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이 트는 새벽, 아침 해가 채찍을 든 날이었다. 햇볕의 따스함을 반기는 건 가축들과 초원뿐이었고, 나무판자로 엮은 집들은 색깔을 되찾으며 자기 주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평평한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은 해와 유독 가까웠다. 해만 그렇게 생각했다. 땅은 비옥한 것 같다가도 추수한 포대기들은 성에 안 찼고, 외지인의 왕래는 드물어 상점 곳곳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햇무리는 마을사람들에게 다음 끼니를 상기해 줄 뿐 아름답거나,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집보다 작지도 크지도 않지만 햇볕은 잘 드는 어느 집에 사는 남자가 채찍질 몇 번에 눈이 떠졌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그를 깨우는 밝은 햇빛은 부모들의 잔소리보다 더 귀찮았고, 그만큼이나 따뜻한 것이지만 본인은 몰랐다. 눈을 뜬 남자는 기상을 재촉하는 다른 동반자의 부재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의 눈에 담긴 건 매일 아침 자신을 반겨주던 늙은 갈색 천장이 아니라 조금 더 밝지만 그래도 늙은 벽이었다. 남자는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 남자는 언제나 양팔을 허벅지에 붙이고, 머리는 베개 정확히 중앙에 누인 뒤, 시선은 천장이 모은 어두움에 내려놓고 정자세로 잤다. 그날도 모았던 어두움을 반절 정도 버린 천장을 바라보며 계획 없는 하루가 시작될 터였다.
남자는 그릇 작은 사람답게 불안을 느끼고 다시 천장 쪽을 바라보려 했다. 그러나 목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정된 시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불협화음을 느끼는 상체만 버둥거렸다. 남자는 미약한 목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시선은 침대에서 왼쪽을 향했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라 턱이 조금 내려갔다. 남자는 양발을 바닥에 붙였다 떼며 조금씩 움직이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의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남자는 다행히 시선 앞에 있었던 문을 열 수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등지고 서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방향상 볼 수 없는 아들방 문을 말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는 마차꾼처럼 뒤로 두들겨 아들을 불렀던 것이다. 둘은 밖으로 나갔다.
2
밖으로 나온 둘은 몸을 고개 쪽으로 맞추며 이웃들을 살펴봤다. 비슷한 상황을 느낀 사람이 주변에 6명 조금 넘게 모였다. 모자는 위치와 방향상 모두를 살펴보기는 힘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양치기는 양들을 깨워 초원을 돌다가 갑자기 목이 꺾였다고 했다. 왼쪽 아래로 꺾인 목은 이탈하는 양들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충성심이 부족했던 건지, 간직하고 있던 꿈의 아름다움을 알았는지, 기회를 틈타 출타한 양 몇 마리를 쫓지 못한 양치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따졌다. 옆에 있던 두 젊은 남녀도 아쉬워하며 똑같이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남자는 농부의 아들, 여자는 구두장이의 딸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농부의 아들답게 눈동자에서 지는 저녁노을에 물드는 익은 벼들을, 콧대에서 피땀으로 간 밭을 닮았다. 여자는 구두장이가 광을 내주는 값비싼 구두를 신는 귀족의 치맛자락을 떠올리게 해주는 머릿결과 그에 걸맞은 이목구비를 갖췄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여자에게 구애를 했고, 여자도 자연스럽게 남자를 거절했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굽힐 수 없었고, 매일 아침 일에 나가기 전 한쪽 무릎을 꿇고 여자가 있는 방 쪽을 바라봤다. 여자는 매일 아침 일어나 남자를 발견하고는 커튼을 닫는 게 일상이었다. 자기 전에 방 커튼을 열어놓는 게 여자의 일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늘 여자는 목이 오른쪽으로 꺾여 창문을 확인할 수 없었고, 어려운 발걸음으로 밖에 나와보니 언제나처럼 무릎을 꿇은 남자가 생뚱맞게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와중에도 사람은 불어났다. 몇 달 만에 대어와 싸우던 중 목이 꺾여 놓친 낚시꾼, 직업이 없는 남자처럼 고개를 돌리려다 침대에서 떨어진 소년, 스튜를 끓이다 목이 꺾여 일주일 치 고기를 다 엎어버린 뿔난 노파까지. 그들은 각자의 억울함과 황당함을 나눴고, 마을에서 가장 명석하다고 소문난 음악가를 찾아가기로 했다. 음악가는 제일 높은 언덕에 있는 술집에서 먹고살았다.
3
낡은 기타의 선율과 소년 같지만 음흉한 노랫가락이 가슴에 턱이 붙을 정도로 아래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꾸짖었다. 어제 술을 진탕 마시다 방금 막 잠에 든 음악가는 자신을 깨운 좌중들을 징그러운 귀뚜라미 같다고 욕했다. 그러다 마을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자신의 시선에도 같은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한 음악가는 갑자기 기타를 잡더니 공연비를 내라고 재촉했다. 음악가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막상 무언가를 좋아해도 그 무언가를 무시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귀뚜라미의 노랫소리를 음미하면서 귀뚜라미를 밟아 죽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고, 돈과 술은 독이라고 입에 달고 살면서 빈 바구니와 술잔을 내밀며 적선을 강요했다. 오늘도 아직 풀리지도 않은 목을 자신도 두려워하면서 겁쟁이들에게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며 쩌렁쩌렁 소리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래쪽 밖에 볼 수 없는 음악가는 왼손을 보지 못했지만 감각에 의존해 자신의 조롱을 타협 가능한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음악가는 마을사람들, 정확히는 마을사람들의 발을 보며 해답을 제시했다. 음악가는 마을사람들의 시선 반대쪽에서 부득불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낭랑한 비아냥을 뒤통수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음악가는 결국 우리 시선이 한 곳을 향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 방향을 쭉 따라가면 분명 그곳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가는 마을사람들 어깨를 양손으로 치우며 앞장서기 시작했고, 공연비를 낸 몇 명이 먼저 가려는 마을사람들을 밀치며 그 뒤를 따랐다. 걸으면 걸을수록 그들은 하나가 되어 나아갔다. 그러다 귀족들의 저택을 지나갔는데, 거기서 하인들이 조심조심 울타리를 넘어와 무리에 합류했다. 하인들은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귀족들 대신 온갖 잡일을 평소보다 심한 강도와 모멸감으로 수행 중이었는데, 귀족들이 이동하는 사람들 무리를 보고는 따라나가 무슨 일인지 알아오라고 시켰다고 했다. 음악가는 그 하인들을 엄격하게 제일 뒷자리에 세우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4
그들은 계속해서 걸었다. 앞쪽에 강물을 만났을 때는 오른쪽에 있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서로의 몸을 붙잡아줬다. 누군가 볼일을 보고 싶을 때는 맨 뒤로 이동했고, 따라오던 하인들의 한심하다는 눈빛을 애써 무시해야 했다. 급하게 방향을 틀다가 넘어지는 이가 많았고, 넘어진 이들을 보지 못한 뒷사람들도 또 넘어졌다. 그들의 옷은 다양한 얼룩으로 더러워졌고, 잘못 부딪혀 음악가의 기타가 깨졌다. 화가 난 음악가에게 부서진 기타로 맞은 농부의 아들은 옷에 적갈색 얼룩을 추가했다. 그렇게 마을 입구 쪽에 다다랐고, 마을을 둘러싸는 나무 울타리와 예전부터 방치하고 있던 대문 사이에는 적당한 크기의 바구니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보며 시선의 목적지가 저 바구니임을 확인했다.
시각에 갇혀 익숙한 길을 더듬는 맹인처럼 터벅터벅 느리게 걸어온 그들을 반기는 건 어느 소리였다. 맑지만 위태롭고, 미약하지만 숭고한 그 소리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음악가는 시선을 내려 아기를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은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악가는 바로 옆에 있던 마땅한 직업이 없는 남자에게 아기를 건넸다. 남자는 아기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바라보며 왼쪽 초원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동일한 곳을 향했다. 그렇게 똑같은 한 줌 미소가 그들에게 걸리기 직전이었다. 뒤에서 바라보던 하인 한 명이 바구니 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음악가는 잘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뒤로 빠르게 걸어 바구니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소리쳤다.
"금화다!"
바구니 안쪽에는 노르스름하지만 냉철한 빛을 내는 금화가 가득했다. 마을사람들의 고개가 동시에 꺾였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구니로 돌진했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남자는 어머니와 합심해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농부의 아들과 구두장이의 딸도 서로의 몸을 바싹 붙였고, 설렘 따위 없었다. 노파는 소고기의 감칠맛을 떠올렸다. 낚시꾼은 새로운 낚싯대 이전에 고급 청어 요리의 과분한 냄새를 떠올렸다. 양치기는 양들이 좀 전에 쟁취한 자유를 저울질했다. 잠을 충분히 못 잔 소년은 바구니 주변에 떨어진 몇 닢의 금화를 줍기 시작했다. 하인들은 기쁨의 눈물이라도 흘리는 듯 입을 쩍 벌리고는 눈을 부라렸고, 음악가는 걸리적거리는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기는 순리대로 위를 보며 하늘을 마주하다, 하늘에서 봤을 때 오른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그쪽에는 찢어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바구니 조각들만 나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