지 엇나가지 않게 갈랐다. 그 직선은 악랄한 나르시시즘의 외과의사가 어차피 꿰맬 거 상관없다며 마음껏 환자의 몸을 가른 것처럼 컸지만, 박제사의 손길은 충분히 따뜻했다. 마치 재단사가 닥스훈트의 체형과 말년을 위해 치수를 재는 것 같았다.


“왜 배 쪽을 가르는 건가요?”

의뢰인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자리에서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고 질문했다. 박제사는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털다가 닥스훈트의 털을 훼손할 뻔했다.

“그래야 다시 이었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요. 강아지는 사족보행이니까 아래는 잘 안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반대로 이족보행 동물은 등을 가르는 게 좋겠네요.”


박제사는 그의 말에 물음의 어조가 없어서 굳이 대꾸하지 않고 작업에 집중했다. 박제사는 단도를 가죽 안 쪽으로 넣어 다리 쪽부터 벗기기 시작했다. 서걱서걱하는 소리만 따로 들으면 정육점에서 정형하는 것 같았다. 누가 들으나 결국 두 소리는 모두 빨간색이었다.

“가죽을 주로 사용하면 눈은 어떻게 하나요? 눈도 따로 처리해서 사용하나요?”

“눈은 가능하면 기성품을 사용합니다. 저쪽 작은 보관함들 보이시죠? 저기에 종류별로 제품을 모아놨어요.”

박제사는 왼손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최대한 친절히 설명했다. 의뢰인은 보관함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아까보다 더 제 집 같은 당당함을 느끼는 듯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옆방을 둘러봤다. 그러다 후임이 엄청 피곤하게 여길 회사원의 책상처럼 가지런히 놓인 작은 투명 보관함 수십 개를 보며 질문했다.

“혹시 구경해도 될까요?”

“눈알만 만지지 않으시면 상관없습니다.”


의뢰인은 한 칸씩 열고 닫으면서 색깔이 조금씩 다른 모형 눈을 보며 감탄했다. 대동소이하지만 확고하게 구별되는 동공과 여러 색 자위를 보며 지구 생물의 다양성에 경의를 표했다. 의뢰인은 특유의 직업적인 버릇으로 그 다양성들에 우위를 새겼고, 그런다고 자기를 바라보는 양 눈 밖에 없는 동물들이 서운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박제사는 어느새 박피를 끝냈고, 뼈와 살만 남은 닥스훈트 시체를 통에 담은 뒤 흰 포대를 꺼냈다. 가죽의 바깥 부분을 테이블에 깐 뒤 그 위에 포대를 기울여 천일염을 넓게 도포했다.


“이건 무슨 공정인가요?”

“염장입니다. 수분을 흡수하고, 지방을 응고합니다. 방부도 되고요.”

“그렇군요. 마치 넓게 편 등심에 튀김옷을 바르는 것 같군요.”

박제사는 이 비유가 절묘하다고 생각했지만, 음식과 연결 지은 것이 심히 불편했다.

“다음 작업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저녁에 마저 해야 하니 5시간은 비어요.”

“아! 그러면 저는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가져올 것도 있으니까요.”


박제사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들어 환하게 웃으며 의뢰인을 보내줬다. 박제사는 의뢰인이 5시간 후에 오는 것과 오지 않는 것, 어느 것이 더 좋은 일인지 고민에 빠졌다. 박제사는 아까 의뢰인이 언급한 돈가스 비유를 빌미로 저녁을 굶기로 했다.



4



“선물입니다.”

“이게 뭡니까?”

박제사의 피로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의뢰인은 정확히 5시간 후에 도착했다. 의뢰인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다시 방문했다. 그 안에 있던 상자를 하나 건넸고, 안에는 강아지 모양의 장난감이 하나 있었다. 닥스훈트를 모방한 그 장난감은 등 정중앙에 태엽이 있었다. 박제사는 한 손으로 들기에는 조금 큰 장난감을 엉거주춤 들고는 당혹스러워했다.


“일단 테이블로 가시죠!”

의뢰인은 벌써 작업실이 편해졌는지 자기가 먼저 지하로 내려가자고 권했다. 테이블에 완구를 놓고 태엽을 감으니, 나름 유연한 몸짓으로 아장아장 걸었다. 5초를 감아도 2초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저기…”

박제사는 그래서 이게 뭐냐는 질문의 대답을 재촉하려 했지만,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다.


“소개가 많이 늦었군요.”

의뢰인은 박제사가 간절히 원하는 대답을 기어코 한 번 물렀다. 의뢰인은 명함을 건넸고, 박제사는 일말의 예의로 명함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의뢰인은 작은 완구 회사의 대표였다. 마침 멈춰 서 있던 닥스훈트 완구가 위태롭게 잡고 있던 균형이 깨져 머리부터 고꾸라졌다. 조악하지만 귀여운 완구와 완구 회사 대표의 명함을 동시에 보니, 닥스훈트가 잘못 먹고 명함을 토한 것처럼 보였다. 대표는 메슥거려하는 닥스훈트를 슬픈 눈으로 살펴보다 박제사에게 질문했다.


“이 작업실 이름이 왜 토이메이커입니까?”

“예? 그건 갑자기 왜요?”

“저는 나름 장난감 회사 대표입니다.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박제사는 대표의 추궁에 딱히 반박할 논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니, 작업실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이 사람이 처음인지라 말이 정리되지 않았다. 대답이 조금씩 늦어졌지만, 대표는 박제사에게 마지막 예의를 지키려는 지 천천히 기다려줬다.


“저는 박제물이 장난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부분 키우다 죽은 가족이까요.”

박제사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고, 대표는 본론이 뭐냐며 시선을 강하게 다듬었다.

“하지만 우리는 장난감을 따뜻한 감정으로 대합니다. 어른이 된 이후에 들인 장난감은 더더욱 그럴 거예요. 아슴푸레한 동심 이상의 것이 담겨있으니까. 그래서 장난감은 아니지만 장난감 같은 존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작업실 이름이 그런 겁니다.”

박제사는 막상 말하고 나니 부끄러웠지만, 후련한 감정을 피할 수 없었다. 대표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신경 쓰였지만, 그에게 이 문답은 프리랜서로 사는 동안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일단 작업을 마저 합시다. 귀한 시간 더 뺏기는 죄송스러우니까요.”

의뢰인은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작업을 재촉했고, 박제사는 처리가 끝난 가죽과 내용물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꿰매기만 하면 됩니다. 마스크는 쓰실 필요 없어요.”

박제사는 긴장되지만 유쾌한 몸놀림으로 의자에 앉았다. 대표는 이번에도 멀찍이 서서 관찰했다. 이번에는 벽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박제사는 바늘과 실을 정리하다가, 대표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지금부터 박제 과정을 바라보는 그의 진짜 표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갑자기 마음에 걸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작업을 시작했다. 박제사는 내심 대표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그의 기대가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찬찬히, 전문가의 지식을 총동원해 설명해 줄 심산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박제사는 보통 공무원으로 일한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아니신 거죠?”

“예, 몇 년 전에 퇴직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왜 그만두셨습니까? 굳이 서비스업으로 다가가신 이유가 뭔가요?”

박제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비스듬히 열린 마음의 문에서 여러 가지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저는 박물관에서 일했는데, 거기도 서비스가 아닌 건 아닙니다. 예전에 바다코끼리 박제를 한 적이 있는데, 복부에 큰 상처가 난 녀석이었어요. 북극곰이랑 싸운 건지, 사냥꾼들에게 당한 건지 애매하더군요. 발견돼서 의뢰받은 개체였어요. 작업이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상처가 상처인지라 결과물이 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이에 대해 동료 박제사들과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동료들은 상처가 너무 심하니 어느 정도 가공을 하자고 했고, 저는 박제의 철학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제 뜻대로 했어요. 문제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견학을 왔는데, 제 바다코끼리 전시를 보고 애들이 울어버렸다는 겁니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 등쌀에 떠밀려 민원을 넣었고, 동료들은 저를 크게 탓했습니다. 짜증이 너무 심해 그만뒀습니다.”

“흠, 그렇군요.”


대표는 대표라는 자리 특유의 결재의 눈초리를 들이밀며 다음 물음을 이었다.

“작업실을 둘러보니, 채색 도구도 있고, 목공 기계도 있더군요. 화학약품은 말할 것도 없고요. 혹시 전공이 어떻게 되십니까? 20대 때요.”


박제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짐이 덜어진다고 생각했기에, 술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가 동물의 피부를 바늘로 찌를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는 원래 미술 전공이었습니다. 조형 쪽이었죠. 한창 기말과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사실주의와 추상주의 그 중간 영역에 있는 작품을 구상 중이었습니다. 두 방향성의 장점만 취합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했습니다. 교수님은 제 중용을 어중간한 시도라고 비난하면서 제대로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결국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점수는 바닥이었고, 심술이 난 저는 그 학기 전시회에 출품된 어떤 작품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어중간한 졸작이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작품은 교수님께서 출품작이 부족하다고 급하게 만들어 추가한 것이었답니다. 관계는 회복할 수 없었고, 그게 힘들어 자퇴했습니다.”


대표는 아주 조금 입꼬리를 올리며 팔짱을 풀고 작업이 한창인 테이블로 다가갔다. 박제사는 입이 풀렸는지 술술 이야기했다.

“진절머리가 난 저는 정답이 있는 분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해 화학 쪽으로 다시 대학교에 들어갔죠. 저번에는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너무 몰라서 문제였습니다. 예술 분야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던 제 버릇으로는 이공계열의 딱딱한 공부를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성적은 바닥을 쳤습니다. 거기다, 힘들어하던 와중에 동기들의 뒷담을 들어버렸어요. 수업은 열심히 듣는 것 같은데 늙고 멍청해서 성적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당시 저는 벅찬 수업 진도를 따라가느라 인간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어요. 그 놈들 말에 제대로 반박할 힘도, 같이 싸워줄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퇴하게 됩니다.”

“저런...”

박제사는 과거의 감정을 상기하며 언성이 높아졌고. 대표는 경건한 자세가 되어서는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박제 일은 제가 쌓아온 능력의 총괄 같은 것이었습니다. 피부 복원은 미대생 출신의 색감으로 해결했고, 방부 처리야 전공 수업에 비하면 너무 쉬웠죠. 제가 조교수는 해도 될 정도였어요. 좌대는… 아 좌대가 뭐냐면, 박제물을 받치는 나무조각 같은 겁니다. 어떤 동물이냐에 따라 필요하면 직접 만드는 게 좋죠. 근데 제가 아까 뭐라 그랬죠? 조형 쪽이었다고 했잖습니까, 이거는 제가 교수를 해도 됩니다. "


대표는 이제 거의 다 이해했다는 듯이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박제사는 반사적으로 경계하다가, 자신이 어느새 작업을 마쳤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박제사는 남은 실을 자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을 몇 장 찍고 의뢰인에게 전송했다. 자신감이 충만해진 그는 대표에게 오른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한 번 만져 보시죠!”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양손을 갖다 대 닥스훈트의 등을 어루만졌다. 보들보들한 털과 특유의 귀여운 곡선은 만지는 이의 감정을 복받치는 힘이 있었다. 온도만 제외하면 온순한 닥스훈트와 다른 점이 없었다.

“지금, 굉장히 중요한 감각입니다! 박제 제작의 이유라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박제물을 보기만 해서는 그게 헌팅 트로피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보자마자 주인이랑 멀어지고 싶은 사슴 머리는 머리와 뿔만 남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해골만 남긴 생명 모독입니다. 제가 박물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박제물을 만지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살아있는 호랑이를 만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들은 관람객이지, 조련사도, 먹이도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에겐 박제된 동물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참여자들은 상당히 만족했습니다. 노루의 뿔을 만지면서, 사자의 갈기를 손으로 훑으면서, 돌고래의 매끈한 피부를 플라스틱과 비교하면서, 감각이 끊긴 그들이 지구와 교감했습니다! 정말 멋진 일이었습니다!”


박제사는 대표의 능청스러운 맞장구를 바랐다. 하지만 대표는 마지막 얘기에서 난색을 표했다. 언제나 기승을 부리던 박제사의 불안이 별로 늦지도 않은 안부 인사를 보냈다. 박제사는 지금 대표가 슬픔을 느낀 것 같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반대인 주제에 말이다. 대표는 다시 한번 질문했다.

“작업실에 박제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반려동물을 전문으로 하신다 하셨으니 작업물은 전부 고객들에게 보내서 그런 건가요? 공간만 봤을 때는 여기가 박제사의 작업실인지, 교수에게 상처받은 미대생의 작업실인지 잘 구분이 안 가네요.”

박제사는 애써 느낀 불안을 불식하고 이번에도 열렬히 대답했다. 그의 오른손은 평온했다.

“네, 사실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 있어요!”

박제사는 오늘 대표를 처음 보고 느낀 감정과 완전히 공명해서는 다른 방으로 향했다. 박제사는 안쪽 서랍에서 고이 간직해 둔 작품 하나를 꺼내 대표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대표는 이 누더기 같은 동물이 개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떤 종인 지는 알 길이 없었다. 가죽은 군데군데 찢어졌고, 발색은 물감으로는 복구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눈주름은 크게 벌어져 모형 눈이 분수에도 안 맞는 넓은 방에 누워 있었고, 털도 나무 윗부분만 자르는 괴짜 벌목꾼에 당한 작은 숲처럼 들쭉날쭉했다. 특히 얼굴 가죽이 많이 훼손됐다. 외형에 비례하는지 촉감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이 아이는 제가 예전에 오래 기르던 파삐용입니다.”

대표는 정체를 들어도 잘 와닿지 않았다. 파삐용의 상징인 나비모양 얼굴. 그 나비는 초등학생들에게 고문받다 죽기 직전인 잠자리처럼 갈라졌고, 결국 분해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제가 박제사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에 막 죽은 아이입니다. 노견이었던지라, 알바를 끝내고 밤에 와보니 힘없이 쓰러져 있더군요. 확인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뒀어요. 저는 이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어요. 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삶에서 유일하게 정확하게 제 옆을 지켜준 아이였거든요. 인터넷을 뒤지며 무작정 박제 과정을 따라 했습니다. 오늘 한 과정을 최악의 솜씨로 해 버린 거죠. 이성을 되찾고 박제 공부를 하며 계속 보강했지만, 그 모습이 최선이었습니다. 더 나아질 여지가 없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진실된 박제물 그 자체니까요.”


대표는 박제사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했다. 박제사는 그 소리가 담는 감정보다 소리 자체에 관심이 갔다. 낡아빠진 출입문이 이 당혹스러운 소리를 과연 차단해 줄까 하고 말이다. 박제사는 대표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대표는 가차 없이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극치로군요.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도망만 쳤어요. 가장 극적인 도망이 이 아이입니다.”

대표는 근엄한 태도로 파삐용을 다시 박제사에게 내밀었다. 박제사는 받을 수 없었다. 그의 오른손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5



요동치는 박제사의 오른손은 발작 장애의 부수 증상처럼 보였다. 대표는 한숨을 쉬며 건네던 파삐용 박제를 닥스훈트 옆에 내려놓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박제사는 뒤늦은 놀라움을 담아 소리쳤고, 부담스럽고 찰나였던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자 했다.

“슬슬 일 얘기를 하죠. 너무 선생님만 말씀을 하셨으니 제 이야기도 좀 하고요.”

대표는 작업용 의자에 앉았다. 덕분에 박제사는 서 있어야 했다.


“제가 완구 회사 대표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과거형에 가깝습니다. 회사 경영 상황이 너무 안 좋거든요. 가족들이랑도 사이가 안 좋아요. 그래서 제 의뢰는 이겁니다. 저를 박제해 주세요.”

“예?”

박제사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스리기 전에 갑작스러운 정보에 대처해야 했고, 이제 팔뚝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는 살면서 한 번도 도망쳐 본 적이 없습니다. 제품에 대한 고민도, 경쟁사와의 갈등도, 사측과 노동자들 사이의 다툼도 말이죠. 그래도 이제 지쳤어요. 저는 살면서 처음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믿고 있지는 않았지만 찾았으니 그건 결국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미친 사람이 인간을 박제하겠어요? 하지만 당신같이 한평생 도망만 다닌 사람이라면 제 사소한 일탈은 받아줄 겁니다. 한 번만 더 도망치면 되니까요. 당신은 제게 뭐라 할 자격이 없어요! 제 인생에서 딱 한 번 도망치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저를 탓하겠습니까? 사례는 제 전재산으로 하죠. 전부 현금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대표는 아까 가져온 다른 쇼핑백을 박제사에게 들이밀었다. 박제사는 현금으로 가득 찬 이 백이 작업할 때마다 여는 아이스박스보다 더 차갑고, 생명과 멀다고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때그때 다른 길로 간 것뿐이에요!”

“그 길들이 다 도망이었으니, 그때그때 도망친 것 아닙니까?”

박제사는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고정시켜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니면, 다르게 생각해서 이번 한 번만 도망치지 않는 것으로 합시다. 이 미친놈을 처리하고 기념합시다! 이 파삐용처럼요.”

박제사의 급박한 호흡이 고요해졌다.


"작업실 안 쪽에 잘 숨겨 놓으면 뒤탈은 없을 겁니다. 원하시면 각서랑 동영상 녹취도 해드리죠."

나불대는 대표와 다르게 그의 오른팔은 멈췄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박제사는 파삐용의 시선을 의식하며 오른손으로 단도를 쥐고 위협했다.

“개소리하지 마! 뒤질 거면 니 혼자 뒤져! 죽고 싶으면 뛰어내리던가 손목을 긋든가 알아서 할 것이지! 왜 나한테 지랄이야!”


박제사는 그간의 설움을 발견한 것처럼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대표는 박제사가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자마자 박제사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칼에 자신의 복부를 갖다 댔다. 대표의 배꼽 오른쪽으로 칼이 얕게 스쳐 지나갔다. 박제사는 소스라치게 놀라 칼을 집어던졌다. 자신이 칼로 느낀 어떤 감촉보다 불쾌했다. 대표는 피나는 복부를 세게 누르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부탁입니다... 도와주세요. 이 정도 상처는 별로 크지 않아요. 잘 꿰매면 그렇게 흉하지 않을 거예요.”

대표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히려 양손으로 상처를 더 벌리기 시작했다. 대표는 지금이라도 죽으면 기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제사는 말없이 멍하게 눈을 떴다. 대표에게서 튄 피가 테이블에 방울졌지만 닥스훈트와 파삐용은 깨끗했다. 하염없이 그대로였다. 박제사는 수 없이 바라봤던 파삐용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미 껍데기에 불과한 파삐용에게 더 이상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박제사는 대표에게 다가갔다. 대표는 그런 짓을 해 놓고 막상 다가오니 무서웠는지 군데군데 새빨개진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박제사는 대표를 지나쳐 테이블로 향했고, 파삐용을 들어 무너진 대표 옆에 놓았다.

“생각해 보니 저만 뭘 받았네요. 이건 제 선물입니다. 상처가 작으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근처에 병원 있으니까 빨리 가 보세요.”

박제사는 대표를 뒤로 하고 계단을 올랐다. 충직한 흰색문은 눈치라도 빠른 지 이번에는 명쾌하고 청아하지만 딱딱한 소리를 냈다. 그렇게 주택과 골목을 연결하고는 두 남자 사이를 닫았다.



6



박제사는 건물 틈새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고객님이 요청하신 그대로입니다. 택배도 무사히 부쳤습니다. 부디 후불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장례 비용 안 내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박제사는 앵무새 의뢰인에게 문자를 보내고 연기를 뻑뻑 피워 댔다. 바로 알람이 왔다. 박제사는 조금 긴장했지만 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아이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마음에 들어요. 택배는 천천히 부쳐 주셔도 됩니다. 후불금 보내 드렸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박제사는 닥스훈트를 의뢰한 고객이 입금한 돈을 확인했다. 약속된 금액보다 5만 원 더 많았다. 박제사는 담배를 끄고 거리를 둘러보다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맞은편의 길고양이는 잘 걷다 말고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꽉 차진 않았지만 그래도 당당한 보름달은 박제사의 작업실을 포함한 고즈넉한 골목길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박제사는 만약 저 고양이를 박제한다면 어떤 자세로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다 말았다. 달빛에 질린 고양이가 입을 쫙 벌려 하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