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병원에 입원했다. 항암을 멈춘 후 아빠의 호흡이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었는데 이제 한계에 이른 것이다. 더는 나아질 수 없다. 아빠의 병실을 찾은 날, 불현듯 10년 전 올케의 친정 어머니가 입원했던 날이 떠올랐다. 올케 어머니는 위암 4기였고, 병원 치료를 한사코 거부하여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천천히 쇠약해져 가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한 날, 우리 아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나빠질 일밖에 없을 거야."
그때 아빠는 생각했을까. 언젠가 자신도 이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이제 아빠의 시간이 왔다.
아빠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건 작년 늦봄의 일이다. 대장암 4기인 나는 다행히 절제가 가능했지만, 아빠는 암덩어리가 너무 커서 수술이 불가능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항암 치료뿐이었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나자, 암은 폐 전체로 퍼졌고, 신장까지 전이되었다. 의사는 더 이상 항암할 이유가 없다며 여명이 3개월 정도 남았
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이런 일이 올 수 있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 병을 알아보면서 너무 익숙하게 듣고 보아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달랐다. 나와 같은 병으로 아빠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뒤통수가 당겼다. ‘죽음'에서 간신히 멀어진 것 같았는데, 아빠의 병으로 다시 죽음의 그림자 안에 들어간 것 같았다. 싫다고 고개를 돌려도 누군가 죽음을 더 들여다보라고 자꾸 잡아끄는 것 같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몸이 무겁고, 마음은 더 무거웠다. 아이들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매번 '뭐라고?'라며 되물었다.
아빠는 매일매일 삭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해치우듯 보냈다. 먹고 자고 입고, 나 자신은 물론 아이들의 일상도 끊기지 않게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계속하기 힘들었다. 아무 일 없는 날을 상상하며 글을 쓴다는 게, 지금의 내 생활과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가벼운 글이라도 써보려 했지만, 그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멍하니 커서를 바라보다가,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은 써서 뭐 하나.
3년 전, 나는 수술로 회복이 미처 되지 않은 몸으로도 글을 썼다. 응급실에 수시로 실려가던 항암기간에도 몸이 좀 추스러지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뭐 대단한 작가적 기질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 시간이 나를 살리는 걸 알아서였다. 글쓰기는 나를 병의 그늘에서 끌어내 세상밖으로 가볍게 나가게 해 주었던 것이다.
대단할 것 없는 글쓰기 작업이지만 글쓰기를 멈추면 세상이 희미해질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만큼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글을 쓰지 않아도 삶의 균열같은 것은 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침은 오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아빠는 하루만큼 더 안 좋아지고, 해는 저물었다. '글쓰기가 이렇게나 가벼운 존재였다니.' 그렇게 헛되고 허무한 일주일이 훅훅 지나가, 글을 멈춘지 두 달이 되었다. 내가 글을 끄적거리던 시간이 정말 있었나 싶게 글의 세계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누군가 꿈이었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거 같았다.
서울로 병원 교대를 가던 날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옆에 앉은 두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외출할 때 티브이를 켜놓고 나가. 집에 돌아올 때 소리라도 들리면 덜 쓸쓸하거든."
"맞아. 우리 나이에는 티브이가 최고 친구지."
할머니들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티브이 같은 걸 친구 삼게 될까. 아니면, 뭔가 다른 걸 붙잡을 수 있을까. 문득, 글을 쓰던 시간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그저 쓰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시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누군가의 글을 읽고, 댓글에 답을 쓰던 그 시간들. 그때 나는, 몰입한다고 인지하지도 않은 채, 온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삶이란 내가 몰입할 대상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할 텐데, 3년 전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을 찾았다고 믿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고 일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을 때, 나는 '보통의 하루'를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무탈하다는 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아픈 일도, 기쁜 일도 품고 살아내는 것임을. 별일 없는 하루를 지키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깊이 있게 살아내고 싶은 마음, 그것이 진짜 보통의 하루의 본질이였다.
병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올 때, 아빠의 손등에 얹힌 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등은 예전보다 얇고 투명해졌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면 아빠의 눈이 환해졌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아빠는 여전히 내 이름을 부를 수 있고, 가끔은 웃기도 한다. 나는 그 작은 순간들을 채집하듯 살고 있다.
병원을 오갈 때마다 실감하는 건 아주 단순하다. 우리는 매일 닳고 있다는 것, 인생은 유한하다는 것. 그러나 그 사실이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배웠다. 병의 그늘에서도, 아빠의 병실에서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나는 환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작가였다. 그 시간은 나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냈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잊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글을 쓰며 비로소 알았다. 무탈한 하루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아니라 아픈 일도 기쁜 일도 함께 품고 다시 일어서는 하루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안하고, 때로는 주저하지만, 결국 다시 글을 쓴다. 그것이 내가 꾸는 작가의 꿈이고, 그 꿈은 여전히 나를 앞으로 살아가게 한다.
사진출처_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