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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슬로 Mar 04. 2024

행복 수치 (연작 소설 1화)

새벽의 첫 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며, 준영은 조용히 눈을 떴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차가운 공기가 준영의 얼굴을 스쳤고, 준영의 시선은 자연스레 책상 위에 놓인 행복 수치를 측정하는 시계로 이동했다. 이 시계는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즉 행복을 수치로 환산해 주는 기능을 가졌다. 모두가 이 수치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세상에서, 준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준영의 시계는 그날 아침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준영은 시계의 행복 수치가 어떻게 높아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높은 행복 수치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듯,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행복 수치가 곧 성공과 동일시되는 이 세상에서, 그 수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준영의 목표였다.


학교로 향하는 길에서 친구들은 역시나 행복 수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수치를 경쟁적으로 비교하며, 어떻게 하면 그 수치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제 새로 나온 스마트워치를 샀더니 행복 수치가 엄청 올랐어!"


"그것보다 ㅇㅇ옷 사봐. 그게 더 많이 올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ㅇㅇ옷은 너 스타일이라서 오른 거 아니야? 나는 하나도 안 오를 거 같은데."


준영은 대화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소비를 통해 행복 수치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준영은 최신 전자 기기를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미세하게 행복 수치가 올라갔다. 준영이 사고 싶은 기계는 당연히 가장 비싼 기계였다. 비싸서 더 좋아 보이기도 했지만 그 기계가 준영의 행복 수치를 가장 많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계는 준영이 가진 돈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싸 조금 더 저렴한 가격의 기계를 구입했고 준영은 친구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야, 나 이거 샀어! 내일 배송 오면 바로 써봐야지."


아직 배송이 되지도 않았지만 구매 직후, 준영의 시계는 순식간에 높은 수치를 보여주었다. 준영은 그 순간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준영은 기계를 산 것과 더불어 높아진 자신의 행복수치를 보여주고 싶었다. 준영은 소셜 미디어에 기계를 샀다는 내용의 핸드폰 화면과 함께 자신의 높은 행복수치를 보여주는 시계가 살짝 나오는 사진을 게시했다. 친구들이 부러워할 때 준영은 다시금 행복감을 느꼈다.


그날 밤, 준영은 자신의 방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넘기지만, 마음속으로는 물질적 소비가 자신의 행복 수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했다. 새 기기가 가져다준 기쁨은 분명했지만 그 기쁨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역시 느꼈다.


"아... 이렇게 희미해지면 행복 수치도 떨어질텐데..."


준영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행복 수치 측정기를 응시했다. 화면 속 숫자는 예상했던 대로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준영은 자신의 행복 수치를 다시 끌어올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느꼈다. 몇몇 친구들은 공부를 통해 행복 수치를 상승시킨다고 했지만, 공부를 하는 것은 준영에게 별다른 행복 수치의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준영은 다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엇이 자신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또 다시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준영의 일상은 행복 수치를 높이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학교 친구들을 만나기 전 행복 수치를 올려놓아햐 했기에 아침이면, 항상 최신 기술이 담긴 기계나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검색했다. 새로운 물건을 발견할 때마다 심장이 뛰었고, 구매하지 않더라도 행복 수치는 미세하게 올라갔다.


준영은 이런 행동이 행복을 대변하는 행복 수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고 화면에 반영된 숫자가 높아질 때마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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