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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Jun 06. 2024

안부

잘 지내시는지.     


소중한 것들이 생기고 나서는 부쩍 건강 안부를 많이 묻고 있다. 혹시 불행하더라도 아프지는 말기를 바란다. 유난히 불공평하게 찾아오는 아픔이라 아픈 사람에게는 미움조차 편히 줄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고 싶다. 다른 불행이 와도 맞서 싸워볼 테니 싸워볼 힘만은 빼앗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모두 그 힘만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며칠 전에는 크게 아팠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목이 부어올라 감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새벽에 앓을 정도로 열이 올랐다. 몸은 추웠고 온 몸의 근육이 아파서 뒤척이기도 힘들었다. 공휴일이라 열려있는 약국에서 해열제와 염증 치료제를 사왔다. 처방전 없이 구입한 약들이라 효과가 적었지만 일시적으로 열은 내렸다. 열이 내리면 그래도 살만했다.


다음날 일찍 동네 병원으로 갔다. 링거를 맞고 처방된 약을 받아왔다. 하루 종일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약을 먹기 위해서 억지로 죽을 먹고 종일 쉬었지만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삼일 분의 약을 받았는데 하루치만 먹고는 다음 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약을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고 새벽 내내 잠을 못 잔다고 했더니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소변검사, 피검사, 흉부 x선 검사, 독감과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나오는 동안 링거를 맞았지만 오히려 열이 더 올랐다. 피검사 결과 염증수치와 간수치가 높다며 상급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다음날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예약하고 갔지만 응급환자가 있어서 대기가 길어졌다. 열은 점점 더 올랐고 어지러워서 앉아있기도 힘이 들었다. 거의 쓰러지듯이 바닥에 앉아서 대기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니 간호사들이 와서 상태를 확인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것보다 응급실로 가서 진료를 먼저보라고 해서 응급실로 갔다. 동네 병원에서 했던 검사를 모두 다시 받고 위생 커버가 씌워진 침대에 겨우 누웠다. 내 팔에는 이미 링거 줄이 꽂혀 있었다. 응급실에서는 열이 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추정하기로는 목에 생긴 염증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했지만 간수치도 높은 상황이라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3인실이었다. 침대 하나는 비어있었고 창가 자리 침대는 암투병 중인 할아버지가 계셨다. 간호사는 4시간 간격으로 진통제와 항생제, 해열제를 링거에 주입했다. 처음에는 약을 넣어도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몸 안에 약들이 쌓여서 그런지 점차 상태가 좋아졌다. 그때는 주말이라 담당 의사를 만나지 못했고 월요일에 의사를 만났을 때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뒤였다. 얼마나 아팠는지를 몸소 보여주지 못해 억울했지만 돌이키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주말이었다. 맛있었던 병원 밥도 질릴 때쯤 퇴원했다. 공기가 좋았다. 사실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냥 병원을 나오니 좋았다.     


아프고 나니 술도 쉽게 끊을 수 있었다. 어차피 약을 먹어야 해서 술은 못 먹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간수치가 좋지 않으니 술은 먹으면 안 되지만 어쨌든. 마음이 허기질 때에는 술만 한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술을 먹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신통한 일이다. 내 보험은 보장이 잘 되어 있는지 필요한 보험은 없는지 살피게 되었고 빠른 배송으로 영양제도 주문했다. 이번을 계기로 이리저리 검사를 받아서 본의 아니게 건강검진을 한 것 같아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은 거의 회복되었다. 회사 업무도 복귀했고 남아 있는 약도 꾸준히 먹고 있다. 아팠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매일 저녁 잠들기 직전에 몬난이가 침대로 온다. 침대 위에서 모든 가족이 침대 위로 모일 때까지 구성원을 살핀다. 그 와중에도 잠이 와서 꾸벅꾸벅 눈을 감는다. 그 시간이 좋아서 나는 몬난이 옆에서, 몬난이가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 떨어진 채로 몬난이를 보고 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 졸려서 몬난이 눈이 감길 때에는 흰자가 살짝 보인다. 그리고는 눈을 꼬옥 감는다. 너무 밝아서 눈살을 찌푸리는 것처럼 꼬옥. 숨을 쉴 때마다 겨우 들썩이는 배를 보고 살아있다는 안심이 들 정도로 한순간에 잠에 빠진다. 사람으로는 아흔 정도 된 나이이니 이 정도도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몬난이를 보면 곧 슬퍼진다. 몬난이가 죽으면 이런 모습일까 하고 눈이 감긴 몬난이의 얼굴을 본다. 그때 그 순간 내가 몬난이를 안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꼬옥.     


모두 건강하시길 바란다.

가볍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 꾹꾹 눌러 담아 속이 가득 찬 안부다.

깊이 사랑하고 깊이 미워할 수 있도록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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