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가는 비행기 안, 태풍으로 요동치던 기체가 마치 무중력 상태로 들어간 듯 손과 엉덩이가 붕 떴을 때, 이렇게 곤두박질쳐서 죽나 보다 싶었을 때,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잠깐만요. 저 잠깐만 집 좀 정리하고 오면 안 될까요?
비행기가 여수 위를 빙빙 돈 지 한 시간 반이 넘어갔을 때(김포 출발한 지 도합 두 시간 반), 이제 꼼짝없이 죽는구나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은데 뭐 그리 공포에 떨었나 싶어도 당시에는 절절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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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한 기자는 신문 칼럼에서 "마음으로나마 애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었는데 아이 이름을 아무리 떠올려도 전혀 생각나지를 않았다"라고 했다. “무사히 착륙하고나서야 어떻게 아이 이름도 생각이 안 났는지 스스로가 어처구니 없었지만 사람이 너무 놀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것을 실감했다"라고.
그렇게 공포와 절박함으로 자식 이름마저 잊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엉뚱하게도 집안 모습이었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문득 둘러본 집안꼴, 아이들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면서 그대로 소파 위에 벗어놓은 옷가지들, 펼쳐놓은 책과 노트로 어지러운 테이블, 청소한 지 오래된 베란다... 이렇게 떠나면 남은 가족들이 정리를 해주러 올 텐데,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건 좀 창피하다.
어수선한 집이 끝이 아니다. 대체 왜 이런 걸 돈 주고 샀을까 싶을, 나만 예뻐 보이는 쓰레기들과 비슷비슷한 물건들이 유물발굴처럼 정리해도 끝없이 나올 것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으아, 안돼!
인간은 죽음에 직면할 때 생의 의지가 불타오른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생에 대한 나의 열망이 절실하게 느껴졌는데, 꼭 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어이없게도 '정리' 때문이었다. 죽음의 순간, 신에게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한 이유가 그 때문이라니!
살면서 죽음을 염두하고 주변정리를 한 적이 있었다. 암 치료가 끝나고 이대로 회복할 줄 알았는데 4기 진단을 받았을 때이다. 마침, 이사 시점과 맞물려 있었고 이 기회에 주변정리를 하자 싶었다. 6년 간 살았던 신혼집은 내가 미혼 시절부터 아껴온 빛바랜 물건들과 결혼생활하면서 주렁주렁 생겨난 물건들,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아이들 물건들로 꽉꽉 차 있었다. 넓은 평수여서 짐이 많다는 걸 살면서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한 군데 모아서야 그 양을 실감하게 되었다. 몸속에 누적되었으면 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는 짐들은 나 자신의 결핍이고 불행이었다. 나를 짓누르고 옥죄었던 우울과 비관이 물성을 가지고 드러난 거 같아 섬뜩했다. 묵은 짐들이 쌓여 있어서 집 안에 복이 안 들어오고 이런 일이 생겼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정리의 효율적인 방법은 가장 소중한 것부터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절로 쉬워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써온 일기장과 다이어리, 편지와 앨범들은 평생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물건들이었다. 버리기 전, 아쉬운 마음에 골라서 일부를 남길까 했다가 그만두었다. 그러다 보면 하나도 버릴 수 없을 것 같고, 가뜩이나 오만가지 감정으로 힘든데 옛 추억에 잠겨 감정을 더 소진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아주 조금만 남겨둘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퇴사 후 한번도 입지 않은 정장과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옷 나눔 함에 넣었다. 그 양도 꽤 되었다. 구석구석 뒤지다 보니 대체 이건 왜 가지고 있었는지 모를 잡동사니도 많았다. 고개를 저으며 쓰레기장으로 보냈다. 중학생부터 모으던 책들도 대거 처분했다. 덜어내니 비로소 공간이 생겨나고 신선한 바람이 집안을 순환시켜 주었다. 동시에 내 숨통도 트이는 것 같았다. 마치 내 몸 안의 병든 덩어리들을 내 손으로 잘라낸 듯 후련했다.
그때 이후로 2년이 흘렀다. 요새 부쩍 군살이 붙는 내 몸처럼 새집에서도 슬금슬금 군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얼마 쓰지 못할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에 사고 싶은 물건도 넘기던 시기가 있었다. 예전에 남편이 물놀이를 자주 가니, 구명조끼 빌릴 돈으로 그냥 하나씩 마련하자고 한 적이 있었다.
내 것은 주문하지 않았다. 얼마나 살지 모르는데, 일 년에 몇 번 입을 부피 큰 것을 쟁여두기 싫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요즘의 나를 보면 백 살 살 것처럼 계획을 짜고 물건을 산다. 몸이 많이 회복되니 긴장도 느슨해졌다. 하나를 사도 신중해야 하는데, 싸니까, 세일하니까, 나중에 필요할 테니까... ‘어어’ 하다 보니 팬트리며, 옷장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찌개처럼 포화 상태를 앞두고 있다.
비행기 사건 이후로 다시 한번 주변정리를 하기로 했다. 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갈 수도 있구나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예측하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정리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한 정리전문가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리는 무엇을 버릴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 고민하는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시각을 완전히 다르게 갖는 것이다. '무엇을 버릴까'로 접근하면 쓸모와 추억 때문에 걸러지는 것이 많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멀쩡하고 쓸모가 남아 있으며 추억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남길지'로 접근하면 당장 꼭 필요한 것만으로 기준이 서게 되기 때문에 대부분이 걸러진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기준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다시 한번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2년 전 대정리에도 살아남은 물건들의 이유는 '너무 멀쩡해서'였다. 너무 멀쩡한 이 물건들을 버리는 건 낭비이고 죄악인 듯했다. 그러나, 멀쩡하지만 쓰지 않고, 입지 않고, 신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라고 하지만, 오지 않을지도 모를 그 언젠가를 위해 몇 년을 이고 지고 있는 건 현명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특히 옷가지들이 많았다. 비싸지만 입으면 너무 부해 보여서 안 입게 되는 스웨터, 남편이 젊었을 때 입었던 슈트 등. 하나하나 다 추억이다. 들였던 돈도 생각난다. 하지만 그만하면 됐다고 마음의 방향을 틀어본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헌 옷 수거함이 멀리 있다. 옷을 욱여넣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수거함까지 걸어가는데 가을날인데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나 스스로 벌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느낌, 마치 벌을 받고 있는 듯했다. 옷 수거함은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에 있었다. 휘날리는 낙엽 속에 옷을 잔뜩 버리고 뒤돌아서면서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으이구!'
가방을 지고 가는 내내 과거의 뮤뮤가 미웠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텅 빈 가방만큼이나 가벼웠다. 또 예기치 않게 사선(死線)의 순간이 오더라도 이번에는 집정리 때문에 살려달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당분간은).
산뜻한 주변정리는 잘 나이 듦의 지표가 된다. 아울러 가장 제일의 재테크란 몇 프로의 이율을 주는 상품을 찾는 것보다, 수중의 물건을 오래도록 쓰는 것일 게다.
그렇게만 해도 삶은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빈 공간으로 복과 변화, 희망과 같은 아름다운 것들이 가을바람과 함께 오리라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