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 빌런과 존대의 품격

이른 나이에 승진한 다람의 주도권 잡기

by 머니페니

김 다람은 오늘도 메신저 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회사 지옥'에서 염라대왕과 스피커를 거쳐 레벨업을 거듭했지만, 이번 빌런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바로 '반말 빌런' 이정원 과장이었다.

오프라인에서는 그래도 '다람 씨~' 하면서 어색하게 존대를 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사내 메신저에서는 달랐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반말을 찍찍 내뱉었다.


"다람, 이거 언제까지 됨?"

"다람, 자료 '00'으로 보내."


같은 식이었다. 비록, 다람이 연차도 낮고 나이도 어리니 그럴 수 있다고 애써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정원 과장이 다람에게는 그저 '거리 두기' 대상이었다는 점이었다. 친한 사람이 반말하는 건 괜찮지만, 불편한 사람이 반말하는 건 마치 밥맛 떨어지는 파리를 본 기분이었다. '00'이라는 단답형 회신도 친한 동료 사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지만, 이정원 과장이 보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했다.


다람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반말 찍찍 내뱉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이겠지. 어쩌면 남들이 자기를 추대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과잉 추대하려는 '인정욕구' 때문일지도 몰라.'


과거 염라대왕이 그랬듯, 이정원 과장도


"제가 어디 가면 본부장정도는 해야죠… 이 연차에 겨우 차장 달고 일하는 게 이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하하핫 제 능력 아시죠?"


같은 소리를 공공연히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자고로 칭찬, 존경, 예우는 타의에 의해 이행되어야 멋이 있는 법인데, 스스로 하면 볼품없었다.


김다람이 '부장이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녀가 부장이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했을까? 다람은 잠시 눈을 감고 미래의 '김다람 부장'을 상상해 보았다.


김다람 부장의 '존대 유도' 대작전

때는 바야흐로 2030년, 김다람은 어느덧 팀의 리더인 부장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지옥 같은 회사에서 살아남았고, 이제는 오히려 지옥을 길들이는 지혜를 갖춘 '현자의 부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팀에는 여전히 그 빌런, 이정원 과장(물론 그녀는 아직 과장이었다)이 존재했다. 그녀는 여전히 다람에게 메신저로 반말을 했다.


"다람, 이거 빨리 넘겨", "다람, 그거 내가 알아서 할게."


어느 날, 이정원 과장이 다람의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다람, 오늘 팀 회의 늦는 이유 나한테만 얘기해. 딴 애들한테는 내가 알아서 잘라줄게."


미래의 김다람 부장은 차분하게 답장했다.


김다람 부장: "과장님, 오늘 회의 건은 제가 이미 팀장님께 사전에 말씀드렸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원 과장은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다람의 존대에 잠시 멈칫한 듯 보였다.

다음날, 이정원 과장이 급하게 자료를 요청했다.


"다람, 그 어제 얘기했던 자료 지금 바로 줘."


김다람 부장은 곧바로 답장했다.


김다람 부장: "과장님, 요청하신 자료는 10분 내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급하신 업무이신가요?"


'급하신 업무이신가요?'라는 한 문장이 이정원 과장의 손가락을 잠시 얼어붙게 만들었다.

다람은 알고 있었다. 상대방의 '반말'에 똑같이 '반말'로 대응하거나, 무작정 '존대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감정 싸움으로 번지거나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대신, 그녀는 자신은 일관되게 존대를 사용

하고, 동시에 상대방에게 존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존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며칠 뒤, 다람은 이정원 과장과 다른 팀원들이 함께 있는 메신저 그룹 채팅방에 공지를 올렸다.


김다람 부장: "팀원 여러분, 다음 주부터 진행될 신규 프로젝트 관련하여 몇 가지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각자 맡은 업무에 대한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문의 주십시오."


이정원 과장이 곧바로 답장했다.


"다람, 나 프로젝트 맡은 부분 질문 있어."


김다람 부장은 모두가 보는 채팅방에서 곧바로 답했다.


김다람 부장: "네, 이정원 과장님. 어떤 부분에 대해 궁금하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채팅방의 다른 팀원들도 다람과 이정원 과장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다람 부장은 '이정원 과장님'이라고 명확하게 호칭하며 공개적으로 존대를 사용했고, 이는 이정원 과장에게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녀의 '반말'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져 보였고, 예의 없어 보였다.


이정원 과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이렇게 답했다.


이정원 과장: "김다람 부장님, 제가 맡은 A 파트 관련해서 B 자료 해석이 어려운데, 혹시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람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존대 유도' 대작전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자신의 '존대의 품격'을 유지하며, 상대방에게도 그 품격에 맞는 태도를 유도했다.


물론 이정원 과장이 완벽하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람은 알고 있었다. 꾸준히 존대를 사용하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명확한 선을 지키며 응대한다면, 상대방도 점차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고, 상대방에게도 존중받을 만한 태도를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다람은 메신저 창을 닫고 고개를 들었다. 미래의 그녀가 그렇게 현명하게 대처했듯이, 지금의 김다람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회사 지옥은 여전히 건재했지만, 김다람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품격을 지키며 빛을 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도 슬기로운 회사생활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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