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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볼 결심

죽음을 꿈꾸는 이들에게

by 뮤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가장 오래도록 남은 장면은 서래의 마지막이었다. 서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그 안에 들어간다. 소주를 들이킨 채, 무너지는 모래벽에 기대어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 검푸른 바다, 붕괴하는 모래, 그리고 서래의 형용할 수 없는 표정. 모든 것이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저렇게 죽는 방법도 있구나.”


흐린 날보다는 맑은 날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이라면, 새파란 하늘을 보고 싶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나쁘지 않겠다. 서래는 소주를 마셨지만, 나는 와인을 고를 것 같다. 아니 좀 더 빨리 취하고 싶다면, 양주가 나을까? 마치 진짜 실행이라도 할 것처럼, 머릿속에 술병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사라지고 싶어. 아침에 일어나기 끔찍해. 지구에 종말 온다는 말 없어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배우 한유라의 대사이다. 어쩐지 내 속을 들킨 것 같아, 흠칫 했다.


나도 한때, 누군가 강제로 내 삶을 멈춰주길 바란 적이 있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나는 늘 어딘가 애매한 경계에 서 있었다. 삶은 내 최선과 상관없이 흘러갔고, 기쁨보다는 고통이 훨씬 더 큰 몫을 차지하는 듯했다. ‘이 생은 이미 그른 것 같지 않냐’며, 연민 섞인 눈빛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곤 했다. 우울과 죽음을 번갈아 밟아가며 살아왔지만, 정작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을 알게 됐다. 조직결과서가 담긴 두툼한 봉투를 품에 안고 집으로 걸어가던 길,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가운데 단 하나 분명한 건, “살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이 모든 게 그냥 꿈이고 싶다는 것, 아이들을 계속 보고 싶다는 것, 그러니까 살고 싶다는, 생에 대한 간절한 집착이었다.


죽음을 바라보며 살았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나는 생을 갈망하고 있었다. 때늦은 후회냐고 누군가 비아냥 거려도 상관없었다. 살 수만 있다면, 내 울타리에 머물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어깨를 떨며 울었던 그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 빠져든 젊은 작가가 있다. 어느 날 문득, 그의 글 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다는 걸 깨달았다.병을 앓았나? 가족 중 누군가를 잃었나? 궁금했다. 그의 글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설렁설렁 찾다가 나중에는 약간 집착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그런 기록은 없는데 작품에는 계속 죽음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슈로 그의 작품 세계에 죽음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없다. 병도, 가족의 죽음도, 극적인 사건도 없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건 '죽을 뻔한 꿈' 하나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어쩐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글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 줄어들고 말았다. 하지만 곧 알았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꼭 비극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예술가는 죽음을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다는 걸.


그런데도 괜히 집착했다. 어쩌면 아직도 나는 병의 그림자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의 언저리만 닿아도 몸서리치며 도망가고 싶다.




요즘은 100세를 넘기는 사람도 많고, 120세 시대도 멀지 않다고 한다. 누군가는 끔찍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다. 살아갈 시간이 더 주어진다는 것. 이제는 그 사실이 두렵기보다는 반가웠다. 한때 지구의 종말을 바랐던 내가, 지금은 생을 축복이라 여기게 됐으니 병은 어쩌면 내게 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오히려 생애 너무 매달리지는 말자고, 순리와 시간 앞에 복종하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일 정도이다.


죽기에 좋은 날은 없다. 그런 나이도 없다. 죽음은 구원이 아니고, 해방도 아니다. 살아남은 이들이 증명한다.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며, 아주 진실한 것이다. 이승연의 책 《살고 싶어 몽테뉴를 또 읽었습니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는 행동하려고 세상에 나왔으니 존재만 하지 말고 제발 살아라.”


환희만을 ‘행복’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평생 행복할 기회를 손에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통, 불안, 슬픔은 인생의 기본값. 오늘의 아픔과 설움도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뿐. 너무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터널에는 끝이 있다. 보람, 미소, 충만도 인생의 기본값이니 어느 쪽을 더 들여다볼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불필요한 회환과 미움에 몰입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도 몸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오늘을 조심스레 굴리고, 내일을 천천히 채비하며 살고 싶다.

귀한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소망 하나를 품으며, 제2의 삶을 조심스레 빚어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보통의 삶이다.



커버사진_ unslp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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