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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Jan 28. 2024

알겠다, 얘들아

다섯 번째 이야기



동그란 주제에 각진 세상을 담는다. 와중에 자기 맘대로 세상을 견인하는 수정체는 차갑다. 슬픔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밑에 수북이 쌓인다. 역시 하늘에서 내린 눈처럼 살구색을 되찾는다. 경박한 눈썹은 이를 숨기지 못하고 기지개를 켠다. 계속 놀라고, 경계하고, 확인하고 싶은 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럴 수는 없다. 때가 아니어도 때가 되면 강판을 내린다.

그런 놈들이다.



뚫렸다는 원죄를 가졌다. 어떤 죄책감도 닫게 할 수는 없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출입국 심사는 가차 없다. 형태를 가진 것도, 형태를 가지게 된 것도 허락 없이는 30개 전후의 경비를 뚫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를 툭툭 치며 안에서 가장 능글맞은 존재를 수호한다. 이리저리 건드느라 바쁜 혀는 쭉 뻗어 상대의 마음을 향한다.

그런 놈들이다.



동률의 우유부단함을 방치한다. 둘은 언제나 서로를 지목한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던 업무는 결국 사라진다. 둘은 여유롭기 때문이다. 그들 집은 소리가 울릴 만큼 넓고, 둘이서 같이 쓰니 부담도 없다. 그러나 좁은 통로 중 하나라도 지나야 이를 알 수 있다. 지나지 못한 바람들은 둘을 무시할 것이다. 동네 이웃들 중 가장 작다고 말이다.

그런 놈들이다.  



타협 없는 협업을 고수한다. 가장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둘의 사이는 좋다. 한쪽이 쉬면 다른 쪽은 더 열심이고, 한쪽이 쉬지 않으면 다른 쪽도 다시 일어선다. 물론 정도는 전혀 모른다. 바퀴처럼 구불구불 꼬인 그들 표정처럼, 어떤 일이 떨어지든 돌고 돌아 결국 끝마친다. 비결은 업무를 따박따박 구분 짓는 얇은 천막이다. 그래서 답답한 걸 싫어한다. 실리콘이나 가죽으로 둘러싸이면 가뜩이나 천막 때문에 저조했던 바람이 끊겨버린다.

그런 놈들이다.



머리칼

어떠한 안주도 좌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집쟁이들이다. 날붙이가 다가오면 되려 몸을 갖다 대고, 끼얹힌 물감은 오롯이 품에 안는다. 바람을 만나면 미련 때문인지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 별일 없다 싶으면 때에 맞춰, 각자의 방향에 맞춰 몸을 뻗는다. 그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고 만다. 뛰어내릴 용기가 부족한 것들은 하얗게 질린 표정을 바꾸지 못한다.

그런 놈들이다.



앉았다 일어나는 변덕쟁이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참을성 없는 고래처럼 자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그래도 착한 애들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숨길 순 있어도 없애지는 않는다. 앉아야 하면 괜찮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번쩍 일어나고, 일어나야 하면 꾹 참고 있다가 나중에 지친 몸을 누인다. 또, 재주가 많아서 무르익으면 가을 나뭇잎처럼 빨갛게 염색을 한다.

그런 놈들이다.   



온갖 고요를 지탱한다. 그가 평상시에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필요로 하는 것도 없다. 그런 그를 챙기는 건 발이 다섯 개나 달린 새들이다. 그 새들은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다 앉고 싶은 곳에 앉는다. 계속 앉기 위해 계속 날아다닌다. 새들은 가끔 그를 찾는다. 다리를 접어 허벅지로 안부를 묻는다. 조용함에 집중하기 위해서 혹은 조용함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이때 그는 평소보다 더 편하게 누울 수 있다. 그에게는 검은 풀을 기르는 취미가 있는데, 새들은 가끔 그 풀 위에 앉으려다 놀라고는 한다.

그런 놈들이다.   



한 남자가 거울 앞에서 이들을 재촉한다.



이들은 각양각색의 형태와 고집을 갖고 있다. 그래도 공통점이 더 많은 아이들이다. 절대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절대 거역하지 않는다. 남자는 내면을 흔들며 거울을 바라봤다. 눈은 거울 앞에 선 본인들을 응시했고, 귀는 울릴 리 없는 거울의 소리를 찾고 있었다. 머리칼은 본인들의 전진을 지속했고, 뺨은 서지도 앉아있지도 않은 힘겨운 자세를 유지했다. 입과 코는 명령대로 가만히 있었다. 턱과 손은 고요함을 계속 지켰다.


이들은 진실됐다. 남자의 감정을 한 땀 한 땀 담아 무표정을 지었다. 미세한 흔들림도 포함해서 말이다.


남자는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을 관두고 화장실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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