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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Jun 26. 2024

이번 휴가의 목표는.

이번에도 빈손


해외로 장기출장 갔던 남편이 휴가를 나왔습니다.

이 매거진을 처음 읽는 독자분들을 위해 잠깐 지난 일을 요약하자면, 남편은 작년 늦가을에 이라크로 장기출장을 떠났었고요. 3개월마다 한 번씩 보름 간의 휴가를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2개월 반 만에 휴가를 나오는 건데요, 딸내미의 열한 번째 생일 6월 24일에 맞추기 위해 휴가를 앞당긴 것입니다. 아이와 예전부터 약속한 게 있었는데, 생일선물로 햄스터를 사주기로 한 것이에요. 아이는 오래전부터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가족 모두가 비염이 있는 데다가(특히 막내가 심해요) 제가 암 기본치료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친정식구들이 완치판정받을 때까지는 절대 안 된다고 말리고, 저도 자신이 없고 해서 햄스터로 타협을 본 거예요.


햄스터로 결정하기까지 거북이(거북이 키우면 오래 산다니 오케이), 이구아나(좀 징그럽지 않니), 뱀(악! 절대 안 돼!), 앵무새(조류공포증이 있지만 극복해 보마) 등등이 물망에 올랐었고요. 최종적으로 아이가 햄스터로 결정했어요. 사실 아이가 너무 원하니까 마지못해 수긍한 거지 남편도 저도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쥐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쥐를 집에서 키운다고?).


어쩌겠어요.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을 거라며 남편을 설득해 결국 입국하자마자 딸아이 손을 잡고 샵에 가야 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확 덮치는 냄새! 동물원 보다 뭔가 더 탁하면서 갑갑한 냄새에 절로 백스텝이…


코 앞에 있는 각종 쥐들에 정말 꺅 소리가 나올 뻔했어요. 그래도 다 생명체인 것을… 마음을 다독이며 가까이 가서 보니 ‘나름’ 귀엽더라고요(남편은 여전히 얼음 상태). 딸아이는 심사숙고 끝에 진한 갈색의 햄스터를 동생으로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사장님이 케이지에 은신처, 물통 등을 세팅하는 동안 남편은 구석에서 계속 끙끙거리고 있더군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원래 비위가 약한 사람인데 이것이 동물과도 연결이 되더라고요(겁도 많음). 조류공포증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햄스터도 가까이하기 힘든 가봐요. 끙…


케이지를 들고 집에 오기까지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계속 신음을 하더니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질 못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끙 소리가 나더군요. 이 사람은 여러 가지고 ‘끙’을 부르는 사람인데요. 다음날 빨래 좀 널어달라고 했더니 빨래걸이에서 햄스터 케이지가 5미터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못 하겠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군대는 다녀오고, 이라크까지 가서 일하는지…. 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제오늘 이틀 밖에 안 지난 휴가. 이번 휴가기간 동안 저만의 목표가 있는데, 바로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저번 휴가 때 정말 대판 싸웠거든요. 사건의 발단은 미니어처 만들기 세트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고 다 같이 동네산책을 하고 싶더라고요. 바람이나 쐬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싫대요. 뭐 하나 사준다고 꼬셔서 겨우 끌고 나와 아랫동네 문방구에 갔지요. 아이들이 이삼천 원 하는 장난감을 골라 약속대로 사주려고 하는데 남편이 사실은 사둔 게 있어서 택배로 올 거니 사지 말라는 거예요. 49,500짜리 미니어처 세트라고요.

“49,500원? 아니 뭐 그런 걸 5만 원 돈이나 줬어?”

“주말에 조카도 오고 하니까. 그걸로 놀면 좋을 거 같아서. “


아이들이 좀 크더니 이런 DIY 세트를 사줘도 한두 번 만들고 손을 안 대더라고요. 만들다 만 세트가 몇 상자를 채울 만큼 있어서 다시는 이런 거 안 사기로 했는데 또 샀다는 거예요. 돈도 아깝고 환경오염에, 비좁은 집 안에 또 쟁여야 할 물건도 늘고.


제가 한소리하고, 나오기 싫었던 둘째는 문방구에서 사겠다는 것도 갑자기 안 산다면서 짜증을 내고, 큰 애는 왜인지 덩달아 화가 났어요. 남편도 화가 났고요. 50만 원도 아니고 5만 원 쓰고 잔소리 들어야 하냐, 이런 마음이겠지요. 화목을 도모하고자 했던 저녁 산책은 냉랭한 분위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날로 사흘이나 말을 안 하더라고요. 중간중간에 제가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지만 받아주지 않았어요. 결국 출국 전날 화가 풀린 그가 손을 내밀었지만 이번에는 제가 화가 나서 잡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자 폭격이 오갔어요. 하아. 이것도 사네 못 사네 얘기만 나왔다는 말씀만 드리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좀처럼 부부싸움을 벌이지 않는 부부라서 인지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타격이 큰 것 같아요. 그가 출국하고 나서도 상한 마음이 한참을 가더라고요. 지나고 나면 뭐 그런 걸로 싸웠을까 싶기도 하지만, 주고받았던 말이 씨앗이 되어 싹을 피우기도 해요. 도자기에 금이 여러 번 가면 결국은 깨지는 것처럼 부부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해요. 어차피 같이 살 거면 혀 끝까지 나온 말도 꿀꺽 삼키기 세 번.

모쪼록 이번 휴가는 평화만이 있기를.

피스.



<매거진 지난 글>


- https://brunch.co.kr/@seul083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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