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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물었다. 엄마는 친구가 없냐고.

응. 없어.

by 뮤뮤


단짝 친구와 놀고 오겠다던 딸이 저녁밥 시간에 겨우 맞춰 들어왔다. 딸의 얼굴에 친구와 놀고 온 바깥의 흥겨운 기운이 묻어 있었다. 집에서는 보기 힘든 환한 생기였다. 식탁에 앉은 딸 앞에 따듯한 밥과 국을 놓아주면서 물었다.

“재밌게 놀았어?”

고개를 끄덕이던 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쑥 말했다.

“궁금했었는데, 엄마는 친구가 없어?”


엄마도 친구 있지, 그건 왜?라고 묻자, 딸이 기다렸다는 듯이 단숨에 말한다.

“엄마는 통화도 잘 안 하고, 어디 잘 나가지도 않고, 집에 누가 놀러 오지도 않잖아.”

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차마 묻지 못한 물음표가 딸의 머리에 떠있는 게 보이는 듯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터졌다.

"엄마가 그렇게 친구가 없어 보였구나."


정말 그렇다. 요새의 나는 가족들 이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친구를 만나는 일, 심지어 지인과 통화를 하는 일조차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나 지금 항암주사 맞으려고. 머리랑 눈썹이랑 다 빠진대."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항암주사실 안을 울렸다. 베드마다 얇은 커튼으로만 나뉜 좁은 공간. 조그마한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한 이곳에서, 그녀는 목소리를 낮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병원에서 안내받은 항암 후유증을 친구로 추정되는 이에게 아주 상세히 보고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게 생각보다 많더라. 남편이랑 그것도 하면 안 된다는 거 있지?”


'세상에...'


항암이 아니라 소풍이라도 앞둔 아이처럼 들뜬 말투였다. 아마도 내가 암병동에서 들은 목소리 중 가장 활기찼을 거다. 놀라운 건, 그 통화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너덧 명의 친구들에게 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돌리다 간호사의 지적에 통화를 멈췄다. 집에 오는 길, 운전하는 남편에게 그녀의 흉을 보았다. 주책도 저런 주책이 없다고. 그러자 남편의 답이 의외였다.

"그렇게라도 견디는 게 아닐까?"

"..."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첫 항암의 공포를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며 이겨내려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보호자로 온 친구에게만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사람은 비슷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나 다르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그러라고 한다면 마치 벌 받는 기분이 들 거다.


신변에 일이 생기면 사람은 둘로 나뉜다. 지인들과 고민을 나누는 사람과, 혼자 끌어안는 사람. 나는 확실히 후자다. 사소한 일이라면 모를까,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얘기해서 나아질 것도 없고, 상대의 마음을 괜히 무겁게 하고 싶지도 않다.



처음 병을 알았을 때도 그랬다. 가족들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몇 달이 흐르고 지인들이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내냐, 한번 보자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예전 같으면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달려갔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인생의 파도에 멀미가 날 만큼 흔들리는 중이었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수다를 떨 수도 없고, 진지하게 병을 꺼내놓고 싶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남길 사람과 아닌 사람이 모세의 홍해처럼 갈렸다. 굳이 절교를 선언할 필요는 없었다. "요즘 일이 좀 있어서. 정리되면 연락할게." 그렇게 말하고는 연락하지 않았다. 이런 일을 몇 번 거듭하니 핸드폰 연락처가 절로 단출해졌다.


이사도 한몫했다. 한창 치료받을 때는 친정 근처로, 조금 회복되자 공기 좋은 경기 북부로. 두 번 연이어 이사를 했더니 동네 친구들과도 조용히 멀어지게 되었다. 경조사 때나 얼굴을 보는 옛 동창들. 그들을 제외하면, 이제 친구라고 부를 이들은 극소수다.



2~3년 전 강제 칩거 생활을 하며 생각했다. 빨리 나아서,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카페나 식당 앞에서 성냥개비 소녀처럼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는 했다.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고 싶은 열망은, 병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건강을 회복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칩거 중이다.




나의 하루는 집안 일과 운동, 읽기와 끄적거리기로 흘러간다. 머릿 속 환기가 필요하면 거실 창에 붙어 뒷산의 변화를 가만히 살펴본다. 이렇게 오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아보는 건 난생 처음이다. 새해 결심으로 감사일기를 썼지만 금방 그만뒀다. 하루가 너무 비슷해 감사할 거리도 비슷비슷했기 때문이다. 다이어리도 필요 없어졌다. 기록할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루틴대로 지내면 그뿐이었다.



희한한 건, 혼자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언제나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하게 느끼는 거다. 주부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집안일과 아이들 챙김이 숨 쉬듯 따라오기에, 온전한 내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고자 하루를 활발히 보내다 보면 금세 일주일이, 한 달이 흘러간다.


이 시간의 가장 큰 선물은, 말로 인해 생기는 고단함을 피할 수 있다는 거다. 말하지 않고도,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고독을 즐기는 건 아니다.
『명랑한 은둔자』 속 캐롤라인 냅 역시 사실은 명랑하지 않았다.
혼자를 즐기고 싶어 하면서도, 외로움과의 긴 싸움을 글로 풀어냈던 사람. 쾌활하게 혼자 있기를 바랐지만,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그리움과 연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나도 그렇다. 혼자인 시간이 익숙해졌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그리움이 있다.


그 대상은 나의 살던 고향 서울이기도 하고, 옛 친구 이기도 하고, 나의 안부를 챙기던 동네 언니이기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단골카페이기도 하다. 말 없는 이 시간 동안 나는 조금 더 넓어지고, 조금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


마치 짝사랑하는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처럼 나는 누군가를, 어느 그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메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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