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은 분위기와 상황이었다.

사랑

by 구름사이달빛

그녀와의 관계가 마지막으로 끝났다. 타지에서 만난 짧은 인연이었지만 감정적으로 굉장히 상승폭이 큰 기간이었다. 고통스럽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회피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았고 시기가 안 맞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를 달랬다. 마지막 인사는

“건강하게 잘 지내. 만나서 좋았어.”

라는 짧은 글이었다. 그녀에게 내가 불확실성에서 기다리는 것은 힘들다고도 홀가분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전혀 읽지 않고 그 후 5일 뒤에 조용히 떠났다.


물론 그때의 감정은 굉장히 아팠고 뭔가를 잃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조금 낫다.) 그걸 알았을 때가 일을 하고 있을 때인데 이 일은 무조건 끝내야 해서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늦게까지 해서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일처리기도 했다.


오늘은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보내는 날로써, 굉장히 아프기도 하고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아 슬픔을 느껴야 하는 날이다. 처음에 떠난다는 것을 알았을 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일터에서 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미 수긍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단계라서 그전에 흘린 눈물들이 받쳐주고 있는 기분이다.


정리하고 있다고 해서 이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오늘 절정에 달하면서 이제는 빠져나올 것이다.


이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오늘은 집까지 지하철을 타지 않고 산책을 절반 거리 정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강을 따라 걷다 보니 강물 위에 떠 있는 바가 보였다. 당연히 닫는 시간(이때가 11시 정도였다.)인 줄 알았는데 영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강물 위에 떠있는 바에 들어왔다. 직원이 말을 건다.

“몇 분 이신가요?”

“한 명입니다.”

직원이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자리를 안내해 줬다. 바는 굉장히 분위기가 좋았다. 한강이 바로 옆에 통창유리를 통해 흐르고 있었고 야경 불빛이 한눈에 보이고 있었다. 연말이라 캐럴도 잔잔하게 나오고 있었다. 자리도 꽤 넓은데 두 테이블만 손님이 있었고 한적했다. 나는 레몬을 탄 위스키 하이볼을 주문했고, 비스킷과 음료가 나왔다.


솔직히 그녀 생각이 나고 슬프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그녀에게 받은 것들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나는 어쩌면 나에게 동력을 줄만한 어떤 상황을 찾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녀는 나에게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자극을 줬고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동기를 주었다. 이러면 나는 받는 사람만 되는 것일까? 그녀는 나에게 무엇을 받아갔을까? 나는 그녀의 생각을 추리할 수 있지만 알지 못한다.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재밌는 점 같다.


그녀 덕분에 철학을 다시 보게 됐고, 더 열심히 할 동기를 받았고, 새로운 언어의 흥미를 느꼈다.


사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본 지 2주 정도가 되었지만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녀의 sns에 사진이 없기도 하고 사진을 같이 안 찍었었다. 하지만 원래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나?


이 부분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 보니 나는 사실 타지에서 감정이 메마른 상태에서 만난, 전혀 예상치 못한 데이트로부터 사랑을 느낀 것 같다. 물론 그녀가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만으로는 설명이 안되었다. 하지만 내가 성장과 사랑을 원했고, 그 낭만적인 상황을 사랑했었다면 이해가 된다.


나는 ‘이 상황과 분위기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그 나라에 이 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9개월 뒤에 다시 갈 것이다. 그때쯤이면 감정적으로도 다 정리가 됐을 거고 그녀가 떠났다고 해서 이 언어를 공부할 동기를 안 잃어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그 나라는 그녀에 대한 추억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도시로 가볼 것이다.


한강에 있는 바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조금 편안해진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어쩌면 상대를 성장시켜 주고 그 옆을 지켜주는 그런 고마운 감정이 아닐까? 나는 사랑이 집착으로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옆에서 응원해 주고 너무 많은 것을 줘서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편안한 그런 사랑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