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과 경제 주권 상실

외환위기의 추억 2/5

by 화가 경영학자


20210626_095059[1].jpg Gangnam Style Series no.3 Afternoon Cafe

2022/6/8


1997년 6월만 하더라도 누구도 한국이 몇 달 만에 외환위기를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994년 자본자유화 조치 이후 지속적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입되어 원화가치가 고평가 되고 그로 인하여 무역적자가 지속되기는 했지만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7월 들어서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국제투자자들이 이들 국가 통화가치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돈을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급격한 자금유출이 일어나면서 이들 나라가 먼저 외환위기,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국제투자 자금의 동요는 한국과 같은 아시아의 다른 신흥국으로 번져가게 되었습니다. 불안이 전염된 것이죠. 국제금융에서 전염효과(contagion effects)라는 말이 처음 생겨 났습니다. 일단 불안감이 생겨나자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안감 자체가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9월 이후 투자 자금유출이 본격화되고 환율은 연일 상한가를 치고 나갔습니다. 당시 한국의 환율제도에는 일일제한폭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국내금융이든 국제금융이든 시장에는 돈이 씨가 미르고 멀쩡한 기업도 부도 위기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업이 중환자실로 들어갔지만 과도한 부채를 지고 사업을 하던 기업들부터 사망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 퍼펙트 스톰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1월 들어서 한국은 빠르게 국가부도의 벼랑 끝으로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상반기 700원대의 환율이 2000을 넘어서고 일일 가격변동제한폭도 철폐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1월 22일 IMF에 구제금융(bail out)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12월 4일 IMF에서 지원결정을 내렸습니다.


서울에는 IMF의 사무소, 즉 주둔군 사령부가 개설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은 IMF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경제정책 결정이 경제회복보다는 구제금융 상환을 확실하게 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경제 주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라에서나 개인에 있어서 위기는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동전의 뒷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위기가 없는 평온한 인생이나 나라는 전설에나 존재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위기가 기회의 다른 모습이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기회로서의 의미가 가장 클 것입니다. 위기와 함께 오는 고통만 아파하다가 보면 모처럼의 기회도 놓쳐 버리겠죠.


한국 경제, 한국 사람에 있어서 1997년의 외환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무엇보다도 외환위기는 한국인들 스스로 자신의 저력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고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이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1997년의 외환위기는 국가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진은 1997년 11월 22일과 12월 4일 신문 기사입니다.

IMF구제금융.jpeg


keyword
이전 18화위기 중의 위기, 외환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