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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페니 Feb 26. 2024

청첩장, 불쾌한 모임의 초대

청첩장, 정보 알림과 체면 사이의  갈림길 위에서 길을 묻다. 

결혼 식 하루 전날 청첩장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가?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 인지는 모르겠는데, 축의금에 관한 사람들의 정의를 포털 사이트에 보면  “청첩장은 안 줘도 욕먹고, 줘도 욕먹어”라고 한다. 오늘은 사촌 동생의 청첩장 주고 욕먹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건은 지난 주말 일어났는데, 친동생에게 스크린 샷이 하나 날라 왔다. 사촌동생이 청첩장을 보내왔다며, 아니 뭐 결혼식 하루 전에 보내는 경우가 어딨냐며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잠시 뒤, 놀랍게도, 그 문제의 사촌 동생이 결혼한다고 톡을 보내왔다. 심지어, 내 동생에게 보낸 것과 동일하게 복. 붙으로.. 

그래서 나도 내 동생이 보인 반응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 어 그래 축하한다”라고 해줬다. 

어차피 그냥 하는 안부 인사, “잘 지내지?” 도 덧붙여서..    

 

  문제의 사촌 동생과는 예전에는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사는 게 바빠 그냥 잊어버리고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먼 친척도 아니고 가까운 친척인데 하루 전 청첩장은 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뭔가 어색해 보였다. 보내기 싫으면 안 보내면 그만인데, 굳이 이걸 왜 하루 전에 보내나, 

 

 청첩장  이게 참 묘한 게, 보낸 사람은 별생각 없는데, 받은 사람만  머리 복잡하게 만드는 희한한 재주가 있다. 특히, 이 일은 우리 엄마가 밤잠을 설치며 어찌할까 생각을 하시길래, 그래서 내가 정리해 주었다.


 “엄마, 결혼 식 하루 전에 청첩장을 보낸 거는, 그냥 축의금 구걸 하는 거야. 다 돌리고 보니까 축의금이 부족해서 여기서 돈 십만 원가량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그냥 잊어버려 여기에 축의 할 돈 있으면 차라리 기부를 해”


 이 문제의 발단은 아마도 가족 간의 분쟁일 것이다.  사촌동생은 사실 우리 엄마와 철천지 원수 지간이 된 삼촌의 딸이다. 뭐 가족 다 무시하고 심지어 조카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부모님에게 쌍욕을 하면서 헐뜯고 싸움하는 걸 몇 년 전에 본 뒤로는 연을 끊고 지낸 터라, 더 이상의 왕래 따윈 나도 생략하고 산지 오래되었다. 그걸 모르는 바도 아닌데, 그 와중에 청첩장을 보내오니 솔직히 기가 막혔다. (심지어 이 집에 둘째 딸이 먼저 시집을 갔는데 그 친구도, 이 친구랑 똑같은 절차를 밟았다. 그렇지만 앞선 그 친구는 아예 청첩장을 안 보내서 그나마도 욕은 안 먹었다. (이게 그쪽 집안 내력인가 보다) 


 그런데 난 사실 그 사촌동생에게 적잖이 실망을 했다. 적어도 나이 33이 넘어서 대기업 사회생활 7년 이상의 짬에, 정말 모르고 이렇게 하루 전에 청첩장을 보냈을까? 굳이  앞으로 얼굴도 안 볼? 사이인 사촌인 나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우리네 부모님들이야 그렇다 쳐도, 나하고는 개인적으로도 친하게 지내왔는데 말이다.

  최근 부모님 일로 소원해졌다면, 차라리 신혼여행 다녀와서, 안부 전하며 사실 얼마 전 결혼 했다고 상황이 이러해서 알리기가 좀 어려웠다고, 그러면서 안부를 전했더라면 나는 더 반가운 마음이었을 거 같다. (진짜로 늦었지만 소정의 축의금을 개별로도 보내줬겠지) 

 아마 이것은 다른 누구에게도 다 동일한 마음이 들 거라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어색하게 결혼 임박해서 알리기보단, 조용히 다 치르고 안부를 전하는 게 더 정중하고 상대를 생각했었다고 말이다. 


 결혼을 알리는 방법 중엔, 청첩장이 아니어도, 편지가 있다. 결혼 식이 끝난 후 편지를 써서 청첩장을 못 드린 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금번, 가까운 지인들만 모여서 가족 간 단출하게 식을 올린 바, 상황이 어려워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했음을 죄송하게 생각하며.... 어쩌고 저쩌고” 그럼 되려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어이쿠 이거 늦었지만 뭐라도 해야 하나” 이런 송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청첩장을 보내기에는 부담되고, 어색하지만, 결혼 한 뒤에 소식을 전하는 건 부담이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편지 받고 기분 나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대책 없이 불쾌한 초대를 받게 되어 무방비한 상태로 내 감정이 소비되다 보니, 주말이 너무 피로하게 느껴졌다. 이 처럼 청첩장은, 정말 나에게 축하를 해줄 사람들에게만 성심 성의껏 보내면 될 일이고, 가게 오픈 광고 하듯이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보낼 건 아닌 거 같다.      


 아 혹시, 내가 축의금 구걸이라 한 게 기분 나쁘나? 그럼 모바일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빼던가..

내가 본 청첩장에는 계좌번호가 무려 3개나 있었다. 그러니 축의금 구걸이라 말을 하지...  (이건 비단 나뿐이 아니라 많은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 이더라)  


계좌번호 안 알려 줘도, 내가 진짜 축의를 하고 싶다면, 카*뱅으로 보낼 거다. 계좌번호 몰라도 송금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가끔 망각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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