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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슬로 Mar 18. 2024

숫자 (연작 소설 3화)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준영은 학교에 도착해 서연과 만났다. 준영은 어김없이 주말에 본 영화 이야기를 했고 서연은 준영이 어제 본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했다.


"영화 어땠어? 나도 보고 싶었는데, 못 봤거든." 


서연이 물었다.


"진짜 좋았어. 재밌었고,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어. 내 행복 수치 한 번 봐봐. 엄청 올라갔지?" 


준영은 한껏 올라간 행복 수치를 자랑하며 말했다. 서연은 준영의 말에 입꼬리가 올라가며, 말했다. 


"그래? 시계에 있는 숫자보다 그렇게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 시계만 보다 보니 행복함을 측정하기 위해서 시계가 있는 건지 행복 수치를 높이기 위해 시계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준영도 서연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계속된 소비와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면서 자기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지 높은 행복 수치를 추구하는 것인지 준영도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시계에 표시되는 행복 수치가 틀릴 일은 없었다. 


"그래? 행복하면 행복 수치가 올라가니까 그게 그거 아니야? 지금 행복 수치 몇이야?"


준영은 내심 서연의 행복 수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서연의 행복 수치가 더 낮은 것을 확인하고 본인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이것 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 내가 지금 너보다 더 행복하잖아. 저번주에 기계도 사고 영화도 보니까 행복 수치가 높은 거야. 그러지 말고 너도 그 영화 봐봐. 행복 수치 바로 높아질걸?"


서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너가 이야기한 건 다 일시적인 거 아니야? 나는 책 읽고 조용히 대화하면 행복해져. 마음이 편해지잖아."


"영화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나도 책 읽는 거 좋아하고 대화하는 거 좋아해. 근데 그것보다 행복 수치가 높아지는 일이 너무나 많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준영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갔다. 준영에게 시계의 행복 수치는 그 자체로 어떤 형태의 확인이자, 성취감이었다. 준영은 학교 복도를 걸으며 서연의 말을 곱씹었다. '책 읽고 대화하는 게 좋아. 마음이 편해지잖아.' 서연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연이 자신을 무시했던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지만 준영의 발길은 도서관을 향하고 있었다. 책장을 둘러보며 읽고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꺼냈다.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 준영은 책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책에 빠져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준영은 잠시나마 행복 수치의 숫자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시계를 다시 보았을 때, 행복 수치가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이 사실이 준영에게 묘한 실망감을 주었다. 준영은 자신이 행복 수치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서연의 말대로 책을 읽어보았지만 행복수치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준영은 서연만큼 자신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행복 수치를 높이고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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