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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Jan 06. 2024

남의 뷰파인더(6)

네 번째 이야기



    슬슬 오른손이 야유를 던졌다. 얼마 만에 완전연소인지 모르겠다. 앞이랑 뒤만 더 붙이면 괜찮은 소설이 될 것 같다. 아까 연필을 잡을 때는 선봉장의 패기를 분명히 느꼈었는데, 글을 다 쓰고 나니 부끄러움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은 대체 누구 것일까? 쓴 놈은 나니까 내 것일까? 수진 씨의 이야기니까 그녀의 것? 아니 이게 왜 수진 씨의 이야기야. 내 상상일 뿐인데. 아마 지금 당장 수진 씨랑 이야기하면 나는 크게 벙 찔 것이다. 마치 소개팅에서 한 달간 연락만 나누다 처음 얼굴을 봤을 때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이상한 불편함 속에 친근함이 비집고 들어가 있는, 잘못 채우진 않았지만 디자인이 심각한 단추처럼.


    수진 씨에게 큰 감사를 느낀다. 그녀 덕분에 거머리 같았던 내 고민들이 대충 해결됐다. 내가 동기들 이야기를 훔쳤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고, 예술은 독방에서 혼자서 하는 것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술자리와 함께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 눈치는 보고 싶은 만큼만 보면 되는 거였다. 나는 지금까지 내 능력을 웃도는 만큼 남 눈치를 본 것 같다.   


    집필한 소설에 뷰파인더라는 제목을 붙이고, 카메라와 함께 수진 씨 병실 탁자에 올려놓았다. 짐을 챙겨 병실을 나와, 병원 1층 야외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울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어떻게든 마감들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밤을 새워야겠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냥 기대된다. 담뱃불을 끌 때쯤 간호사 한 분이 찾아와 수진 씨가 깨어났다고 알려줬다.

    나는 알겠다는 말만 하고 병원을 떠났다. 수진 씨의 카메라 마지막 사진이 떠올랐다. 수진 씨는 발을 헛디디기 직전에 셔터를 누르는 데 성공했다. 갈매기가 왼쪽 날개로 바람을 찌르며 날아가는 장면이었다. 너무 가까이 찍어서 갈매기에게 공격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짧게 잡힌 언덕 위 초록 풀들과 같은 계열의 파란색이지만 구분이 확실한 바다와 하늘 그 왼편에서, 갈매기는 신경질적인 구름 같았다. 너무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수진 씨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들까? 이 부분은 절대 내 상상으로 점철하고 싶지 않다. 신경 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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